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Jul 14. 2022

소설 파친코

디아스포라에 관하여

나 자신이 경계인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이 소설이 가져다준 먹먹한 여운을 안고 하루를 보냈다.

나는 100년에 걸친 남의 가족사 개인사를 이틀 만에 낱낱이 엿본 기분인데

소설은 시종 담담하게만 흘러간다.


이방이 곧 낭만이던 시절을 지나 16년째 타지에서 아이를 기르며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책 뒷부분에 실린 빅토르 위고의 말에

엄마로서, 교사로서, 나 자신으로서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한 균형감각이 살며시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상냥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기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보는 사람은 완벽하다.”


첫째도 둘째도, 만 5세쯤이면 어김없이 물어왔다. 엄마 나는 한국 사람이야? 일본 사람이야?

토요일이면 만나는 한국학교 아이들에게

우리 모두는 ‘세계시민이야’라고 말해왔다.

따뜻한 코타츠 안에 몸을 누인 채 귤껍질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물리적 지리적 공간적으로 디아스포라를 정의하던 시대는 지났다. 코로나를 겪으며 물리적인 이동이 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간을 넘어 더 깊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다면체의 내 모습을 확인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이는 곧 역설적이지만 지금 내 몸뚱이가 어느 나라 어느 공간에 있든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정체성 속의 디아스포라임을 의미한다. 이를 깨달을 때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비로소 강함을 넘어 진정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 소설에서의 삶은 고난만도 희망만도 역경만도 기쁨만도 아니다. 그 사실이 불행이면서도 얼마나 다행인지. 질곡 속에서도 시간은 담담히 흐르고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목숨 있는 사람은 해가 뜨면 하루를 살아간다. 삶은 숨 쉬는 모두에게 치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