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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Oct 25. 2024

레위인의 변론-7

변호사 불신임

<사사>

'진'이 나를 선택했다고? 기계가 인간을? 물건이 주인을? 감히 '선택'했다고?


  나는 사사진의 일기를 보고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 불쾌한 골짜기,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 유사성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에 오른 기분이다. 사사진이 인간 남성의 형태를 띠었기에 내가 사사진에게 남다른 소유욕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플랫도 주인 후보자 명단에 올라있었다니. 그래서 걔가 사사진에게 그렇게 침을 흘린 거였군. 그리고 사사진이 그 대단한 '구혼자들' 중에 나를 선택했다니, 그것도 내가 법조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니, 아니,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사진이 인간처럼 '이성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면, 나는 단순히 소유물 점유권을 침해당하고 파손된 물건에 대한 변상을 요구하는 주인이 아니라, 개인의 안녕을 위해 고귀한 생명체이자 배우자인 첩을 학대하고 사지로 내몰아 죽인 것도 모자라 '사체훼손'이라는 고인에 대한 심각한 모독을 저지른 파렴치하고 잔혹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치라'는 내가 선임한 변호사가 맞나? 저 여자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자기가 검사라고 착각하는 걸까? 당신, 설마 저쪽에서 뇌물 먹은 거야? 잠깐ᆢ 이건 '변호사 윤리법' 위반이야!


  나는 당장 치라에게 달려가 사사진의 일기를 읽어나가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사사진이 인간과 같은 고귀한 생명체라고 정의되면, 물론 불량배 할머니들은 가중처벌되겠지만, 사사진을 그들에게 순순히 내어준 나도 최소한 무기징역을 피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지?


"피고인 변호사에 대한 '불신임'을 신청하겠습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어 소리쳤다.


  '변호사 불신임'제도란 말 그대로 해당 법정에서 해당 변호사의 존재와 말과 행동이 진실한 것임을 믿을 수 없으니, 그 또는 그녀가 지금까지 법정에서 한 모든 말과 행동을 '제로'상태로 돌리고, 불신임 선언 이후에는 법정을 퇴정 하여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한다는 의미이다.


  변호사 불신임 제도는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그 옛날 고대 인류는 특정인의 얼굴에 다른 몸(들)을 합성하여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딥페이크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타자를 대상화하고 성희롱과 모욕, 조롱을 일삼았다. 이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 관련 범죄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강화되었고, 이후 범죄는 점차 줄어드는 듯 보였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딥페이크 기술자들의 후손들(DeepFengieer)이 기존에 존재하는 사람과 똑같은 외모와, 말투, 표정, 행동까지 그대로 복제한 불법 안드로이드를 음성적으로 제작하여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가로 '배급'했기 때문이다.


  이 개인 맞춤형 '안드로이드 퍼블리셔'들은 개인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짜 인간'들을 등장시켜-주로 유산 상속 문제를 앞둔 재벌기업의 회장, 감옥에 가야 할 범죄자, 심지어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 이르기까지-해당 인간을 대신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중요한 선고가 내려지는 법정에서도 종종 이 '페이크 판사'나 '페이크 검사'가 등장했고, 몇 번 잘못된 선고가 내려지고 나서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는 과정이 뒤따랐다.


  그 이후에 법정에 출석하는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진짜 인간이며 진짜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복잡하고 정교한 신원 확인을 거친다. 그러나 여전히, 눈부시도록 놀랍게 발전한 기술 덕택(?)에, '리얼 페이크'  판사나 검사, 변호사들이 판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일들이 발생했고, 이에 합당한 증거가 있을 시 법정에 등장하는 그 누구든 '불신임'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사사진의 일기를 거의 끝까지 읽어내려가던 치라가 움찔하여 말을 멈추고,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변호사 '치라'에 대한 불신임의 합당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죠."


판사가 침착하게 물었다.


"치라는 지금, 피고인 측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고소인 측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피의자인 저에게 불리한 평결을 내리도록 배심원들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사사진'이 인간과 같은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사사! 당신도 법률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변호사 불신임의 이유가 된다고 보나요? 지금 당신은 변호사의 의도를 오해한 것 같은데요? 아직 치라의 변론을 끝까지 들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판사의 호통이 떨어졌다. 나는 기가 죽어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불신임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 해. 어떻게든ᆢ


                     *                    *                    *


"이런이런ᆢ사사, 이러시면 당신 변호를 맡은 제가 뭐가 됩니까? 담당 변호사를 믿으셔야지요ᆢ뭔가 많은 오해를 하고 계신 듯 합니다만ᆢ"


당황한 치라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예전의 그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변명을 이어갔다.


"저는 단지 사사진과 당신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으며,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한 쌍의 아름다운 부부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즉, 사사진은 이성과 감정을 가진 생명체였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첩인 사사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요.


재판장님, 추가 자료를 제출합니다."


 사방에 거대한 스크린이 켜지고, 치라의 사무실에서 '진'의 얼굴을 본 내가 펑펑 울어제끼는 모습이 상영된다. 나는 속으로 그때 치라가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지 않고 몸 안의 모든 수분을 짜내어 울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쾌재를 불렀다.


