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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Oct 26. 2024

레위인의 변론-9

치라의 마음

<치라>

"사사, 그러니까ᆢ 당신은 사사진의 시체를 지구로 운반해서, 어떻게든 다시 살려 보려고 했다는 거죠? 그런데, 왜 이바노브나 박사께 이런 사실을 먼저 알리지 않았던 겁니까? 그분은 사사진의 제작자이기도 하지만 그를 고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을 텐데요?"


잠깐 휴정하는 동안, 나는 사사와 함께 법정 앞 복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언뜻 생각난 듯이 물었다.


"ᆢ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랬다가는, 산드라를 비롯한 다른 안드로이드 제작자들에게도 내가 첩을 사지에 두고 온 몰인정하고 나쁜 주인이라고 소문이 나서, 법조인으로서의 평판에 큰 오점이 생기고,  다른 안드로이드를 구매하기도 어려워질 테니까요."


몰인정하고 잔인하며 몰염치한 인간. 자신만을 위해 다른 소중한 생명체를 기꺼이 희생시키고도 자기 실리만을 따지는ᆢ아. 내가 '인간' '치라'가 되니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강렬하게 느낄 수가 있구나.


 그러면서 또 다른 것도 알게 되었다. 커피 향이란 이런 거구나. 풀과 곡식이 타는 냄새. 이 씁쓸하고 시고 검은 가루를 인간들은 대체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         *         *


재판이 다시 재개되었다.


"화성의 '미란다'를 증인으로 재출석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친애하는 판사님."


미란다가 다시 등장했다.


"증인은, 사사가 자신의 첩인 사사진을 불량배 할머니들에게 내어준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네. 사실 사사와 우리 모두 밖에서 나는 큰 소리 때문에 잠을 전혀 자지 못했어요. 밤을 꼬박 새웠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였습니까"


"쿠당탕 거리는 소리. 할머니들이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소리ᆢ"


미란다는 괴로운 듯 귀를 막았다.


"아ᆢ더 이상은 못하겠네요.

다음날 아침, 소리가 잦아들길래 사사에게 조용히 나가 보라고 했어요. 사사가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을 땐ᆢ 이미 늦어 있었죠.


끔찍한 모습으로 사사진이 바닥에 누워 있었어요."


미란다는 이번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내 모습이 그렇게 처참했구나.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유리컵이라도 눈앞에 있었다면 나는 참지 못하고 벽에 던졌을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치라의 몸인 것을, 순간 잊어버릴 뻔했다.


사사가 갑자기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사사진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봤어요. 그렇지만 사사진은ᆢ 이미 완전히 부서져 있었어요! 도저히ᆢ가망이 없어 보였죠. 저는 한참 동안을, 진의 어깨를 부여잡고 이렇게 소리쳤어요!


"진, 진!!!! 진!!!  어서 일어나!!! 어서!! 가자고!! 우리 일어나서 집에 가야 돼!!! 집에 가야 돼!!  어서!!"


울먹거리는 사사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이럴 때 인간들이 썩소를 날리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사는 법조계 쪽이 아니라 연예계에 훨씬 더 잘 맞는 인간형인데 말이야.


"피고인은 그만 앉아 주세요. 지금은 증인이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지금 피고인의 말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판사가 말하자 사사가 울음을 멈추는 척하며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란다가 계속하여 증언했다.


"우리는 사사진의 시체를 얼른 집안으로 들였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사사진의 주검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사사에게 그녀의 안드로이드를 대신 내어 주라고 강요한 건 아닐까ᆢ사사진도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ᆢ가슴을 치고 울고 후회했지만 이미ᆢ"


그래.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어. 생명체의 존귀와 비천을 나누어 한쪽만 대접하고 다른 쪽을 희생시키는 게, 그렇게 구분하고 차별하는 게,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믿는 바로 그 '우주신'의 뜻인가?


미란다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사사는 어떻게든 사사진을 살리기 위해. 냉동캡슐에 사사진을 넣고 지구로 출발하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서 아들 '미란다논'을 사사에게 일 년 간 빌려주었습니다. 진의 장례를 치를 때 도움이 되도록요ᆢ 그리고 사사가 이런 일을 벌일 줄은ᆢ사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                *


사사는, 일전에 내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사진의 시체를 우주선에 싣고 미란다논과 함께 지구에 도착했지만 진의 본체는 이미 부식되기 시작했고,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안드로이드를 죽인 마녀들을 우주 끝까지라도 찾아서 단죄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고.


감히 레위인인 자신에게 그렇게 엄청난 짓을 저지르려 했고, 결국 자신의 소중한 안드로이드를 그렇게 만든 것들에게. 영원히 저주받을 무기징역 3천 년 이상을 때리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을 평생 주겠다'라고 했다.


그건, 바로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사사는 지구에 온 뒤 범죄자들을 찾기 위해, 화성연방 경찰에 바로 협조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화성연방 경제국 제2총리의 엄마, 국회의원의 딸, 제1야당 차기 수석을 역임한 남편을 둔 쟁쟁한 집안 출신들이었고, 화성의 공무원들은 더 이상 문제가 커지길 원치 않았다.


그들은 정확한 '물증' 없이는 범죄자들을 찾을 수 없다고 발뺌했고, 미란다의 집 근처엔 그 흔한 CCTV 한 대도 없었기 때문에, 증거로 쓸만한 건. 아직 사사진의 몸에 남아 있을 범죄자들의 DNA 뿐이었다.


사사는 미란다의 안드로이드 아들인 미란다논을 시켜, 망가진 사사진의 몸체를 분리하여 진공 포장해서, 은하계 각 행성 내에 있는 과학범죄수사대로 보냈다.


그 이후는ᆢ


 *             *             *


 #우주력 1045년, 11월 1일


<사사>


우주연방 뉴스입니다. 화성에서 안드로이드를 살해한 범인들이 잡혔습니다. (카메라가 흰 마스크를 쓰고 후드모자를 뒤집어 쓴 채 손이 뒤로 묶여 체포되는 일곱 명의 할머니들의 모습을 비춘다) 이들은 화성의 한 주택 근처에서 남성형 안드로이드를 성폭행하여 죽였다고 합니다.


범인 체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누군가 제보한 안드로이드의 본체 일부입니다.


사사진의 유해를 은하계의 여러 행성에 실어 보낸 덕분,  화성의 강력들이 잡혔다. 그들은 은하연방 수사국이 공조한 우주연방 수사대에 의해 검거되어, 결국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그들은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명왕성의 독방에 수감되어 평생 썩을 것이다ᆢ

무료함과 답답함에 지쳐 차라리 죽여달라고 조를 것이다ᆢ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났다ᆢ! 라고 생각하고 막 사사진의 유해를 수습하여 우주 장사를 치를 계획을 세우고 있을 찰나, 우주경찰이 내 집을 찾아와 나를 체포했다.


산드라가 나를 고소했다. 죄목은 세 가지, 살안교사와 살안방조, 사체유기다.


나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


내가 수없이 되뇌었던 그 원칙들이 부메랑처럼 나에게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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