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 엄마의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자마자 “야야~ 큰일 났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무슨 일 있나? 어디 아프나?”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아 엄마 말을 가로질러 다그쳐 물어본다. “테레비를 틀어도 화면이 안 나온다. 고장이 났는 갑다. 우짜노~” 마치 친한 친구를 잃은 사람처럼 축 처진 목소리로 말끝을 흐린다.
엄마에게 텔레비전은, 아침에 눈을 뜨며 마주하고, 잠들기 전까지 바라보며, 심지어 잠이든 후까지 함께 하는 운명 공동체이다. 자식들이 하나둘씩 집을 떠나면서 그 공간에 텔레비전이 비집어 들어왔고, 십 년 전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시면서, 그 큰 빈자리를 텔레비전으로 채우시며 외로움을 달래셨다. 그때부터 엄마의 일상에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절친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았다. 그 마음을 막내딸이 잘 알기에 “엄마~ 퇴근하고, 오늘 밤이라도 갈 테니깐 걱정하지 마라.” 말하니, “밤늦게 왔다 갔다 하면 니가 힘들고, 나도~ 걱정이 많이 된다. 그래도 꼭~ 온다고 하면 기다릴게~” 걱정 서러움과 기대감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신다.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긴다. 퇴근하여 아이들 저녁 챙겨주고, 친정을 갔다 오면 빨라도 밤 10시를 넘기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밤 운전에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엄마의 긴 밤을 생각하니 가야만 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야야~ 아랫집 형부가 와서 테레비를 봐주고 갔는데, 그래도 안 나온다. 웬만 한건 형부가 고쳐 주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고장이 났는갑다.”라며 답답해하신다. “알았다. 어떻게든 고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혹시 안 되면 티브이 한 대 사버리자” 라며 엄마 마음을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전화벨이 또 울릴까 봐, 모든 일을 제쳐두고, 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모두 당일의 바쁜 일정에 시간 내기가 힘들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유료 서비스’라도 받을 생각에 유선 방송국에 서비스를 요청했다. 다행히도 방송국에서 오늘 방문을 해줄 수 있고, 무료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1시간쯤 흘렀을까? 유선 기사님으로부터 오후 5시~6시 사이 방문 가능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오늘 밤은 엄마가 텔레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한실름 놓았다. 5시 조금 넘어 엄마의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야야~ 방송국에서 왔다는 사람이 테레비 잘 고쳐 주고 갔다. 아이고 좋다. 테레비 잘~ 나온다.”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엄마, 내가 방송국에 서비스 신청해 놨는데 잘 도착했나 보네. 오늘 밤 테레비 볼 수 있어 좋겠네”라고 하자 “그래 좋다. 니가 제일 효녀다. ~” 하며 전화를 끊으신다. 유선 방송국에 전화 한 통 한 것 밖에 없는데~, 나는 ‘효녀’가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사소한 일들이, 엄마에게는 큰 불편함이었던 것이다.
며칠 전, 잇몸에서 피가 나고 아프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토요일 오전 진료를 예약하고, 금요일 밤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엄마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야야~ 전원일기 안 하나.” 하시며 텔레비전을 틀어 달라고 하신다. (친정 텔레비전의 리모컨은 간단하지만, 우리 집 리모컨은 복잡하여 리모컨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셨다.) Btv에 ‘전원일기’를 말하니, 여러 채널에서 하루 종일 방영을 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었다. 전원일기 ‘김 회장님 댁’ 화면이 나오자, 만족해하시며 고단한 몸을 눕인다.
그날은 나도 엄마 옆에서 전원일기를 보았다. 오래된 필름이라, 흐리긴 했지만, 그 속의 농촌 풍경들은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정겨웠다. 돌로 쌓은 돌담이며 큰방과 연결된 툇마루,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흙길,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선 미루나무들~~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엄마도 내 마음처럼 그 시절이 그리워서 전원일기를 즐겨 보시는 걸까?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누워계시는 엄마에게 다가가 “전원일기 재밌어?”라고 묻자 “내가 재미로 보나, 그냥 그림만 보지” “작년까지는 드라마 의미를 대충은 알고 봤는데, 요즘에는 말은 들리는데, 의미를 통~ 모르겠다. 그냥 사람만 보고 있는 게지”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속절없이 가는 세월이 참으로 야속한데, 드라마의 ‘의미’까지 이해하기 힘드니, 인생의 큰 낙이 줄어든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드라마 내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고개를 끄덕이시며 “복길 할미가 그래서 화가 났네~~ㅎㅎ ”하며 웃으신다. 엄마와 ‘전원일기’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날 만큼은 즐기며 보실 수 있도록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해 드리리라.
그날 밤, 엄마는 코를 골며 주무셨지만, 전원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엄마가 시골로 가시고도, 나는 전원일기 몇 편을 더 보았다. 그 풍경들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즐거움을 엄마가 선물로 주고 가신 것이다.
며칠 전, 엄마는 멋쩍은 미소를 띠우며 “너그들이 바빠 자주 못 오는 것은 쪼매 서운한데, 테레비가 고장 나서 안 나오면 많이 답답하고 서운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일상에 볼거리를 제공하고, 밤마다 자장가를 불러주는 텔레비전~ 그 아이는 이미 엄마에게 절친 이상이었다.
요즘 들어서 ‘효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값비싼 물건과 맛난 음식 그리고 용돈이 최고의 ‘효도’라 생각했었는데, 부모님의 일상에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것 또한 ‘효도’가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절친 ‘텔레비전’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 주는 것~~ 그것 또한 ‘효도’ 임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 텔레비전 안 나오면 언제라도 전화해 주세요~, 막내딸이 낮이고 밤이고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