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황금노트

당신의 장례식에 올 사람은 몇 명입니까?

38년 회사 생활, 명함 500장이 남긴 것

by 황금노트

퇴직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서재 정리를 하다가 두툼한 가죽 케이스를 발견했습니다. 38년간 모아 온 명함첩이었습니다. 500장이 넘는 명함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김 부장, 이 과장, 박 이사. 얼굴이 기억나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떠오르지 않는 이름도 많았습니다. 명함 뒷면엔 골프 약속, 저녁 식사, 프로젝트 협의 같은 메모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는 중요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전화번호를 하나씩 확인해 봤습니다. 살아 있는 번호는 180여 개. 나머지는 이미 사용하지 않는 번호였습니다. 그중에서 최근 1년 안에 연락한 사람을 세어봤습니다.

딱 12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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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직장 생활이 남긴 숫자였습니다. 회사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500장의 명함이 38년의 무게를 말해 주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12명. 그것도 회사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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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장례식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달 갑자기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대학 동기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명함이 천 장은 넘을 거라고 자랑하던 친구였습니다. 골프 모임, 동창회, 각종 사교 모임에 항상 바쁘게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빈소는 한산했습니다. 오후 7시, 보통 회사 사람들이 몰려올 시간인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족석에 앉은 부인과 자녀들만 보였습니다.

조문록을 봤습니다. 이름이 스무 개 정도 적혀 있었습니다. 대부분 친척 이름들이었습니다. 38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회사 후배는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조문객 수를 세어봤습니다. 30명 남짓. 그것도 대부분 친인척이었습니다. 명함 천 장이 남긴 숫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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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로 진행하는 생전 장례식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건 그 이후였습니다. 관 속에 누웠습니다. 완전히 어두워진 관 안에서 5분을 보냈습니다.

처음 1분은 숨이 막혔습니다. 다음 1분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내 얼굴, 자식들 얼굴, 친구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3분째가 되자 눈물이 났습니다. 왜 우는지 모르겠었습니다. 그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4분째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왜 더 잘해 주지 못했을까. 왜 전화 한 통 하지 못했을까. 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을까.


관 뚜껑이 열렸을 때 다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관 속 5분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기억할 사람은 몇 명 없다는 것.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명함보다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1년 후, 동네 슈퍼 주인의 장례식에 갔습니다. 대기업 임원도 아니었고, 명함 천 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동네 슈퍼 사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문객이 200명이 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따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건네는 커피 한 잔, 잠깐 나누는 대화, 어려울 때 내민 손. 그게 사람들 마음에 남았던 것입니다.

명함 500장보다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진심 어린 인사 한 번,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친절 하나. 그게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달라졌습니다.

아파트 경비실에 먼저 인사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도 먼저 인사했습니다.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38년을 함께 해 줘서, 옆에 있어줘서.

한 달이 지나자 전화 연락하는 사람이 12명에서 15명으로 늘었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였습니다.

내 장례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12명이 올지, 20명이 올지, 100명이 올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입니다. 오늘 누구에게 전화했는가. 오늘 누구를 웃게 했는가. 오늘 누구에게 따뜻했는가. 그게 쌓여서 내 인생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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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례식은 지금 이 순간 준비되고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한 통의 전화, 오늘 한 번의 인사, 오늘 한마디의 고마움. 그 작은 것들이 쌓여 당신의 마지막을 만듭니다.

지금 마주 앉아 말하십시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너무 늦기 전에.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당신도 혹시 핸드폰의 연락처를 다시 꺼내보시겠습니까? 그 안에 진짜 당신을 기억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황금노트'에는 이런 진솔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살아가며 놓쳤던 것들, 늦기 전에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https://youtu.be/Io4 YcB8 yE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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