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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Oct 14. 2021

죽 쒀서 개 주지 말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사람의 공을 다른 사람이 쉽게 가져간다'라는 의미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가로채 간다'는 직설적인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경쟁하는 사회에서는 기대치에 비해 결과가 미미하다.


요즘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화천 대유'를 보면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단군이래 최고의 게이트로 명명되는 사건이다. 리더의 주장은 설계만 했다고 하고 가만히 앉아서 이득을 본 사람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데 정국이 어수선하다. 만약 리더가 밥상만 차리고 한 푼의 이득도 가져가지 않았다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리 그것의 주도권이 민간에게 있다 해도 계획 설계부터 준공까지 관공서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살다 보면 무슨 방법으로 돈을 벌었든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 세상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 사람들은 칭송하고 굽신거린다. 세 치 혀로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얻는 부와 명예도 나중에는 명언이 되고 실력이 되고 만다. 이것이 약육강식이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이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버스회사 회장님이신데 노년에 살 전원주택을 짓고 싶어 하셔서 소개를 해 주시겠다고 했다. 대지의 위치와 지번을 받고 사전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맹지로 둘러싸인 임야를 절개해서 도로를 만들었다. 건축의 야심을 가지고 수년 전부터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역대급 개발계획을 받아 들고 마음이 들떠있었다.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디자인과 설계를, 나의 재산으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재정비용을 들여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였다. 수일 내로 만나기로 하고 준비를 했다.


첫 미팅.

버스 회장님 치고는 너무 젊어서 적잖이 놀랐다. 회사를 부모님으로부터 증여를 받아 사업을 확장하여 버스 운수회사를 차리고 수백억 원 재산가가 되었다고 한다. 미리 준비해 간 나의 프로필과 계획안에 관해 브리핑을 했다. 본인이 노후에 거주할 목적 외에 미술관 갤러리까지 옆 부지에 건축하기를 희망했다. 일반적으로 잘 꺼내지 않던 트레싱지를 꺼내서 즉석에서 스케치를 하며 설명을 도왔다. 배치계획부터 기반시설 토목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회장님은 매우 만족해하셨다. 본인은 강남의 유명한 건축회사와도 상담을 받아봤지만 이렇게 마음에 드는 건축가는 없었다고 했다. 당장 계약하자고 했다. 여기까지는 진행이 순조로워 보였다. 문제는 설계비용을 협의하면서 발생했다.



처음 기획부터 본 설계까지 진행한다면 최소 몇천만 원은 외주 협업 비로 지출이 되는 프로젝트였다. 보통은 계약금을 지불하고 기성에 따라서 공정률 대로 중간 기성을 청구한다. 공사가 완료되기 전 10% 남은 잔금을 받는 게 이쪽 설계시장의 불문율로 통하는 관례이다. 그런데 회장님은 처음 계약금도 없고 중간 기성금도 없으며 공사가 완료된 후 총계약금을 주겠다고 했다. 잘못들은 것인가 내 귀를 의심했다. 


"회장님. 계약을 하시려면 계약금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입금 확인 후 설계 보증서도 발급해 드립니다."

"그런데 공사 완료까지 제 돈으로 경비를 대고 외주비를 처리하란 말씀이신가요?"


"날 못 믿는 건가요.? 공사 끝나면 100% 줍니다.. 난 여태껏 그렇게 살았어요.."


같이 동행했던 지인도 회장님은 원래 그런 분이시라고 맞장구를 쳤다. 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역대급 프로젝트였지만 아주 작은 프로젝트도 이런 식의 계약은 해 본 일이 없었다.


"회장님. 이번 계약은 저와 힘들 것 같습니다."

"일이 욕심은 나지만 협력업체와 외상거래를 하면서까지 모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참... 내..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서로 믿고, 그렇게 일하는 거 아닌가요?"


'회사 들어가 다시 한번 고민해보고 연락드리겠다'라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붙잡지는 않았지만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날 밤 밤새도록 잠을 뒤쳤였고 결국 새벽에 잠이 안 와서 회사로 출근을 했다.


"그래. 일단 속는 샘 치고 한번 시작해보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감동하고 불쌍해서 비용을 줄지도 몰라."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일부러 계약서는 서로 작성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약금도 못 받는 내용이고 잔금 때는 공사 완료 전 승인을 안 해주면 준공처리가 안되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있다고 믿었다. 몇 개월이 지나 허가 접수가 가까워지면서 나의 기대와 분주함은 한숨으로 허물어졌다. 버스회사 회장님은 급작스런 지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멈췄다. 하늘이 두 쪽이 나는 경험을 하면서 며칠 동안 근육통을 감기몸살과 함께 앓았다. 버스회사는 점점 형편이 어려워졌고 급기야 정부에서 법인 세금을 갑자기 올리기 시작했다. 법인 취득세와 종부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회장님은 결국 그 많던 토지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토지주가 나타나 헐값에 토지를 사들였고 역대급 전원주택 계획은 다른 사람의 텃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차분하게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지만 얻은 것도 있다. 분명 돈 앞에 눈이 뒤집힌 건 아니었다. 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현장 사전 점검도 여러 차례 갔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디자인과 설계로 당신의 꿈을 실현시켜 드리겠다고 다부지게 걸었던 희망이 일순간에 날아갔다. 일을 진행하는 동안 재미는 있었다. 3D로 가상의 건물을 짓고 조경을 설계하며 좋은 직업이라고 자부하는 시간이 있어 행복했었다.


모든 일이 다 한 번에 막힘없이 진행이 되는 건 아니었다. 우여곡절도 겪고 실패와 쓴 맛도 봐야 하는 현실임을 자각해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대로 흘러가는 경우도 부지기 수다. 아직 젊고 패기와 능력도 있다. 지금 여기서 실망하여 포기한다면 미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경영자의 마인드로 사업적 이익을 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겠다.

건축가로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며 시원하게 세 수한 번 하고 다시 시작해보자!










인간만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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