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날아간 새
“대학원에 다니겠다고?”
두 달가량 집에서 백수로 놀던 어느 날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서 어머니께 내 계획을 말씀드렸다.
“네. 그냥 이렇게 노느니 공부를 더 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싶어요.”
엄마는 국자로 국을 뜨시다 말고 잠깐 멈칫하시더니 말씀하셨다.
“너 좋을 대로 해라. 그 대신 장학금은 꼭 받고…”
나는 야간대학원에 등록했다. 주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려고 했으나 요즘에는 고등학생 아르바이트 수요가 많아서 그것도 얻기 힘들었다. 그래서 조그만 보습학원에 수학 강사 자리를 얻었다.
일찍 끝나는 초등학생들은 오후 두 시부터 오기 때문에, 오전 열한 시쯤 출근해서 원장, 부원장과 함께 회의를 하고 수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중고생들이 오는 저녁 열 시까지 수업을 했다. 다행히 오프라인 대학원 강의를 듣는 화, 목요일은 저녁 여섯 시면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저녁도 굶고 집에 오면 밤 열한 시건 열두 시건 냉장고를 뒤졌다. 밥과 반찬을 꺼내 밤에 돌아다니는 쥐처럼 부스럭거리며 먹고 바로 잤다.
운이 좋은 날은 냉장고에 먹다 남은 삼겹살도 있어서 조심스레 구워 먹기도 했다. 육십 세를 바라보는 연세의 어머니가 퇴근하셔서 곤히 주무시는 데 감히 깨울 수는 없었다.
귓속의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는 더 잦아졌다. 어느 날은 수업을 하는 중에도 들렸다. 정말 신기한 건, 그 소리는 나만 들린다는 거였다.
“혹시 무슨 소리 안 들려?”라고 바로 옆 자리에서 일하는 강사에게 한번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일자리도 잘못하면 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왜냐하면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은 모두 평화롭지만 분주하게 자신들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모든 게 낯설게만 보였다.
* * *
한의원에서 약을 타 가지고 온 후, 어머니에게는 그냥 두통이 좀 생겨서 약을 먹는다고 말씀드렸다. 일주일에 한 번 침을 맞고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새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한 밤중에 잠을 깨고, 악몽을 꾸고, 지옥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예전에 갔었던 그 지방 소도시의 이비인후과 의사가 한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는 귀 속에서 지저귀고, 그 소리를 당신이 이해하고 알아들을 때까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당신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할 때까지 노래를 부를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밖에 나가서 아무한테나 짹짹거리기라도 하라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는 방 안에서 내 입으로 조그맣게 “짹!” 하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소리가 괜찮았다. 다시 또 해 보았다.
“째재잭, 째재재재재잭…”
한번 더. “째재재재잭~~~ 재재째 재재재잭~~~~ ”
하하하. 이거 재밌는데. 아예 음률을 넣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째재잭~~ 재재재재잭~~~ 재재재재액~~~~ 잭잭~~~ ”
대한민국 국가도 부르고, 귀에 익은 CM송도 부르고, 좋아하는 그룹 ‘여자친구’ 노래도 짹짹 만 넣어서 부르고,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TT도 짹짹으로 부르고,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내가 내가 내가 내가~~ ” 이것도 가사만 ‘짹짹’으로 바꿔서 한 세 시간가량을 그렇게 혼자 짹짹거리며 새벽에 혼자 노래를 불러댔다.
내가 드디어 미쳐가나 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언제 미친 짓을 했냐는 듯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그동안 춥다고 너무 오래 두어서 먼지가 쌓인 내 자전거도 깨끗이 닦고,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었다.
내가 사는 동네 굴포천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박물관 뒤쪽에서 시작해 공원길을 지나 꽃과 풀이 줄지어 있는 큰 개천 길을 따라가면 호수마을 뒷길까지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이어진다. 그 길은 굴다리를 사이에 두고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있고, 영선고등학교 건물 건너편까지 질러 건너갈 수 있는 큰 다리도 놓여 있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함께 커플티를 맞춰 입고 조깅하러 나온 부부, 안전장비를 다 갖추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 등… .
푸른 하늘빛 아래 뿌려진 듯한 구름과 나무와 풀들이 잔잔한 수면에 비쳐 거울처럼 반사되는 경관이 너무 예뻤다.
굴포천 자전거 산책길이 그 유명한 캐나다의 ‘모레인 호수’와 거의 비슷하거나 아마 더 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바람을 맞으며 계속 자전거를 달렸다.
...
‘조금 돌아가도 돼, 많이 돌아가도 괜찮아.
처음에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어도 돼!
길은 길로 이어지니까ᆢ가다가 힘든 길을 만나면 되돌아가면 돼. 샛길도 가보고, 큰길도 가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만 해도 재미있겠지.
그것으로 괜찮을 지도 몰라. 그냥 바람 향기만 맡을 수 있다면ᆢ'
그때였다. 내 귀속에서 새가 날아갔다고 느낀 것은.
왼쪽 귀 속이 잠시 근질거리더니 몸을 비틀면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푸드덕. 짹짹. 푸드드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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