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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an 31. 2023

변태예술가의 슬픈 자화상

에곤쉴레전- 빈이 낳은 젊은 천재

도쿄가 매력적인 이유는 언제든 신선한 아트, 혹은 공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유수의 예술도시 중 하나라는 점!

작년 말부터 오픈일정을 체크하며 기다리고 있던 전시, 도쿄도 미술관의 에곤쉴레전 (エゴン・シーレ展 ウィーン が生んだ若き天才) 이 드디어 1월 26일, 지난주 목요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오픈 다음날 다녀온 따끈따끈한 전시 현장을 공유합니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 에곤쉴레의 수많은 자화상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지요!
오랜만의 우에노!JR우에노역 공원 개찰로 나오면 똬악 보이는 풍경이에요! 왼쪽에 살짝 비치는 건물은 문화회관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춥고 흐려요. 도쿄는 사실 낮에 다운코트가 필요한 날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 오늘은 따뜻한 다운코트로 집을 나섭니다.

쭈욱 직진. 역에서 내려 가까워요.왼쪽 문화회관 오른쪽에는 국립 서양미술관을 지나 직진.


오른쪽에 스쳐가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

오른쪽에 있는 우에노 국립 서양 미술관이 꿀인 이유!

국립서양미술관 정원에서는 로댕의 작품 세 점이 무료 상설 전시 중이지요! (물론 진품입니다!)

오늘은 휴관일이라 문이 굳게 닫혀있습니다,

총총걸음으로 지나가며 담 넘어 사진만 찰칵.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뒷모습

그 유명한 작품,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21점이 존재하는데, 그중 무려 4점이 일본에 있어요!

이것도 오늘은 담 넘어 뒷모습만!


칼레의 시민,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윗 사진 오른쪽맨 끝에 정말 살짝 찍힌 지옥문. 이 세 점이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연중 무료 상설전시 중인 로댕 작품이랍니다!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은 한국에도 한 점씩 있답니다! 삼성이 소유하고 있어요. 이번 이건희 컬렉션에서 행방을 드러내지 않은 작품들 중 하나 이지요! )


쭉 걸어가면 나오는 포스터!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인간실격'(민음사)의 책 표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책! 기억나시나요?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에곤실레의 싱크로율 무엇! (천재+요절+자아탐구+변태) 



전시장 입구


16세, 어린 에곤실레의 모습

이 아이는 자라서 천재 변태 화가가 됩니다.


전시장 안쪽은 풍경화 코너의 몇 점을 제외하고는 기본 촬영 금지 전시예요!

그래서 직접 사진은 못 찍었지만, 일본 전시 정보 사이트인 아트어젠다 (https://www.artagenda.jp/ )의 사진들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의 메인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년)

마치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이 작품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비뚤게 기울어진 몸과 머리, 도전적인 눈빛으로 앞을 직시하는 실레의 이 작품에는 붉은 긴장감이 감도는 것 같아요.


이 작품에는 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림이 한점 더 있어요! 전시에는 오지 않았지만, 당시의 연인이었던 발리 로이칠의 초상화가 꽈리 열매를 배경으로 같은 해에 그려졌지요!

발리 노이칠의 초상 (1912)

바로 위의 이 작품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2 (죽음과 남자) 1911년

저는 발을 뗄 수 없던 작품들 중 하나였어요.

깡마른 얼굴, 공허한 눈. 마치 해골과 같은 얼굴..

실레의 고뇌가 느껴지는 이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실레는 100점이 넘는 본인의 자화상을 남긴 화가입니다. 자화상 속의 실레는 마치 야생의 한 마리 늑대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불쌍할 정도로 깡마른 몸, 때로는 풀린 눈, 때로는 강렬한 눈빛. 때로는 옷을 입고 있고, 때로는 전라이고, 때로는 붉은 성기만 드러낸 반라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변태냐고요? 맞습니다.

에곤실레는 자신이라는 존재와의 상호관계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도 끊임없이 탐구했던 화가거든요!

그리고 그 고뇌들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실레의 예술 속에 녹아 있습니다.


이 그림 가까운 곳 벽면에 화가이면서 시를 사랑한 에곤 쉴레의 시 <자화상> 이 쓰여있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생의 과잉에 찬 영원한 몽상은

쉬지 않고

안으로, 영혼 안으로, 불안한 아픔을 안고

불길을 태우며, 더 격결하게 싸운다.

심장의 경련.

시 <자화상> 1910년 (에곤실레 20세)



슬픈 여자 (1912년)

'슬픈 여자'라는 제목의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은 실레와 4년 동안 연애를 했던 발리 노이첼입니다. 클림트와 실레의 모델이자 연인이었죠.

발리의 머리 뒤편에 살짝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 보이시나요? 에곤실레 자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발리의 머리색은 실제로는 붉은색, 실레의 머리색은 검은색인데, 이 그림에서는 서로의 머리색을 바꿔서 그렸어요.

