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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Oct 13. 2021

'멀리건' 아끼다 똥 된다

남았으면 자신감, 없어지면 불안감

멀리건(mulligan)은 골프 룰 중의 한 방법이다. 정식 프로대회나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변칙이다. 일반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명량 골프로 즐길 때 쓰는 용어 중 한 가지이다. 최초의 티샷(test shot)이 잘못되었을 때, 벌타 없이 주어지는 세컨드 샷을 말하기도 하는데 18홀 중 아무 때나 1회 사용할 수 있는 조커 같은 개념이다. 실력차가 현격한 고수 골퍼들과 경기를 치르다 보면 비기너 골프들은 실수를 연발한다. 그때마다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달라고 하는데 매너상 1회 정도는 눈감아 주면서 플레이를 한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멀리건이 있으면 좋겠지만 동반자에게 딱히 요청하지는 않는다. 골프 스포츠는 한번 샷에 두 번씩 공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만약 두 번의 기회가 있다는 개런티가 있다면 긴장감이 없어지고 동등한 규칙이 아니기에 스코어가 좋아도 골프의 맛이 떨어진다.


티샷 박스에 티를 꽂고 어드레스를 취한 상태에서의 긴장감은 프로나 아마추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티샷이 오비(out of bounds)가 나도 한번 더 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면 누구나 힘 빼고 편안하게 티샷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같은 의미로 '돈'은 어떠한가.

우리가 돈은 벌고 쓰는 것이 묘하게 골프와 닮았다. 돈의 액수가 엄청나게 많다면 물론 안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다. 반면 돈이 없다면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아끼고 살다가 보면 결국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어렵게 돈을 벌어서 자수성가하신 분도 돈을 버는 일은 잘하는데 돈을 쓰는 일은 잘 못한다고 한다. 돈이 엄청 많으신 회장님도 택시를 타면 거리에 따라 미터기 요금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표현을 하신다. 한 달에 몇천만 원의 임대수익이 있어도 매일 먹는 점심식사는 된장찌개 백반이다.



돈이라는 것도 '멀리건'처럼 적절한 때에 써야 빛을 발한다. 아끼다 못쓰고 죽으면 저승에 가져갈 수도 없다. 돈이 행복을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삶의 가치까지 만들 수는 없다. 돈의 가치인지, 인간의 가치인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인생의 가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돈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으며 불로 장생할 수도 없다.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없는 것들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이치가 그렇듯 인간이 만든 돈이란 것에 물질만능주의로 변해가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돈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결국 화폐인 돈은 종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코인 시장도 눈에 안 보이는 전자화폐로 움직인다.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군가는 돈을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 시장이다.




나는 돈을 버는 족족 부동산을 샀다. 요즘은 주식도 한다. 듣기 좋은 표현으로 재테크라고 하지만 노후준비가 더 맞는 말이다. 나 자신이 스스로 개런티 할 수 없으니 미리미리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갑에는 현금이 없다. 고작 오만 원권 한 장과 몇만 원의 지폐가 전부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니 현금이 필요하지 않다. 물건을 구입할 목적으로 쿠팡을 검색할 때는 몇천 원이라도 싼 물건을 고른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장바구니에만 넣어놔도 이미 구입한 것처럼 기분이 들뜬다. 언젠가는 구입하겠지만 몇 달을 쟁여둔 장바구니 아이템은 쌓여만 가고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나 구입을 망설였던 물건은 품절로 확인되고 구입할 시기를 놓쳐버린다. 그렇다고 후회되거나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잘 참아서 돈을 절약했다는 뿌듯함이 더 크다.


영화 <돈> 2019  포스터 이미지


건축주와 설계 계약을 할 때가 되면 고민이 깊어진다. 정해진 설계비 단가나 요율이 없기 때문에 협의를 통해서 설계 계약이 이루어진다. 딜 (deal)을 잘해야 돈을 버는 구조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지를 예상해서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 실력이다.


네고시에이터 (negotiator)를 적절히 잘해서 상대방도 손해 봤다는 생각이 안 들게 하는 것이 좋다. 네고 금액이 보통은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까지 움직인다. 그날 기분에 따라 "그럼 한 이백 네고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딜이 다반사다. 이백만 원이면 한 달 생활비로 쓸 수 있는 큰 금액이다. 쿠팡에서 몇천 원을 아끼려고 몇 시간을 고민하는데 단 몇 분 만에 이백만 원을 깎아주기도 한다.


계약일에 남자 건축주인 경우에는 일부러 여자 직원과 함께 계약서 작성을 가기도 한다. 남자들의 자존심을 이용해서 네고 네이션 당하는 일을 면해보자는 심리전이기도 하다. 기묘한 괴리감이 형성되고 있지만 세상 사는 이치이려니 하고 실상에 맞추어 움직인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따내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다던 마음이 프로젝트를 결정하고 계약이 끝나는 동시에 다른 욕심들로 채워진다. 이전에 마음먹었던 소중하고 간절한 마음들이 계약 성사가 끝나면 또 다른 계약 프로젝트에 진정성이 옮겨간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음을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할 때가 많다.










멀리건과 돈의 노예가 되지 말자





출처 이미지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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