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작곡가의 지적인 유희
혹시 지금, 이불속에 계신가요? 혹시 지금, 의욕이 없으신가요?
주말이지만 해야 할 것이 쌓여있는데 움직이기는 싫으시다고요?
조금 더 의욕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으시다고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누구이건, 열정만수르로 재탄생시켜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이 곡과 함께 말이죠!
저는 주변인들에게 자주, '에너지드링크'같은 음악으로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 4악장을 추천합니다.
의욕을 고취시켜 주는 음악, 열정 만수르의 브금으로 이만큼 찰떡인 곡이 또 있을까요.
이 곡을 들으면 누구라도 당장 벌떡 일어나서 방바닥을 쓸던지(?!), 혹시 지금 방이 너무 깨끗하다면 하다 못해 앞 구르기라도(?!) 하며 내 몸을 움직여야만 할 것 같습니다.
내 안에 한 방울 남은 의욕마저도 수도꼭지 비틀듯(?!) 쥐어짜 줄 것만 같다고 할까요, 파이팅을 급속충전 해 주는 음악이지요.
힘이 넘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선동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이 음악에는 '혁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작곡가 본인이 붙인 제목은 아니고 일본에서 붙여진 부제입니다. )
저는 수험생이던 고등학생 시절 이 곡을 처음 들었는데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모차르트나 바흐, 비발디 같은 바이올린 곡들을 주로 듣고 배우던 제게,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매우 쇼킹했어요. ‘클래식’에 해당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느낌이 들었지요. 당시의 제게는.. 마치 롹 음악들이나 테크노음악들과도 같았어요. 파워풀하게 심장을 쾅쾅 울리는 이 음악이 너무 놀라워서 오, 고전음악 중에 이런 음악들이 있다니! 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듯한 충격이었답니다.
이 곡의 작곡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혁신적인 천재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입니다.
그가 작곡한 곡들 중에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곡은 아마 이 곡이 아닐까요.
'번지점프를 하다', '아이즈 와이드 셧' 등의 영화와 여러 광고의 삽입곡이었던 이 왈츠도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음악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의 소비에트연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악명 높은 스탈린과 동시대의 사람이지요.
일각에는 "이제 교향곡의 시대는 끝났다. 20세기에 와서는 더 이상 교향곡이 새롭게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조차 교향곡 시대의 마지막 마스터피스를 남긴 작곡가로 쇼스타코비치를 꼽을 정도로, 그의 교향곡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베토벤 이후의 거의 모든 작곡가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라는 분야는, 음악가의 신념이나 생각, 사상을 담는 장르로서 발전을 해 왔습니다. 베토벤 이전, 모차르트나 하이든 시대의 교향곡은 좀 더 가볍고 오락적인 작품이었거든요. 그러나 베토벤이 창조해 낸 거대하고 견고한 교향곡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교향곡= 생각과 사상을 담는 음악이라는 예술장르의 최상의 표현방법'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또한 교향곡에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표현을 했는데요.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음악 속에 사실은, 쇼스타코비치가 교묘하게 설치한 ‘트릭’이 있다면,
그리고 그 트릭 속에 쇼스타코비치가 슬쩍 비밀 메시지를 담아두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 앗, 그전에 방출해야 할 짤이 한 장 더 있었군요.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에 한번 더 환생을 한다는 사실, 아셨나요?
그 몸은 바로....
정말 신기하게도 닮았죠?
1970년대, 그때 그 시절 한국에서는 이 곡이 무려 '금지곡'이었다는 사실! 아셨는지요? ‘공산주의적'인 음악이다,라는 이유에서였지요.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 곡은 구 소련, 스탈린 집권 당시의 불안한 정세 속에서 만들어진 곡입니다.
스탈린 체제의 구 소련에서는 1937년부터 1938년 사이의 기간 동안 사회주의 국가의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희생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스탈린의 대숙청이라고 하지요. 당시는 소련의 정치, 경제, 행정, 언론, 문화예술, 과학기술, 교육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스탈린 체제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반 혁명분자로 간주되어 바로 잡혀가던 시대였습니다. 비밀경찰이 끌고 가서 고문을 하거나,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이 보내지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던 시대이지요.
예술 문화계도 물론 이 탄압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음악가들에게도 소련 공산당의 정치제제에 부합하는 음악-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르는 음악을 만들기가 요구되었었죠.
이 시기에 갓 30대의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소련을 대표하는 유명 작곡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습니다. 개성 있고 독특하고 좀 뾰족한 작품들, 전위적이고 도전적이고 진보적인 작품들, 사회 풍자적인 작품들을 만드는 작곡가였죠.
