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정필 Mar 01. 2022

갱년기

갑자기 오른 열기에 겉옷을 벗는다. 영하의 아침 기온이었지만, 순식간에 오른 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그런데 언제 더웠냐는 듯이 금방 찬 기운이 온몸을 덮쳐  주섬주섬 패딩을 입는다. 최근에는 밤잠이 깊지 못해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다 잠이 드는 날들도 잦아졌다. 이런 반복적인 패턴이 요즘 나의 일상이다.     

작년부터 뜸해진 생리가 몇 달을 건너뛰면서 몸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중년의 반항기’ 갱년기가 시작된 것이다.  바디 로션을 듬뿍 발라도 온몸에 가려움증이 나타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의 온도로 감기는 잦아지고, 머리숱이 너무 많아 여태껏 파마 한번 못해본 나인 건만, 그 녀석(갱년기)이 찾아오면서 가느다란 실처럼 얇아진 머리카락은 머리에 착 달라붙어 나를 더 왜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불편함이 늘어가는 일상에 지쳐, 지난주에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초음파와 호르몬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냉정하게 “폐경기가 온 것 같습니다. 호르몬제를 처방받아먹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폐경기란, 난소의 노화로 기능이 떨어지며 배란과 여성호르몬의 생산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로 인해 몸의 불편함이  나타난다고 했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서 잘 설명해주셨지만, 주위의 사람들보다 이르게 찾아온 폐경기에 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일단, 의학적으로 봤을 때 폐경기는 받아들여야 했고, 몸의 불편함에 따른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시꺼러운병원에서 불편한 맘을 추스르지 못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니. 아들과 딸이 다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요즘 들어 부쩍 예민해져 있는 아들이 여기저기서 부딪친다. 내가 갱년기가 온 것처럼 아들은 중2병 앓이를 하는 중이다.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엄마와 중2병 앓이를 하는 아들의 부딪침으로 집안은 시꺼러운 날들이 많아졌다.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들은~,  엄마의 작은 감정까지 알아주는 마음 깊은 아이였다. 아들과 마트를 같이 가면 “이런 무거운 것은 아들이 들어야죠”라고 하거나, 깊은 밤 내 기침소리가 심해지면, 언제 나왔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엄마 괜찮으세요.”하며 따뜻한 물 한잔을 내밀 던 아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소한 일에도 불쑥 화를 내고, 자신의 경계 안에 소리 없이 들어오는 것을 무척 불편해했다.  이제 중2인데, 몇 년을 더 겪어야 어른이 될까? 내 아들 같지 않은 아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 모습 또한 커가는 ‘아들’ 모습이니, 이해하고, 사랑해줘야 하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춘기’를 넘기고, 이렇게 어른이 된 것처럼~     

갱년기와 중2병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ㅎㅎ     


이런 불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는 이번 연도에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경제적인 부분의 여유를 위해서 ‘일’은 해야 하고, 아이들 교육과 내 인생의 발전을 위해서 강의는 포기할 수 없었고, 인생의 즐거움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한 글쓰기를 계속해서 ‘인생 책’ 한 권 정도는 펴내고 싶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미루고 미루었던 ‘방통대 편입’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벌려 놓으니, 불현듯 ‘다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어쩌면 중도에 힘에 부쳐 하차하거나 포기하는 부분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해 한해 더해지는 나이의 조급함이 ‘지금은 해야 한다’라며 나를 채찍질한다. 얼마 전에 은퇴하신 분의 글에서 ‘생활의 여유를 가져봄’에 동의를 했었는데, 정작 나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남에게는 인심 좋게 ‘여유’를 말하는데, 왜 나에게는 이렇게 조급한가? 그 이유는 인생이 쌓여가면서 사라져 가는 기억력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갱년기 앓이를 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내 몸 안에서 나 혼자 전쟁을 하고 있다. 내 감정을 내가 알지 못할 때가 있고, ‘불쑥’ 솟아낸 말들에 후회를 하거나 ‘버럭’한 행동에 뒤늦은 자책이 찾아온다.  또한, 아침의 따뜻한 햇살에 기대어 기운을 내볼까 하다가,  흐린 오후에는 잡을 곳 하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온도차가 심한 것이 ‘갱년기’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불편하다.  

   

월요일 아침, 병원을 방문했다. 더 버텨 볼까 하다가 ‘호르몬제’ 처방을 받았다.  ‘폐경기’가 되면서, 더 이상 여자로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서운함보다, 호르몬 부족으로 오는 몸의 불편함이 나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지난주 의사 선생님께서  ‘호르몬제는 최소의 약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는 말처럼, 약 ’한 알‘에 의존해 보겠다는 생각보다, 약 ’한 알‘로 더 힘차게 살아보겠다는 내 의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내일 아침부터 2022년 세워놓은 계획에 한걸음을 뗄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갱년기’란 녀석도 나에게 적응할 것이다. 나는 그 녀석까지 돌볼 마음도 시간도 부족하니깐~~     

작가의 이전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