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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05. 2023

베토벤.. 그 위대한 이름이여!

예술 그리고 인간의 실존

  루트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원대한 음악을 앞에 두고 고뇌하고 있는 어떤 이에게는,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경외감에 숙연해지는 존재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흔해서 울림을 잃어버린 이름 하나, 일지도요. 그저 학교 음악실 벽에 걸려있는 박제된 한 단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오늘날 한국인의 삶은 참 바쁩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누구나 웬만하면 자기 계발서와 비즈니스 서적을 읽고, 틈틈이 유튜브로 부동산과 주식과 육아정보와 인간관계 처세술을 공부하며,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게 요약본으로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고, 새벽 5시에 기상해서 바프를 찍기 위해 운동을 합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200년도 더 지난 고리타분한 베토벤의 음악을 40분 동안 찬찬히 귀 기울여 들어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시간낭비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과분하고 새삼스러운 사치놀이일까요.



무용함이 주는 유용한 기쁨

  시간낭비이자 과분한 사치놀이. 좋습니다. 사실 예술이란 본래부터 그렇게 시작했으니까요.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은 그 태생부터가 무용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목적도 없으며 효용성도 가치도 없습니다. 예술에 있어서는 애당초 척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정답도 없습니다. 밥을 먹여주기는커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밥 굶기를 걱정해야 하는 분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30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온 그 음악들, 그것들은 왜 지금도 우리 곁에 존재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 역할모드들로 바삐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발목을 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기꺼이 사치스러운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가쁜 호흡을 멈추고, 시간을 내어,

너무나도 흔해서 울림이 없는 종소리 같은 그 이름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사실 가을은 그러기에 충분히 좋은 계절 같습니다.



베토벤이라는 영혼


이 곡을 함께 들으면서 출발해 볼까 합니다.

Beethoven, String Quartet 15 In A Minor, Op. 132, "Heiliger Dankgesang" - 3. Molto Adagio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 현악 사중주 132번의 3악장에는 ‘병에서 회복된 자의 신에 대한 신성한 감사의 노래. 리디아 선법에 의해 ‘라는 베토벤의 말이 붙어있습니다.


  베토벤은 합창 교향곡 이후,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3년 동안 총 6곡의 현악사중주 곡을 남겼는데요,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로 분류되는 이 6곡(op127, op130~132, op135와 대푸가)은 그의 다른 교향곡이나 협주곡들에 비하면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곡들입니다. 당대의 사람들도 이미 청력을 잃어버린 베토벤의 음악들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끔 저는 이 후기 현악 사중주들이야 말로 베토벤 음악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곡들에서는 ‘베토벤'이라는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 낸 한 인간의 '초월'의 경지가 느껴지거든요.


  지금 들으시는 이 곡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182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병을 앓았던 베토벤은 가까스로 몸이 회복되고 난 후에 '신에 대한 감사의 노래' 로서 이 3악장을 만들었습니다.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이 완서악장은 이미 귀가 들리지 않는 만년의 베토벤이 오직 영혼의 소리에만 의지해 만든, 독백과도 같은 음악입니다.


  이 음악을 듣고 있자면 저는 젊은 날의 그의 유서가 떠오릅니다. 죽기를 결심했던 자의 고뇌, 그토록이나 괴로워했던 음악가로서의 사명, 일생을 통해 그것과 치열하게 싸우고,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이기고 위업을 달성한 위대한 인물만이 도달할 수 있는 '평안의 경지'가 느껴집니다.


 그럼, 들으면서 그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결핍과 고독으로 점철된 인간

  흔히 모차르트를 신이 사랑한 남자, 빛나는 재능을 가진 경탄할 만한 '천재'로 이야기하지만, 베토벤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결핍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넘어 부단한 노력과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 속에서 완성된 인간승리의 아이콘으로 표현되지요.


