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쟁을 치르며, 매일 우체국에 가서 이력서를 부쳤다. 누런 큰 봉투 위에 <입사원서 재중> 이라고 크게 쓴 뒤 꼭 ‘등기 속달’로 보냈다. 온라인 지원한 회사만 몇 십 군데였고, 그 외에 회사에 직접 이력서를 가져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최종 면접까지 간 회사는 십여 개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취업은 힘들었다. 어떤 회사는 규모가 너무 작았고, 어느 회사는 너무 멀었으며, 또 어디인가는 이력서만 대충 흩어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영원히 연락은 오지 않았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면접을 보고 나오던 길에 누군가가 “4대 보험도 안 되고 벌써 몇 달 째 월급이 밀리고 있다”는 정보까지 귀띔해 주기도 했다.
그 동안에도 새는 계속 귀 속에서 짹짹거렸다. 그냥 스트레스성이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다.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새소리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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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회사를 지원한 건 고등학교 동창 녀석 때문이었다. 게임과 애니 ‘덕후’였던 그놈은 매일 컵라면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나는 그렇게 막 사는 놈은 사실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인간관계가 별로 넓지 않은 내가 그래도 유일하게 대학 졸업 후에도 만나서 같이 게임하는 친구였고, 그놈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재미도 있었다.웹툰 작가가 꿈이었던 그놈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자기가 아는 게임회사 사원모집 공고가 떴다며 지원해 보라고 했다.
게임회사라ᆢ?글쎄ᆢ? 나는 영화나 만화는 좋아하지만 게임은 잘 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전공하고도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라 좀 망설여졌다. 그래도어쨌든취업을 해야 했으므로, 이것 저것 가릴처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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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회사에 지원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네. 전 게임을 좋아하고 제 전공인 마케팅에 접목해 게임 유통과 마케팅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
“게임은 어떤 종류를 좋아하시나요?”
“전략 시뮬레이션입니다. 롤플레잉도 하고요.”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외국 게임업체 관계자와도 비즈니스 관련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영어 잘하시나요? 토익 점수가 없네요?”
앗, 이건 생각 못했다. 어떻게 하지?
나도 모르게 오기가 생겼다. 이력서를 한 백 통 넣고 면접까지 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네. 영어 잘합니다.”
간단한 대답이었다. 잘하는 편이라고 하려다 그냥 짧게 말해버렸다. 면접관은 바로 이어서 물었다.
“그럼, 독해를 잘합니까? 회화를 잘합니까?”
두 번째 시험이었다. 다행히 내 대답이 아주 순발력 있게 나와 주었다.
“물론, 둘 다 잘합니다. ”
그렇게 해서 나는 서울 강남에 있는 소규모의 게임 유통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면접관이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나를 면접했던 그 '하늘같은 선배님'은, 나중에 술자리에서,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모습에서 점수를 높게 줬다"고 말했다.사실 난 그냥 하도 여기저기 떨어지고 나니 자존감이 떨어져서 객기라도 부려보고 나오자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이었는데ᆢ
남들은 내가 취업한 회사에 대해 다들 부러워했다.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하면서 월급을 받으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내가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회사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작은 규모의 온라인 게임제작업체를 관리하는 거였다.제작사에서 만들 게임들의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모든 제작과정을 지켜보고 조언해주며, 게임이 출시되면 게임 광고, 홍보는 물론이고 소비자 만족도 조사 및 경품 선정에 이르기까지 게임 출시 전반에 걸쳐 퍼블리싱을 하는 일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매일 저녁 열 시 넘게 야근을 하고,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바쁘고, 아홉 시 넘게 늦은 외근도 잦았지만 그래도 처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적어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 * *
그날은 신입사원 환영회 및 부서 단합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영업부와 마케팅 직원들이 1차로 술과 함께 저녁을 먹고, 2차로 노래방을 갔다가 중간에 슬쩍 빠진 사람들을 제외하고 함께 3차로 호프집에 모였다. 더운 여름날 저녁 은색 주석 잔에 담긴 맥주는 시원했다.
여직원들도 대여섯 명 가량 저녁 열한시 경 까지 남아있었다. 몇몇은 취해서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또 몇몇은 무언가 계속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막 술자리를 파하고 집에 돌아가려 할 때였다. 저쪽 테이블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영업부 팀장과 마케팅 팀장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더니갑자기 욕설이 크게 들려왔다.
“씨발… 좇같은 새꺄!”
몇몇 직원들이 술을 마시다 말고 놀라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팀장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주먹다짐을 하기 시작했다.
꺄악~ 하는 여직원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다른 직원들이 몸싸움을 말렸다. 둘은 씩씩거리다 자리에 앉는 듯 했다. 하지만 영업부 팀장은 분이 덜 풀렸는지 갑자기 일어나더니 테이블을 다 뒤엎어 버렸고, 마케팅 팀장은 이에 질세라 근처에 있던 맥주병을 집어 들고 테이블 모서리에 대고 촤앙! 부딪혀 깨버렸다.
날카로운 톱날 모양이 된 병은 허공을 향해 몇 번이나 휙 휙, 날아다녔다.
조폭 영화가 따로 없었다. 쨍그랑, 챙챙.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순식간에 호프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직원들은 어느 새 핸드백을 챙겨들고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남은 남자 직원들은 겨우 팀장들을 수습해 호프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우리는 연신 호프집 직원들에게 사과하면서 내일 보상 내역서를 가지고 회사로 오시라고 말했다. 한밤의 난투극이 끝났을 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음료를 두 병 샀다. 팀장들은 여전히 길가 골목 앞에 쭈그리고 앉아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음료수 병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다.
“저 이 회사 들어온 지 겨우 한달된 신입사원입니다. 팀장님들 오늘 너무 하셨습니다. 술 깨시고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황당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그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총알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들어갔다. 왼쪽 귀 속에서 또다시 새가 짹짹… 째재잭… 짹재재재재잭 거렸다. 귀가 아파 견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