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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타자기 Jun 03. 2024

식물 같은 음악이 좋다

취향에 관해 말하기

 언제부터인가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가사를 듣다 보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신나는 가사를 듣더라도 그렇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한때는 우울할 때마다 왜 우울한지 이유를 찾으려 했는데, 이유를 알아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안 뒤로 그만두었다. 나는 내가 아꼈던 가수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검정치마를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우고 새로운 이름을 추가했다. 쳇 베이커나 에릭 사티 같은. 가끔은 큐레이팅된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듣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감정을 크게 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하게 만들지 않는 건 당연했고, 신나서 방방 뛰게 만들지도 않았다. 덕분에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내가 하려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음악이 이처럼 편안할 수 있다니. 이건 마치 식물 같지 않은가.

 Y는 내 얘길 듣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식물 같은 음악? 뭔 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에릭 사티 같은 거지.”

 “그냥 있어 보이는 음악 좋아한다고 그래. 어디 가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곡가 이름 얘기하면서 클래식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Y는 쓸데없이 예리한 면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한 말도 진심이었는데. Y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체 라테를 한 모금 들이켰다. 돌체 라테는 Y의 최애 음료였다.

 “돌체 라테가 짱이야.”

 “난 달아서 못 먹겠더라.”

 Y와 나는 그 뒤로도 음악에 관해 얘기했다. Y는 나보다 음악을 훨씬 많이 들었다. 일기 쓸 때도, 밥 먹을 때도, 그냥 누워 있을 때도 음악을 들었다. Y가 듣는 음악은 대체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몇 가지는 좋아하게 됐다. 해리 스타일스라든가, 위캔드라든가.

 Y는 바닥이 드러나도록 돌체 라테를 마신 후 입가를 휴지로 닦았다. 단 음료를 마실 땐 꼭 저렇게 빨리 마시는 게 Y의 습관이었다. 얼음이 녹으면 맛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5천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Y가 말했다.

 “넌 너무 감상적이야.”

 “내가 좀 그렇긴 하지.”

 “가사가 좋으면 그냥 ‘가사가 좋네’ 하고 넘기면 되는데 넌 그게 안 되잖아. 꼭 글로 표현해야 적성이 풀리잖아. 그런 주제에 글 쓰는 건 또 힘들어하니까, 그러니까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울한 게 아닐까?”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인 기분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너 오늘 진짜 예리하다. 질레트네 아주.”

 “그거 면도기 아냐? 면도기가 왜 나와.”

 “아, 드립이었는데 망했다.”

 Y는 뒤늦게 내가 한 농담의 의미를 깨닫고 야유를 퍼부었다. 뭐야, 노잼. Y가 킥킥, 하고 작게 웃었다. Y와 나는 그 뒤로도 음악에 관해 얘기했다. 뉴진스와 아일릿이 얼마나 비슷한가에 관해, 요즘 음악과 예전 음악의 구성 차이에 관해, LP의 유행이 얼마나 갈지에 관해. 참으로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얘기였다. 우리는 질릴 때까지 얘기한 뒤 함께 카페를 나섰다. 2차는 코인 노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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