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새를 어떻게든 없애 버려야겠다. 너 죽고 나 살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모든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인터넷 까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새” 혹은 “귀”, “귀에 사는 새”, “귓속에 사는 새”, “내 귀에 새”, “시끄러운 귓속 새” 등등을 검색어로 입력했다. ‘새의 종류’, ‘귓병’ 등의 연관검색어 아래 ‘이명’ 또는 난청‘에 관한 광고가 눈에 띄었다.
…이명이란 실제로 외부에 소리자극이 없는데 귀에서 뇌까지 소리전달이 되는 과정 중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겨서 간헐적, 지속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현상입니다.
이명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귀뚜라미, 여치나 매미처럼 벌레 우는 소리부터 생활 소음에 해당하는 세탁기소리, 종소리, 기차, 파도, 바람, 초침, 폭포, 맥박, 북, 증기, 제트기, 빗방울, 쇳소리, 삐 하는 소리까지…
헉. 이렇게 많은 종류의 소리가 귀에서 들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명에 수반되는 증상으로는 난청, 어지럼증, 불면증, 두통, 위장장애. 불안, 관절통, 우울증, 귀 막힘, 신경쇠약, 노이로제, 구토 등이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체력이 약하고 원기가 부족하며 근심과 심리적 압박이나 정신적 충격이 있을 때, 긴장할 때, 각종 귀 질환이 있을 때…
그래. 내 증상과 너무 비슷하네. 특히 불면증과 두통은 정말 그렇다. 그런가? 나도 정말 귀 속에 새가 사는 게 아니라 이명이 있는 게 아닐까? 엊그제 병원에 갔을 때 본 그 새는 너무 작았어. 혹시 귀지나 때 같은 게 마치 새처럼 보인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예전의 그 이비인후과 원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다시금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가야겠다. 한의원은 이비인후과가 아니기 때문에 혹시 내 귀 속에 정말로 새가 살더라도 귀 속을 첨단 장비를 이용해 들여다보지는 않겠지. 검진을 한다고 해도 너무 깊숙이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귀 속을 보자고 하면 그냥 이명이니까 치료해 달라고 하면 되지. 침, 뜸, 부항, 한약… 뭐 이런 요법을 쓰면 좀 나아지지 않겠어? 라고 나는 내내 생각하며, 주변에 물어물어 잘한다는 한의원을 찾았다. 그냥 요즘 두통이 심하고 원기가 허해서 약 한 첩 지어먹으려 한다고 둘러대면서…
* * *
드디어 인천에 있는 꽤 유명하다는 한의원에 가게 된 건 전화로 예약을 한 지 꼭 한 달만이었다. 토요일 오전, 그 한의원 병원 앞에는 길거리까지 사람들이 나와서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은 나이가 좀 드신 어르신들이었고, 키 성장을 위해 엄마 아빠와 손목을 잡고 온 아이들도 보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삐요삐요 소리를 내면서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한 손엔 사탕을, 또 한 손엔 엄마나 아빠가 억지로 손에 쥐여 준 학습지를 풀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 대기하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한의원 원장은 귀는 보지도 않고 내 손목을 짚어 보더니 말했다.
“흠… 기가 허하시군요. 그러니 새가 짹짹댈 밖에요. 스트레스 많으시고 과로도 많으시고… 화병이 좀 있지요? 나가셔서 귀 근처에 침 몇 대 맞으시고요. 다음 주에 한약 받으러 오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침 맞으시고 한 달 한약 드시면 많이 나아질 겁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든 의사 면접은 항상 오 분도 채 안 된다. 한의원은 왜 어디나 하는 말이 다 비슷할까?
진료실 밖에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앉아있었고, 전문 침술사가 흰 천으로 싼 침통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침을 한 대씩 놔 주고 있었다. 어쨌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왼쪽 귀 뒤쪽 가운데 부분에 일단 침을 한 대 맞았다.
아야. 따끔했다. 이어서 그 아래쪽도 한 대. 이런 식으로 왼쪽 귀 뒤에는 다섯 개의 긴 바늘이 꽂혀 고슴도치 꼴이 되었다.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았다. 좀 보기 흉하지만 할 수 없지.
한의원에서 집까지 전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겨울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양에서 운서까지 가는 공항철도는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 같다.
하늘에 더 가까운 기차는 긴 영종대교를 건너고, 바다가 보이고 드문드문 예쁜 주택들도 간간이 보인다. 길게 드리운 섬의 지평선이 은빛 구름과 맞닿은 풍경이 참 좋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커다란 여행 가방을 몇 개씩 자기 무릎 앞에 두고 있었다. 터반이나 히잡을 두른 중동 인들과 코가 크고 머리카락과 눈 색이 에메랄드빛인 사람들도 자기네들끼리 뭔가 이국적인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추운 날씨였지만 전철 안은 안락했다. 내가 앉은 알루미늄 전철 의자가 그렇게 푹신하게 느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특히 새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너무 행복하고 평화로웠고, 내 귀에 진짜로 새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난 어린 시절 봄날 할머니 댁 마당 앞 평상에서 그랬듯,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눈꺼풀이 노란 햇살을 살짝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