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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Oct 17. 2024

내 귀에 새가 산다-3

  

3. 노란 새, ‘리나

 

 그 새, ‘리나’는 죽었다. 리나는 노란 새였다. 날개 죽지 부분과 머리 가운데 부분은 예쁘게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리 위 콧구멍처럼 생긴 부분이 분홍빛을 띄었으므로 암컷일 거라고 했다.


  내가 직접 리나를 할머니 집 마당 안뜰에 고이 묻어 주었다. 우리는 크리스챤이 아니므로 십자가 따위는 그 위에 세우지 않았지만. 할머니 집에 피어있던 보랏빛 주홍빛 철쭉들 사이로 조용히 돋아난 하얀 색 철쭉 아래 흙을 파서 작은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엄마 아빠와 나는 거의 매주,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그렇게 자주 시댁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게 좋았다.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크고 방도 많았고 마당에 정원까지 있었으며, 커다란 개부터 갓 낳은 새끼 강아지까지 개 대여섯 마리가 대문 앞에서 왈왈 낑낑대곤 했다.

  

집 옆에는  쓰러져가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레스토랑 겸 까페로 운영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대문짝이 다 빠져 있고 가끔 야밤에 취객이 몰래 들어와 실례를 하곤 해서 가까이 가면 오줌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그 건물 안에다 큰 고양이 우리를 몇 개 설치하고 열댓 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기르셨다.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에 나는 항상 커다란 금빛 원형 새장 안에 리나의 좁쌀 모이를 잔뜩 담아서 챙겨갔다. 새장을 무릎에 안고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두 시간 가량을 계속 흔들리며 가면서도 왠지 리나가 신나서 짹짹거린다고 느꼈다.


 그러는 사이 차 안 바닥은 새똥과 물과 흘린 새모이로 지저분해졌지만… 할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해서 들고 들어온 새장을 보자마자 엄마 아빠에게 꽥 소리를 지르셨다.    

 

 “너희는 새털이 얼마나 사람 몸에 안 좋은 줄 아냐? 얼른 치워라! 애 호흡기 질환 생긴다.”     


 개와 고양이를 수십 마리나 키우시는 할아버지가 왜 내가 대형마트에서 입양해 온 리나는 그렇게 싫어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서 리나를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갔던 건데할아버지도 예전에 카나리아를 키우셨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인간과 동물이 같은 곳에서 먹고 자는 것이 싫으셨던 것 같다. 우리는 거꾸로 할아버지가 개 우리와 고양이 우리를 그렇게 지저분한 곳에 두는 것이 바로 ‘동물 학대’라고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          *          *     


 리나는 원래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입양해 올 당시엔 손가락에도 올라오고 어깨에도 올려놓고 다니기도 했지만 며칠 지나자 새장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새장 밖에 꺼내서 놀아 주려고 해도 손을 쪼는 등 까칠하게 굴었다. 나는 손등을 보호하기 위해 목장갑을 끼고 리나와 한창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이 놀러오면 난 어김없이 리나를 소개했고, 날씨가 좋으면 새장 째 놀이터에 들고 가서 동네방네 리나를 구경시켰다. 윙컷을 해 주어서 리나가 하늘로 날아가 버릴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집 밖에서 새를 꺼내는 건 항상 조심스러웠다.


 가을이 되자 리나는 털갈이를 하는 지 한번 푸드덕 거릴 때마다 엄청난 양의 노란 털을 온 거실에 흩뿌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한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 말대로 리나를 베란다로 옮겨 버리셨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나는 곧 리나가 우리 집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고, 일주일 뒤 갑자기 ? 짹짹 소리가 들리지 않네?’ 하는 생각이 들어 베렌다로 급히 나갔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새장 바닥엔 초록과 하얀 색이 반반 섞인 새똥과 좁쌀 껍질 같은 먹이 부스러기, 곰팡이가 핀 사과 껍질, 그리고 노란색 새털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조용히, 그리고 뻣뻣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노란 새가 보였다     


 리나는 왜 죽었을까? 모이가 부족했던 걸까? 물을 자주 안 갈아줘서? 썩은 사과 조각을 먹고 배가 아팠을까? 베란다가 너무 추웠나? 이유가 무엇이든, 리나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리나가 불쌍했다ᆢ      


 *          *          *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 귀에서 처음 새 소리가 난 건 리나가 죽은 지 한 달 쯤 된 후 부터였다. 그 즈음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셨다. 어린 나는 방에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그저 문 뒤에서 숨죽이며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엿들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뭣 때문에 두 분이 그렇게 싸우셨는지도 생각이 잘 안 난다. 엄마에 대한 아빠의 불만은 내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엄마가 깜박 잊고 아빠의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았다든가, 양복바지 줄을 잘 못 잡았다던가, 냉장고에 먹다 남은 수박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든가, 먹을 걸 제대로 챙겨놓지 않고 출근을 했다든가…

