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Mar 07. 2023

쇤베르크와 슬픈 현대음악

제2 비엔나악파 -잉고메츠마허, 크리스티안테츨라프 산토리홀 공연 후기

막상 아침이 되니 살짝 고민이 되었다.

도무지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오늘의 이 프로그램들을 위해서 저녁시간 첫째의 수영 라이딩을 포기하고 첫째와 둘째에게 막내 챙겨서 저녁 먹고 먼저 잘 준비하고 있어, 하고 나가야 할까. 내가 아무리 불량 엄마라고 하지만 저녁시간 엄마의 부재는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기분이 들어서 속이 그다지 편치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테츨라프의 라이브는 너무도 듣고 싶지만 오늘의 프로그램은 역시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쇤베르크는 음악을 조금이라도 공부하다 보면 피해 갈 수 없이 여기저기서 맞닥뜨리게 되는 존재라 나에게도 지적호기심의 대상인 적은 있었으나 사실은 딱 그 정도인 분이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엔프피, 극 F성향의 나에게는 사실 이 무조음악이란 것의 태생부터가 썩 맘에 들지 않는다.

12음을 균등하게 배열하고 한 음이 두 번 들어가지도 빠지지도 않는 철저함 속에 작곡되어야 한다니 정말 정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난 철저한 것 따위 질색인 사람이고 아름다운 것을 마음껏 아름다워하고 싶은 사람이다. 예술에 있어서는 심미주의자, 삶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서투른 인간이다. 사실 나이 사십 먹고 나도 이런 내가 항상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어쩌랴 이게 나인걸.


그런 나에게 음악이란 당연히 매우 아름다워야 하는 존재이다. 음악에서조차 철저한 수학적 규칙이라니, 미췬거 아닌가. (찐으로 험한 말이 갑툭튀)  어쨌든 나에게 쇤베르크는 지금까지 쭈욱 그런 존재였다. 유튭 영상에 땀 흘리며(?) 40분 동안 쇤베르크를 지휘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보면 왠지 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니 차이콥스키를 너무나 아름답게 연주하는 저 거장이 대체 무슨 죄야.

그렇다면 대체 저 인간(쇤베르크)은 왜 저런 음악들로 심미주의자인 우리들의 귀를 괴롭히는 걸까. 점심무렵까지도 고민하다가 나는 오래도록 외면해 왔던 그의 음악들을 들으러 집을 나섰다.


산토리홀에 줄 선 사람들과 롯폰기의 고층 빌딩 사이로 보이는 네이비색 하늘이 아름답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안톤 베베른의 초기 작품 파사칼리아 (베베른의 현악곡 느린 악장 너무나 사랑하는데 쇤베르크를 만나고 이 아저씨 망했ㅇ…),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12 음기법의 세계에서는 가히 낭만의 정수라 한다…), 그리고 쇤베르크의 그나마! 들을만한 초기작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라 하면 무려 금지된 사랑이라는 동서고금을 불문하는 매우 매우 낭만의 소재가 아닌가. 신빈악파- 쇤베르크와 그의 두 제자-의 음악들 중에서도 그나마 매우 듣기 쉬운(!) 작품들이기는 하다.


예상대로 관객이 많지는 않았다. 산토리홀의 2200 좌석의 반보다 조금 더 찼을까. 월요일 저녁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크리스티앙 테츨라프라는 빅스타 + 신니혼필의 일본 노년층 고정 클래식팬들을 두고도 이 정도이니 현대음악의 찬밥신세를 또 한 번 확인하는 것 같다. 현대미술은 돌멩이 하나에 몇억 깡통 하나에 몇억 운운하며 논란거리라도 되지 현대음악은 정말 애처롭다. 쉽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니 대중이 외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실 음악 속의 숨어있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절절 흐르는 감동을 부여잡고 뭐라도 한 줄 적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두 시간 동안 내게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테츨라프의 피아니시모의 음색은 소름이 돋도록 아름다웠고 신니혼필은 정교하고 탄탄했으며 현대음악의 거장 인고 메츠마허는 오랜만에 찾은 일본에서 그의 역량을 다 발휘하겠다는 듯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협주곡 2악장 중간에 테츨라프가 보이던 너무도 애처로운 표정이 매력적이라 바이올린 켜는 남자는 나이 들어도 멋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난 테츨라프의 바흐를 사랑한다!) 나 장발 남자 안 좋아하는데 테츨라프와 데이비드 가렛만큼은 역시 장발이지 머리 자르지 말아요, 싶었고. 메츠마허 아저씨 현대음악이라는 추운 길 가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신니혼필 다양한 레퍼토리의 탄탄함 멋지십니다 싶었고…. 그리고... 사실은 이 음악들 중간중간에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선율‘일 뻔하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었다….. 나는 역시 철저히 가볍고 때론 작위적인 인간인 것이다.



여전히 내게 음악은 그냥 들으면 좋은 것들이 우선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유의 개성을 가진 우리 인간에게는 각각 대중의 호기심을 넘어서 나를 자극하는 어떤 분야가 있다. 그리고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다면 반드시 공부가 필요하다. 수포자들이 허준이 교수가 이야기하는 대수기하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듯이 다양한 현대음악 안에는 관심과 애정과 호기심을 갖고 음악의 역사와 발전 과정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발짝 안으로 들어서야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실제로 쇤베르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다.라고 했다.

쇤베르크, 그의 사망 70년이 더 지났지만 많은 그의 지지자들이 예언했던 쇤베르크의 시대는 아직도 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더 먼 미래에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대가 도래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현대음악은 아직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인 듯 하지만 음악이 정서적 예술장르로 존재해야 할 필요도 무엇도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다양한 시도들에 듣는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야 비로소 내 안으로 음악이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디 즈음에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음악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번외 수다 --------

위대한 그 이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롯폰기의 산토리홀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홀이다. 역사적인 지휘자 카라얀이 음의 보석함과도 같은 홀이라 칭송하며 사랑하기도 했고, 실제로 이 홀의 건립에 조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산토리 홀 의 앞의 작은 광장은 카라얀의 이름을 따서 카라얀 광장!

<카라얀 광장>은 전 세계에 딱 세 곳이 있는데, 카라얀의 모국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극장광장과 잘츠부르크 축제대극장 광장, 그리고 바로 이곳 산토리홀 카라얀 광장!  

마지막 사진은 신니혼필의 계관 (桂冠, Laureate)명예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

세계적인 명지휘자의 이 포스터는 신니혼필의 1972년 창립 당시의 포스터! :)


#쇤베르크 #신빈악파 #신비엔나악파 #현대음악 #클래식 #클래식칼럼 #공연후기 #베르그 #베베른 #크리스티안테츨라프 #산토리홀 #인고메츠마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