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황금노트

"죽기 전 남자들이 남긴 말 1위"

호스피스 병동 남자 환자 10명 중 8명이 남긴 단 세 글자

by 황금노트

새벽 5시 30분, 38년간 몸에 밴 습관으로 눈이 떠졌습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정년퇴직 후 첫날 아침이었습니다.

정장을 입으려다 멈췄습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지만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차린 아침상 앞에 마주 앉았습니다. 평생 함께 살았지만 이렇게 오래 마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이 전부였던 남자의 삶은 그렇게 멈춰 섰습니다.

젊었을 땐 가족보다 일이 먼저였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현관문을 여는 시간까지 정확히 23분. 38년간 단 한 번도 지각한 적 없었습니다.

토요일에도 출근했습니다. 냉장고 메모지를 보고서야 아들의 발표회를 기억했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다음엔 꼭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다음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아빠에게 기대하지 않게 됐습니다. 학교 행사에 아빠가 온다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고, 그게 나도 아이도 아내도 모두에게 당연해졌습니다.


결혼기념일을 잊은 해가 있었습니다. 밤 11시에 집에 들어왔을 때 식탁은 이미 정리돼 있었습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자는 척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승진이 중요했고, 연봉이 중요했습니다. 부장으로 승진한 날, 동기들보다 1년 빨랐습니다.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눈빛은 차가웠습니다.

장모님은 가끔 말했습니다. 우리 딸이 외롭게 산다고, 남편이 있으나 마나 하다고. 기분이 나빴지만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돈 벌어다 주는 게 남편의 역할 아닌가.'

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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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병원에서 통보를 받았습니다. 췌장암 3기.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아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아내가 우는 모습을 몇 번 보지 못했습니다. 그날은 달랐습니다. 아내를 끌어안았고, 괜찮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거짓말인 걸 둘 다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말해야 했습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됐습니다. 5차를 받던 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정신을 잃었습니다. 응급실에서 깨어났을 때 아내가 내 손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평생 이렇게 오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일하는 아들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아빠의 변한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표정이었습니다. 30대 중반의 어른이 된 아들이 아이처럼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평생 아들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었습니다. 운동회도, 입학식도, 졸업식도 가지 못했습니다.

결혼해서 부산에 사는 딸도 왔습니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좁은 병실에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있는 게 언제 이후인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나를 버렸습니다. 퇴직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달랐습니다. 내가 아프니까 달려왔고, 곁을 지켰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지켜야 했던 건 회사가 아니라 가족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항암 치료 8차가 끝났을 때 의사가 말했습니다. 더 이상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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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차 호스피스 상담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미안하다고."

상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남자 환자 10명 중 8명이 똑같은 말을 한다고.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고, 고맙다는 말도 아니고, 미안하다는 말이라고.

"평생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마지막 순간 터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일하느라, 자존심 때문에, 남자라서 참았던 말들이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거죠."

맞는 말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안하다는 말이 약해 보였습니다. 남자가 그런 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권위도, 자존심도, 체면도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저녁이 됐을 때 아내가 병실에 왔습니다. 침대 옆에 앉은 아내의 옆모습을 봤습니다. 흰머리가 반 이상이었고, 주름이 깊었습니다.

평생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게 아내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꿈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외로웠고, 힘들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습니다.

"미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괜찮다고, 이제 와서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목이 메었습니다. 평생 하지 못한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세 글자를 내뱉었습니다.

"미안하다."

후회가 가장 컸으니까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더 함께 있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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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계신가요? 혹시 '나중에'를 기다리고 계신 건 아닌가요?

지금 마주 앉아 말하십시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너무 늦기 전에.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셨나요? 황금노트에는 이처럼 누군가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후회를 지혜로 바꾸는 시간, 함께하시겠습니까? 오늘 하루, 당신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 말 한마디 건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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