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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타자기 Jul 04. 2024

우울이 그리울 때

 글이 안 써질 때면 우울이 그리워진다. 한창 우울할 때는 뭐라도 못 써서 안달이었다. 소설이든 하소연이든, 시든 일단은 끄적이고 봤다. 장소도 상관없었다. 자취방과 카페는 물론 공원과 도서관에서도 썼다. 버스에서도 썼다. 주로 시를. 폰으로 긴 글을 쓰기에는 손가락이 아팠으니까. 버스 의자에 가만히 앉아 메모장 앱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어가 잘 떠올랐다. 책상 앞에서 쓸 때보다 더. 나는 아늑한 곳에서 글을 더 잘 쓰는데 버스가 내게는 그런 공간이었나 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적당한 흔들림과 소음이 좋았던 걸까? 참고로 지하철에서는 안 썼다. 지하철에서는 유튜브만 보게 되더라고.


 나는 슬픔이나 괴로움, 외로움 같은 우울한 감정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를 발산하게끔 만드는 힘 말이다. 그 힘은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게 만든다. 밥을 안 먹게 하고 자해를 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건 자기 파괴의 욕구다. 과거에 나는 그런 욕구가 일 때마다 글을 썼다. 그래서인지 그때 쓴 글을 보면 울분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울분이. 그때의 나는 뭐가 그리 억울했던 걸까. 세상은 나한테만 가혹했던 게 아니었을 텐데.


 주로 우울할 때 글을 써서인지 우울하지 않을 때는 글이 안 써진다. 안 써지면 안 쓰면 되는데 쓰고 싶어서 괴롭다. 이 무슨 개똥 같은 경우람. 우울하지 않으면 글이 안 써진다니. 멜랑꼴리해지는 밤에는 그나마 나은데 낮에는 마동석이 행주를 비틀 듯이 쥐어 짜야 간신히 몇 자 쓰는 정도다. 에세이라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이라면 인물의 감정에 이입해서 쓰면 되는데 에세이는 내 감정에 이입해야 하니 더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요즘처럼 무미건조한 때에는 더욱 그렇다.


 우울하지 않아서 싫다는 건 아니다. 나는 요즘 같은 평안함이 좋다. 다만 그리울 뿐이다. 환절기의 재채기처럼 불쑥불쑥 찾아와 문장을 던져주던 우울이. 내게 영감은 우울의 다른 이름인 걸까. 나는 어쩌면 잠시나마 우울이 왔다 가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사람 손에 닿은 달팽이처럼 바짝 움츠리게 될 것이다. 다시 멋들어진 글을 쓸 것이고. 우울아. 넌 내 오랜 러닝메이트잖아. 난 너 없이는 글을 못 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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