사랑과 연애는 타자와 자신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융합하고 분리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어쩌면 실레는 그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11년에 만난 실레와 발리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2년, 22세 실레의 인생에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나체뿐 아니라 어린 소녀들의 나체를 끊임없이 그려오던(!) 실레는

1912년, 22세 때 3주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어요.

죄명은... 소녀 유괴죄.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가 누드모델로 삼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어요.

결국 유괴혐의에 있어서는 무죄판결을 받지만, 실레가 그린 소녀의 나체 그림들이 세상에 공개되며 실레는 사회적으로도 소아 성애자, 외설화가라는 불명예를 쓰게 됩니다. 재판석에서 실레가 그린 소녀의 나체 수채화가 소각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발리는 실레 곁을 지킵니다. 감옥에 있는 실레를 정성껏 수발하며 실레를 위해 헌신하지요.

그. 러. 나! 오랜 세월 실레 곁을 지키던 조강지처 발리에게 실레는 이별을 통보합니다.

그 이유는... 결혼이 하고 싶어져서....

결혼은 하고 싶지만 발리는 결혼상대는 아니야,라는 게 그 이유였다고 해요! (변태 + 나아쁜놈)


그리고는 부유한 집안의 에디트와 결혼을 하지요.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에디트

이 분이 바로 실레와 결혼한 에디트!

그러나 이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 중인 에디트가 사망하고 그로부터 3일 후 실레도 사망하게 됩니다.

28살. 정말 너무 이른 나이였죠.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미술관의 작품들이 날아온 이번 전시에는, 에곤쉴레의 짧았던 28년 인생의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생애 주기별로 회화와 소묘 작품들, 그리고 쉴레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해 동시대를 살았던 오스트리아 화가들- 콜로만 모제,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의 작품까지 총 115점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 (1912년)
안톤 요제프 트르카 <에곤쉴레의 초상 사진> 1914년
장식적인 배경 앞에 놓인 양식화된 꽃 (1908년)
국화(1910년)
등을 보이고 선 나체의 남자(1910년)
거친 바람 속의 겨울나무 (1912년)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여자 (1915년)
구스타프 클림트, 쉔블른 정원의 풍경(1916년)
콜로만 모제, 마리골드(1909년)

이 그림 앞에 서자 '예쁘다...'라는 한국말이 절로 나왔어요.

화사한 오렌지와 노랑과 초록.

이토록 예쁜 마리골드를 전 실제로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송이 한송이 저마다가 밝고, 아름다운, 소소한 작은 꽃들. 행복해지는 그림이었답니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반라의 자화상> (1902년)

이 작품의 주인공인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오스트리아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화가입니다.

이 자화상을 보면 약간 가엾은 범죄자...(?) 같지 않나요?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포스터가 생각나기도 하는..

이분은 사실 클래식 음악사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친구였던 음악가 쉔베르크의 부인과 바람을 피운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여기 나쁜 놈 한 명 추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불륜의 대가는 비참했습니다.

게르스틀은 사회적으로도 매장을 당하고 24세에 자살을 하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죠.


(참고로 클림트나 코코슈카 역시 클래식 음악사에 그 이름이 등장하죠! 구스타프 말러의 부인이자 세기말 수많은 유럽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팜므파탈 알마 쉰들러가 거쳐간 알마 리스트의 화가들이었기 때문에)

예술사의 수다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다시 에곤실레 이야기로 돌아와서..

한국에서도 작년에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 때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에곤실레의 작품 40여 점 앞에 가장 긴 줄이 생겼었다고 하죠!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와도 많이 닮은 에곤실레는

MZ세대들이 열광하기 좋은(?) 요소들을 갖춘 화가이기도 한 것 같아요!


신체, 정신,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자아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고뇌하고 탐구한 화가였거든요!



나는 인간.

나는 시를 사랑하고

또 성을 사랑한다.

-에곤 쉴레



실레는 자기애적성격장애로 불릴 정도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때로는 혐오하고, 그리고 끝없이 탐구한 화가였기 때문에, 에곤 실레의 자화상은 생생하고도 아픕니다.


휴… 다이어트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금주 중이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탄닌 강한 와인을 한잔 해야겠습니다.


이 순간이 소소한 행복! Ronan by clinet는 오늘 내 기분보다는 좀 가벼웠지만요!
위에 옮겨 온 시예요. 에곤 실레 20세에 쓴 자화상. 심장의 경련…. 스무살다운 위태로움과 날카로움이 전해집니다.


에곤 실레의 반라의 자화상..

깡마른 몸, 풀린 눈, 나체에 잠바라는 변태의 고전 클리셰!  

그러나 그의 머리 뒤에는 후광이 있습니다.


한동안은 여운에 빠져있을 것만 같은 훌륭한 전시였어요! 오늘 밤은 이 화집과 함께 소확행을 만끽하며 잠들어야겠습니다.


#엘리의퍼니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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