1936년 1월, 쇼스타코비치 30세 때, 공산당이 쇼스타코비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집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독제체제 아래 최고 권위를 갖는 프라우다(Pravda. 러시아어로 진실이라는 뜻)라는 신문이 있었는데요, 이 언론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비판했기 때문이지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Lėdi Makbet Mtsenskogo uyezda)'은 초연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이었지만, 스탈린은 공산당의 고위관료가 등장하는 이 작품이 거슬렸습니다. 관람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건이 발생했지요.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프라우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목에 칼이 들어온 것과 같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쇼스타코비치의 후원자들과 일부 동료 예술인들은 숙청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쇼스타코비치와 접촉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쇼스타코비치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요.
쇼스타코비치는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액션을 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내 목에 들어온 칼을 치우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 예술가가 사활을 걸고 만들어 내어야 했던 음악이, 바로 이 교향곡 5번입니다.
이 교향곡은 어둡고 음침하고 비극적으로 시작해서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듯한 격정적인 4악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격앙된 4악장은 마치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를 찬양하는 것과 같이, 알기 쉽게 선동적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대 성공을 거둡니다. 러시아 공산당의 입맛에 딱 맞는 음악이었던 것이지요. 공산당은 이 음악에 대만족을 했고 쇼스타코비치는 다행히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 곡에 대해서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고뇌가 인생의 낙천적 긍정이 된다'라고 언급을 했다고 하는데요,
‘고뇌에서 긍정으로. 고뇌에서 환희로.' 이건 어디서 정~말 많이 들어 본 듯한 말이지요.
고전 음악의 정통적인 흐름- 베토벤의 음악이 갖고 있었던 철학이기도 하니까요. 그럼 쇼스타코비치는 알기 쉽게 스탈린의 공산주의 사회체제에 베토벤의 철학을 담아 찬양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일견 단순해 보이는 바로 이 안에,
쇼스타코비치는 엄청난 지적 유희의 트랩을 설치해 두었다는 사실!
다시 위로 가서 음악을 한번 들어볼까 합니다.
4악장은 금관악기의 파워풀한 음량으로, B, E, F#, G 이 네 개의 음으로 시작됩니다. '빰 빰빰빰' 하는 이 음은 4악장 전체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전개가 되는데 바로 이 안에 수수께끼 같은 음악적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그 힌트가 되는 음악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곡은 조르주 비제의 1875년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하바네라(Habanera)입니다.
제1막의 다섯 번째 장면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음악은 메조소프라노의 여주인공 카르멘이 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기 위해 부르는 음악이지요.
카르멘이 매혹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군중은 합창을 합니다.
바로 이 '군중의 합창'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
어떠세요? 카르멘의 솔로 사이사이에 '빠 밤 빰빰' 하고 들어오는 합창은,
'B, E, F#, G' 쇼스타코비치의 주제음과 같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포인트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B, E, F#, G 빰 빰빰빰은 이 곡, 하바넬라의 B, E, F#, G 빠밤 빰빰에서 가져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 하바넬라의 가사는....
Prends garde à toi!
"조심하세요!!!"
라는 뜻입니다.
(오싹 소오름!)
이것이 바로 쇼스타코비치가 숨겨 놓은 비밀 메시지입니다.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승리의 음악 속에 '조심하세요!' (무엇을? 공산당을! 잡혀가지 않도록!)이라는 메시지를 숨겨놓았다는 사실, 정말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이번에는 대략 45분 무렵의 클라이맥스로 이동해 볼까 합니다. 여기서도 '조심하세요'라는 메시지는 장조로 바뀌어서 계속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금관악기와 타악기 이외에는 일제히 다 계속 A만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무언가 굉장히 사회주의처럼 느껴집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이 B, E, F#, G를 일부러 아주 천천히 연주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음질이 살짝 안습인 이 곡은 1938년에 녹음된 레닌그라드 관현악단과 므라빈스키의 연주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의도가 반영된 연주에 가까울 것 같아서, 참고로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의도적으로 위의 'B, E, F#, G'의 부분에 악센트를 넣어서 천천히 연주하도록 지시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너네들 조심해라~라고 의도적으로 천천히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또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마치 공산당으로부터 강요된 찬양, 강요된 승리의 기쁨에 대한 쇼스타코비치 나름의 소심한 반란이라 할까요. 목숨이 걸려있는 상태에서 예술가가 벌였던 '지적인 유희‘라고 할까요.
이 곡에 대하여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예술가의 답변'이라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말을 남겼는데요!
사실 그 이후 친구에게는 ‘이 곡의 찬란하고 격앙된 엔딩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시베리아에 있겠지.’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합니다.
진실은 쇼스타코비치 본인밖에 모르는 법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당시의 억압된 사회 체제 안에서 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크리에이티브하고도 유쾌한 해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