  그는 흙수저였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 반 베토벤 (Johann van Beethoven, 1740~1792)


  음악가였으나 알코올 중독자였고 무능력했던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 반 베토벤은 아들을 모차르트처럼 천재 음악 소년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어린 베토벤에게 있어 아버지는 한없이 엄격하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어린 베토벤은 열쇠가 밖에서 잠겨진 방에 감금된 채 눈물을 흘리며 끝없이 피아노 연습을 해야만 했고, 조금만 부족한 점이 있으면 아버지의 불같은 화와 폭언을 고스란히 작은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베토벤을 영재로 포장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나이를 속였기 때문에 어린 베토벤은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몰랐다고 하지요.

  학대받으면서 배워야 했던 음악, 어린 베토벤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음악은 양 쪽 모두가 더할 나위 없는 애증의 존재였습니다.


  그의 나이 17세, 그나마 집 안에서 유일하게 마음 기댈 곳이었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십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고 끊기는 일이 허다했던 월급조차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십 대의 베토벤은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폐인이 된 아버지와 두 동생을 위해 몇 가지 잡일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생애에 걸쳐 '아버지'라는 아픈 그늘을 지녔던 베토벤, 어린 그의 곁에 늘 함께 했던 불안과 공포는 그를 괴팍하고 신경질적이고 고집스러운 어른으로 자라나게 했습니다. '사회부적응자'에 가까웠던 베토벤에게 있어서 고독이란 일생을 두고 가장 친한 친구였지요.

  그리고 26세라는 꽃같이 아름다워야 할 젊은 나이에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음악가에게 있어서는 흡사 사형선고와도 같은 '귓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젊은 날의 베토벤



Heiligenstädter Testament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Heiligenstädter Testament 베토벤이 남긴 편지(유서)의 첫 번째 페이지


  1802년 10월 6일. 32세의 그는 하일리겐슈타트(현재의 빈의 일부)에서 동생 칼과 요한에게 편지를 씁니다. 장장 4장에 달하는 긴 편지이지요. 이 안에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병- 청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고통스러움과 두려움, 결코 쉽지 않았던 운명에의 원망, 예술가로서의 고뇌, 그리고 고독한 인간이기를 선택해야 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과 동시에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그의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는 굳건히 내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언젠가 그 전문을 소개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


  당연하지만, 이 시기의 베토벤이 그대로 목숨을 끊었다면 지금의 악성 베토벤은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죽음의 고뇌를 넘어 '삶'을 선택한 베토벤의 음악 세계는 이 이후부터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마음, 그 너머에서 탄생한 찬란한 음악들

  우리가 베토벤의 생애에서 소위 '영웅적 시기', '걸작의 숲 시기'로 분류하는 베토벤의 중기 시대는 이 유서 이후의 시기입니다.


"이 세상에 당신 같은 귀족은 얼마든지 있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하나뿐이오."

  베토벤이 남긴 많은 명언 중에서도 유명한 이 말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베토벤이라는 이름은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그는 이전의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에 둘도 없는 '베토벤만의' 세계를 폭발시키기 시작합니다.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피아노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단 하나밖에 남기지 않았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교향곡 6번 전원.... 이 모든 찬란한 음악들은 그를 가두고 있었던 절망과 포기를 넘어서, 죽음의 마음을 넘어서 태어난 작품들입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위했던 자신을 이겨내고, 그리고 이토록이나 아름답고도 원대한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베토벤의 초상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은, 독일의 화가 요제프 카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의  1820년 작품입니다.  


  47세 무렵부터의 베토벤은 세상의 거의 모든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만큼, 그는 더욱더 철저히 세상과 고립되어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살아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길을 걷는 베토벤의 모습은 노숙자와 거의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지요.




청력을 잃고 부르는 희망의 노래

  그가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매년 한해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지구촌 곳곳에서 울러 퍼지는 바로 그 음악이지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들 중에서도 '인류 최고의 예술작품'이라는 거대한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오직 단 한 곡입니다.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9 (1986)


  1824년 2월, 베토벤 53세에 완성된 이 음악은, 같은 해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Theater am Kärntnertor)에서 초연됩니다.


