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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May 01. 2024

엄마의 봄나들이

“찌르륵, 찌르륵”

카페 문을 열자 새소리가 들린다. 까치는 아니지만 나는 반가운 손님이 오는 징조로 생각했다. 어젯밤 둘째 언니로부터 엄마와 세 딸이 나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픈 청소가 끝난 후, 문을 활짝 열고 손님 맡을 채비를 한다.


 정오가 지나자 하얀색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지팡이가 땅에 땋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셋째 딸이 재빠르게 내려 엄마 팔을 부축한다. 엄마는 지팡이를 앞세우고 어렵게 한발 한 발 디딘다. 내 발로는 한 걸음 남짓인데, 엄마에겐 먼 길처럼 힘겹게 보인다. 지팡이와 장단 맞추며 카페로 들어온 엄마는 가장 익숙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휴”하며 긴 숨을 내뱉는다.


 뒤이어 엄마를 에워싸며 네딸들이 앉는다. 한참 숨을 고른 엄마는 진작부터 손에 쥔 것처럼 꼬깃꼬깃한 오만 원권 지폐를 내밀며 말했다.

“사장요. 오늘은 내가 살낌더”

엄마의 선심에 딸들 입 고리는 귀에 걸리고,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잠시 후, 각자의 입맛에 따라 들깨라떼, 아보카도 커피, 레몬차,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리고 오만 원의 여유에 함께 먹을 수 있는 피자를 추가한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딸들은 그 간의 안부를 물으며 시걸 벅적하다. 수다가 오가는 사이   커피 향과 함께 음료가 나오자, 큰딸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딸내미들하고 맛난 거 먹으니 좋제”

“좋지. 말이라고. 자식을 아무리 봐도 지겹나.”

엄마는 숨이 찬 지 긴 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말을 잇는다.

“집안에만 있으니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벌써 꽃이 이리 많이 피었네.”

달콤한 음료와 네 딸들 보는 맛에 취한 엄마는 벚꽃보다 환한 미소를 짓는다.


 두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경로당과 이웃을 오가며 건강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작년 초 손목 인대 수술 후유증과 동네 친구들 하나씩 저 세상으로 가는 걸 지켜보며,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두문불출했다. 기껏 바깥 구경 한다는 것이 집 마당이고, 병원 가는 길이 전부였다. 그러니 얼마나 세월에 무뎌지고, 삶이 지루했을까. 

 

 그래서 하루는 네 딸이 모였다. 요양보호사로 엄마를 캐어하는 둘째 딸 말이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말과 함께 한숨 쉬는 날이 잦다고 했다. 엄마 생활 패턴을 대충 짐작하는 딸들은 노년 우울증이 아닌지 염려했다. 장시간 자매들은 ‘엄마 집으로 모이자’ ‘여행 가자’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결론은 엄마가 우리 곁에 계시는 날까지, 한 달에 한 번 다 함께 나들이하는 걸로 일치를 보았다. 그날이 벚꽃 만개한 오늘이다.

  

 정오에 걸렸던 해가 서산으로 기울 자, 음식점 하는 셋째 딸이 시계를 본다. 시간을 도둑맞은 사람처럼 엄마 얼굴에 아쉬움이 스친다. 그래서 나는 재빠르게 말했다.

“엄마 다음 주에 목욕하러 또 와야지.”

그 말에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우리는 만남의 마지막 의례인 인증 샷을 찍는다. 한 번은 엄마를 향한 큰 하트, 그다음은 엄지와 검지를 비틀은 작은 하트로 추억을 남겼다. 처음 올 때처럼 엄마는 든든한 세 딸들을 거느리며 천천히 차에 오른다.


 떠남을 지켜보던 넷째 딸은 테이블을 정리하며, 조금 전 엄마가 앉았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본다. 구순을 넘긴 엄마가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뜩 우리 삶에서 자취를 감춘다면. 순간 강한 한기를 느꼈다. 나는 마음을 환기하려 문을 열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 몸 구석구석 파고든다. 그 따뜻함에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봄날, 엄마와 네 딸이 벚꽃 길을 걸으며 나들이 가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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