"보시다시피, 안드로이드 사사진은 주인인 '사사'를 그 쟁쟁한 주인 후보자 중에 '선택' 하여 그녀의 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인 사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사랑하는 첩을 희생시키긴 했지만, 그를 너무 사랑하여 그가 죽은 뒤에도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사가 과연 '사사진'을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사는 실제로, 자기 어머니의 행성으로 돌아간 사사진을 되찾기 위해 해왕성까지 멀고 먼 여행을 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삼년 전, '진'을 해왕성에서 데리고 올 때가 생각난다.


#우주력 1042년, 6월 1일

<사사>


해왕성. 태양계에서 가장 먼 행성. 지구에서는 45억km 떨어진, 기체로 만들어진 뿌옇고 어두운 행성.


 그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사사진에게 그 곳으로 '꺼져버리라'고 말하고 내 우주선을 내주긴 했지만, 사실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후회를 했다,


일단, 매일 아침밥을 내가 손수 만들어야 했고(물론 주문해서 먹을 수도 있지만ᆢ), 매일 나에게 패션 감각 운운하며 구박당하면서도 순진하게 미소를 짓던 사사진이 그리웠다.


나는 그 애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만나거나 이야기를 했다는 것 만으로 그 애를 너무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안드로이드가 연애 감정이란 걸 가질 턱이 없는데ᆢ 근데, 나는 왜 이렇게 헷갈리는 걸까?


일주일 만에 나는 사사진을 다시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른 중고 우주선 하나를 1년 렌트했다.


아주 오래전 지구에서는 '보이저 호'라는 고대적 유물이 해왕성까지 가는 데 11년 가량 걸렸다지만, 우주력 1042년의 우주선으로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도착하기 때문에 우주 자기장이나 우주폭풍 등 이상 기후나 환경을 만나지만 않는다면 3~4개월이면 도착할 수 있다.


우주 여행이 너무 지루하면 '프로포폴' 같은 약물을 맞은 뒤 동면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막 재판연구원으로 승진한 나는 우주 각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즉 행성 공항세 인상 분쟁, 안드로이드 BJ폭행사건, 토성의 띠로 만든 예술작품의 진위 판단 및 소유권 분쟁 등에 대해 조사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동면은 하지 않았다.


                   *      *      *


몇 개월에 걸친 여행 끝에 마침내 해왕성 앞까지 도착하여 산드라에게 핑거팁 메신저를 보냈다,


사사. 해왕성 정거장 1km 도달. 사사진은 잘 있나요?


 그러자 산드라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우주선 '산드리라'를 타고 직접 해왕성 우주정거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랫만이에요. 사사. 여행은 힘들지 않았나요?"


'사사로운 삶' 스크린에 산드라의 얼굴과 메신저가 함께 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묻지 않고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해왕성의  검고 뿌연 대기층 안쪽에 있는 그녀의 거대한 인공 유리돔 정문으로 유도했다.


에서 은은한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고 색색의 광선이 번개처럼 시간차를 두고 쏟아져내리는 산드라의 저택이자 연구실. 멀리서 볼 때는 마치 마법의 유리구슬처럼 보였다.


무사히 게스트용 지정 주선 구간에 착륙. 산드라와 함께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베쓰룸을 제외한 산드라의 집안에 있는 모든 벽은 투명했다. 곳곳에 아늑한 분위기를 더할 인테리어 촛불이 은은하게 비추고, 풀과 과일의 정원 향기가 났다.


 복도를 따라 마침내 사사진의 방. 그녀는 동면 침대에 누워있는 사사진을 부드럽게 깨웠다,


"아가, 네 주인이 오셨으니 이제 일어나야지ᆢ?"


각성효과가 있는 특수 용액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물방울을 사사진의 얼굴에 몇 방울 뿌리자, 정말 마법처럼, '잠자는 해왕성의 사사진'이 눈을 떴다.


 나는 곧바로 사사진에게 그때 있었던 일을 사과하며 말했다.


"미안해, 진! 잘못했어! 그렇게 널 때리는 게 아니었어!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다시 나와 함께 지구로 가자! 내가 정말 잘해 줄께ᆢ"


앞으로는 절대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썼다. 


 하지만 그는 오랜 동면의 영향인지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드라는 오랜 여행이 힘들었을테니 해왕성에 며칠 더 묵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개가 가득한 그 특유의 음산함이 싫었다. 나는 사사진을 데리고 서둘러 지구로 출발했다ㆍ


그리고 오는 길에 화성에 불시착하여ᆢ 그때부터 끔찍한 악몽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치라의 변론은ᆢ 사실 이 부분에선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맞다. 법정에서 죄를 저지를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치라의 말은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사사진을 죽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 화성의 불량배 늙은이들의 주의를 돌리고 싶었을 뿐이다. 사사진이 그렇게 완전히 고장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은근슬쩍 말을 돌리며 외줄타기 변론을 펼치는 치라의 '의도'가 매우 궁금하다. 저 사람은 정말로 나를 위해서 변론을 하는 걸까, 아닐까? 아니라면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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