 엄마는 아빠가 집에서 청소기 한번 돌려주지 않고, 쓰레기 한번 버려주지 않으면서 엄마를 무시하고 잔소리를 한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맞벌이 부부인 엄마 아빠는 두 분 다 항상 바쁘셨고, 우리 집엔 아침 저녁으로 내 밥을 차려 주러 오시는 이모할머니가 계셨다. 오후에 집에 오면 항상 심심했다. 그래서 가끔 스케치북에 리나를 그렸다. 새장 속 바닥에 조용히 누워 있는 리나. 눈은 ‘x’자 두 개로 그렸다.


 저녁 아홉 시가 조금 넘으면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오셨고, 내가 자려고 누워 있으면 엄마는 내 이마에 뽀뽀를 해 주셨다. 안 자고 기다리면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실 때도 있었다.

  더 늦게 열한 시나 열두 시가 되면 아빠가 오셨다. 아빠가 오셨다는 건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살림을 정말 못 한다”며 비난하셨고, 이에 엄마는 질세라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친정, 시댁 도움 하나도 못 받고 회사 일에, 육아에, 가사노동까지  하는데! 당신은 저녁 열 시 전에 들어온 적이나 있어?”     


그럼 내가 놀아? 나도 매일 밤새고 힘든 데 들어오면 반갑게 맞아주기는커녕 도끼눈이나 뜨고! 당신은 분리수거 해본 적도 없지?”     


오늘 아침에 나 머리 감는데, 애가 밖에서 문 두드리고 징징대는데! 당신은 소파에서 여유롭게 신문 보고 있더라? 급하게 젖은 머리에 수건 두르고 나와서 당신 모습 보는 데 얼마나 기가 찼는 줄 알아? 얼마나 애가 아빠를 남처럼 생각하면 나한테만 와서 매달리겠어?”  

   

“그럼 회사 그만 둬! 애나 키우면 되잖아!”


“뭐? 내가 왜?”     


   하지만 엄마의 분노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아빠는 견고한 철옹성과 같이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일은 무조건 여자가 해야 한다’라는 21세기 남편 같지 않은 18세기적 사고방식으로 엄마를 대했고, 그런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건 바로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는 처음 결혼했을 때는 참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좋은 남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른들 앞에서 손잡는 거 아니다”, “내 앞에서 내 아들이 설거지 하는 꼴 못 본다.” 등 전형적인 시어머니 잔소리를 하셨고, 아빠는 할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점점 보수적인 남편이 되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손주인 나에게는 항상 먹을 것 잘 챙겨 주시고 너무나 자상한 좋은 분이셨다. 내가 초등학생이 된 후 할머니 댁에 자주 가지 못하자,  할머니가 가끔 안부 전화 좀 하라고 하셔서, 용돈도 좀 더 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종종 전화를 드렸다.


  할머니는 학교는 잘 다니냐”, “공부는 잘 하냐”, “친구들은 많으냐등을 물어보셨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 물어보셨다.  

   

“그래, 너희 엄마랑 아빠랑 혹시 또 싸우냐?”


“네, 맨날 아빠가 엄마한테 반찬가지고 뭐라 해요… ”


“음. 그건 엄마가 잘못했고… ”     


 할머니의 “그건 엄마가 잘못했고… ” 다음에는 그 어떤 말도 이어지지 못했다. 그 다음 말은 할머니가 하시지도 않았고,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네, 알겠어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끊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내가 엄마 아빠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지 할머니는 항상 “그건 엄마가 잘못했고…” 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           *           *     


 그 즈음, 꿈에 리나가 나타났다. 리나는 새장 안에서 스스로 작은 문을 위로 밀어 열고 내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리나는 침대 머리맡으로 오더니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짹 째재재잭…  나는 그 새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꾸 “응?” “뭐라고?” 하며 되묻자 리나는 거실로 푸드덕. 날아가더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조각 하나를 물고 다시 나타났다.


 모서리가 꾸깃꾸깃한 종이조각, 그건 내가 예전에 유치원 다닐 때 끄적끄적 낙서를 하다가 꾸겨서 휴지통에 버린 연습장 종이였다.

    

“ㅇ  ㅜ   ㅎ  ㅡ  ㅣ”     


 결국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가끔씩 귀 속에서 리나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리나는 중요한 순간에도, 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계속 짹짹거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중요한 면접을 보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귀 속에서 무언가 짹짹거리는 그것이 ‘리나’였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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