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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Oct 25. 2024

레위인의 변론-8

나야, 사사진

<사사>

... 내가 치라에게 선 수임료를 20000스코 가량 지급하기는 했지만, 재판에서 이기면 치라는 내게서 선 수임료의 세 배 이상을 받는다. 무죄일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유죄라 하더라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정도라면 일상 생활 하는데 큰 지장이 없으므로 20000스코를 더 주기로 했다.


그런데 왜ᆢ? 치라는 꼭 지고 싶은 것처럼 보일까?


  그러고 보니 치라가 일전에 지구의 뉴질랜드에 여행 갔었다가 사고를 당해 꽤 오래 입원했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난다. 혹시 그때 이후로 뇌세포가 망가져 지능이 조금 떨어진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어서 나에 대한 악의를 품은 게 아닐지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여차하면 다시 한 번 치라에 대한 변호사 불신임을 제기하고 스스로를 변호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재판관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20분 뒤에 다시 시작하죠."


                         *                      *                     *


# 우주력 1045년. 11월 10일. 치라의 변호사 사무실


"배심원 구성이 가장 중요해요. 사사진과 나이대가 비슷한 미혼의 남성 인간이 배심원으로 선정된다면, 아무래도 사사진의 입장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게 될 거예요.

아무리 사사진이 안드로이드였더라도, 외견상 인간 남성과ᆢ 전혀 구분이 가지 않으니까요ᆢ? 아ᆢ 함ᆢ"


  우주재판은 배심제이다. 은하계의 여덟 개 행성에서 무작위로 선정한 8인의 배심원이 출석한다. 무작위라고는 하지만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20세 이상 100세 이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결격사유가 없을 것. 재판 당사자들과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이해관계가 전혀 없을 것 등이다. 

선발된 배심원들은 모두 공정한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서약한다. 정리들은 까다로운 배심원 선정 절차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입을 쩍 벌린 채, 하품하며 말을 하는 바람에 치라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잠깐 혐오감이 일었지만 어쨌든 치라와 나는 한 배를 탄 셈이니, 참기로 한다.


  치라와 나는 함께 밤을 새 가며 재판을 준비했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판사가 되기 위해 대학 때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이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 잠도 못 자고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다니ᆢ


"제 나이 또래의 딸이 있는 나이 지긋한 남성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요? 그깟 망가진 기계 하나 분해했다고 앞날이 창창한 딸의 미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ᆢ이 경제력 없는 '할아버지'들의 노후는 거의 대부분 딸들에게 달려있잖아요? 

게다가, 어떤 연구자료를 보면 아빠들은 딸들을 볼 때 연인을 볼 때와 같은,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던데ᆢ그 할아버지들이 딸같은 저에게 더 공감하여 제 편이 되어줄 수 있겠죠."


나도 치라에게 내 의견을 밝힌다. 그래도 이렇게 전공이랍시고 그동안 배운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배심원들이 가진 여러 가지 기본적 요소도 중요해요. 성별이나 직업, 나이, 가족구성원뿐만이 아니라,  사는 행성의 환경이 척박한 지, 아니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누리고 사는지, 소득이나 생활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 지적 능력이나 윤리의식은 어떤지, 계급이나 권력의 활용가능 여부 등도 따져야죠."


 치라의 부가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배심원들은 어떤 사람들이 걸릴지 모르는 거잖아요?


불만스러워하는 내 표정에서 생각을 눈치챈 듯 치라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ᆢ물론, 그 정보들을 구하는 건 내게는 아주 쉬운 일이에요. 그리고 우리에게  불리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는 배심원들을 '살짝' 갈아치우는 것도요."


치라가 조금씩 믿음직스러워진다.


                         *                     *                     *


<치라>


사사는 아직 내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변호사 '치라'는 오 년 전에 죽었다. 그녀가 수임한 사건ㅡ살인, 폭행치사, 성폭행 등ㅡ의 의뢰자들은 대부분 '짐승만도 못한'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가해자들이었고, 정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혹여 있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어 국선변호사가 자동으로 배정되었다.


  그녀는 의뢰인의 요구에 맞추어 때에  따라서는 위증을 하기도 했고, 완벽한  증거 인멸을 해내기도 했다. 그녀의 변론은 언제나 화려한 쇼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었고, 발바닥으로 써도 그것보다는 잘 쓸 것 같은 고소장을 제출하는 경력 짧고 배움이 부족한 국선 변호사들은 언제든 치라의 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하여 은하계 다섯 번째 부자로 등록될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그런 치라가 왜, 어떻게, 언제 죽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에게는 함께 사는 가족이 없었고, 그녀는 그저 '행방불명' 또는 '실종' 되었다가, 지구의 '뉴질랜드'라는 작은 섬에 살던 마오리족의 후예에 의해 바닷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렌지색 황혼이 지는 멋진 휴양지의 모래사장 위에  블레이저 정장을 입고 흙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는 중년의 여인이 치라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장만 겨우 뛰고 있는 상태로 발견된 그녀의 외모는 많이 변해 있었지만, DNA분석 결과 변호사 '치라'와 신원이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중요한 건. 그녀의 죽음을, 사사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사가 나를 분해하여 범죄에 대한 증거자료로 쓰기 위해 각 행성으로 신체의 조각을 보낸 이후, 어머니 산드라 박사는 전 우주에 흩어진 나의 몸체를 모두 모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하여 나를 다시 살려 보려고 애썼으나, 결코 '닥터 프랑켄슈타인'은 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뇌사 판정을 받은 치라가 어머니 산드라 박사가 병원장으로 재직하는 '이바노브나 호스피탈'로 운반되어 왔다. 치라의 회복을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치라를 보자마자 어머니는 치라와 나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내 몸체 일부분의 세포를 배양하여 치라의 뇌에 이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최고의 변호사 '치라'가 되었다. 그리고 치라 본인도 오랜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 셈이 되었다. 나는 안드로이드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레위인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제 안드로이드 '사사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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