교향곡 9번이 초연되었던 케른트너토르 극장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 작품이 초연이 되었을 때, 이미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던 베토벤은 지휘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총지휘자'의 직함으로 지휘대에 올랐지만 실제 지휘는 미하엘 움프라우가 맡았습니다. 베토벤은 현악주자들의 활의 움직임을 보며 곡의 진행을 파악하고 각 악장의 템포를 지시할 뿐이었지요.  


  이 초연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음악의 성인은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과 찬사를 듣지 못했습니다. 곡이 끝나고도 무대 위에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던 베토벤.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알토 가수 '카롤린 웅거(Caroline Unger)'가 직접 베토벤의 몸을 돌려서 관객석을 보게 했습니다. 그제야 환호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눈으로 본 베토벤은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1824년, 9번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무렵의 베토벤


  9번 교향곡의 4악장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환희의 송가'입니다. 이 곡의 가사는 베토벤이 생애를 두고 사랑했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chiller)의 송시 <Ode An die Freiheit (자유찬가)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념과 다툼을 넘어 인류가 추구해야 할 희망과 화합의 이상향을 노래한 곡이지요.

  

  '인류 역사 최고의 예술작품'이라는 수식어를 이 곡이 아닌 다른 어떤 곡에 붙일 수 있을까요. 과거 유럽 공동체의 찬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지금도 유럽연합의 국가인 이 곡은 초연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연말이 되면 지구촌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휘자 구자범 님은 이 곡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직접 방대한 해설을 집필하기도 했는데요, 이 곡을 지휘하고 싶어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꼭 구자범 지휘자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곡을 사랑하지 않는 음악가, 아니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2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는 왜 이 곡을 이토록이나 사랑하는 걸까요.




예술의 자리

만년의 베토벤

 거의 모든 초상화의 베토벤의 얼굴은 대부분 성난 얼굴입니다. 온화한 얼굴, 행복한 얼굴의 베토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일생을 고독과 불안과 고통과 동행했던 그의 삶이 몇 장의 초상화 속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듣지 못하는 음악가라니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위대한 화가를 알지 못하듯이 그는 진정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고독으로 점철된 나약한 한 인간, 그래서 신에게 한탄하며 죽음의 근처에서 방황하던 한 인간이 마지막에 남긴 것이 인류에의 사랑과 기쁨과 찬미라니! 예술이 숭고해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모차르트의 음악이 천상의 음악이라면, 베토벤의 음악은 제게는 우주와도 같습니다.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천국과 달리 거대한 우주 안에는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이상향, 그곳에 베토벤의 음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베토벤의 음악들은 결코 낭만주의 음악들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요. 낭만주의 음악들이 사랑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는 인간만사를 고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면, 베토벤의 음악들은 보다 원대하고 높은 곳에서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언제고 똑같은 평온한 미소로 안아주는 것 같습니다. 불평등과 부조리와 거짓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들 인간이 가야 할 길, 서야 할 자리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곧 인간의 존엄이며 실존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자 인간 정신의 최고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고대부터 예술이 우리 곁에 존재해 왔던 방법이기도 하고요.

  

 



  에필로그..

   

  사실 이 브런치북은 조금 '웃기게' 써 보려고 생각했었는데요, 하지만 베토벤에 대해서만큼은 그러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참 바쁜 오늘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시간을 들여서, 200년도 더 지난 그의 음악에 찬찬히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시간 낭비는 아니지만 분명 더할 나위 없이 사치스러운 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오롯한 마음을 다해 그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인공지능이 과연 예술가와 창작자를 대신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요, 200년의 시간이 더 흘러도 결코 AI는 도달할 수 없는, 변하지 않을 예술의 본질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베토벤의 음악은 너무도 인간적이며 따뜻합니다. 그것은 곧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희망'이며, 긴 여정 끝에 찾아낸 ’ 인간 실존의 방식'입니다.


  아, 어쩌면 한 인간이 이토록이나 원대한 우주를 창조해 냈을까요. 그의 음악 앞에 서면 저는 한없이 모래알만큼이나 작아집니다.

  그리하여, 삶은 유한하고 덧없지만 오직 예술만은 불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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