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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May 17. 2024

평국댁의 네 딸들

 “필이가, 오늘 니 언니들 하고 간데이”

햇살이 눈부신 아침, 엄마는 세 딸과 함께 막인 내가 하는 커피숍에 방문할 거라는 전화를 했다. 소풍 가는 아이마냥 아침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차가 있는 큰딸을 재촉하는 엄마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한 달에 한번, 딸들을 거느리고 카페 나들이 하는 것이 요즘 엄마의 낙이다.

 작년 초, 엄마는 깨진 소주병에 오른 손목이 찔려 신경과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한 달을 입원하고 퇴원할때 의사 선생님은 경과가 좋다고 했지만, 나이 탓인지 엄마의 손목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스트레스를 받아 두문불출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노인 혼자 시골집을 지키는 것이 걱정된 자식들은, 가족회의 끝에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했다. 보름 후 엄마는 3등급 수급권자가 되었다.


 요양보호사인 둘째 딸이 엄마 케어에 들어갔다. 모녀지간이지만 삼십 년 넘게 다른 환경에 살다가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는 무던하고 말없는 딸을 답답해했고, 다정스레 말을 못 하는 딸은 엄마를 버거워했다. 그래서 캐어 초기 모녀사이는 삐거덕 거리며 갈등을 보였다. 하지만 끼니때마다 들어오는 밥상에 반한 엄마는 딸에게 더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역시 오감 중 미각이 으뜸인 모양이다. 둘째 딸 음식 솜씨는 형제자매 사이에도 소문났으며, 나물과 김치 등 향토음식을 맛있게 했다. 그것 또한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이기에 모녀 궁합이 맞다.

 셋째 딸은 하루에 한 번 이상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아침에는 잘 주무셨는지, 저녁에는 아픈 곳 없는지, 전화기 넘어 엄마의 건강을 챙기며 말동무가 되어준다. 딸의 전화에 엄마는 ‘동네 아무개가 저세상으로 갔다’ ‘어느 자식이 설움을 줬다’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상처받은 일까지 풀어놓는다. 셋째 딸은 긴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과거에 엄마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엄마 편이 되었다가 때론 다독이기도 했다. 요즘 모녀의 통화는 하루 일과가 되어간다. 마치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듯, 엄마는 매일 셋째 딸 목소리를 기다린다.

 “나이 사십 넘어 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노.”

엄마가 노년기에 들어 넷째 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노인의 삶이란, 병원 가는 횟수가 늘고 남의 손을 빌리는 날이 잦다는 것이다. 지금 엄마의 삶이 딱 그렇다. 십 년도 더 되었다. 손녀와 함께 모녀 3대가 목욕탕 가던 날  “자식이 여덟이라도 병원 가자는 말이 선뜩 나오지 않더라.”라는 하소연을 들었다. 젊은 날의 고생으로 여기저기 아픈 곳은 많은데, 자식들은 하나같이 바쁘다고 하니 설움이 북받친다고 했다. 물기가 맺힌 늘어진 피부와 휘어진 등을 보며 딸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앞으로 병원 갈 일 있으면 내 안태 전화해라.”

그 말이 든든했는지 엄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이후 엄마 전화는 수시로 울렸고, 딸은 병원이든, 필요한 물건이든 거절 없이 응했다.

 엄마는 딸들이 시집갈 때 ‘시댁에 잘해라’라는 말을 혼수로 보냈다. 그래서인지 경조사에 있어 큰딸은 친정보다 시댁을 우선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시댁이 먼저지’라고 했었는데, 앞일을 모르는 구순을 넘기자 큰딸을 기다렸다. 그 마음이 딸에게 전달되었는지 최근에는 친정 발걸음이 잦고, 자매들 모임에도 자주 참석한다. 요즘은 자식이 부모에게 얼굴 보여 주는 것이 효도라고 하는데, 큰딸은 얼굴도 보여주고 깨알 같은 애교도 덤으로 가져온다. 또한 엄마와 자매의 이동수단인 자동차를 제공한다.


 ‘평국댁’이는 엄마의 택구다. 동네 이름이 하월평인데 엄마는 왜 ‘평국댁’이 되었을까? 이유인 즉, 동네의 같은 택구를 가진 사람들이 여럿이라 마지막 글자만 따와서 평국댁이 되었다고 다. 그런 평국댁은 네 명의 딸을 낳았다. 삼시세끼 따뜻한 밥 해주는 딸, 엄마 마음 들어주는 딸, 병원과 사소한 소모품을 챙기는 딸, 나들이시켜 주는 딸이 있다. 옛말에 딸은 살림 밑천이라 했지만, 연로한 평국댁에게는 삶의 즐거움이자 버팀목이다. 그런 엄마를 보고 남들은 ‘말년에 복도 많다.’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복은 따로 있었다.

내 집에서, 내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화장실 가고, 자는 잠에 저세상으로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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