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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Jul 26. 2022

나는 오늘부터 백수다.

나는 오늘부터 백수다. 

어제 아침까지 일찍 일어나 아이들 아침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내 몸단장을 하고 나오면,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오늘 아침도 어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는~ 커피를 내려 거실 소파에 앉는다.  때마침 어젯밤부터 내리는 장맛비가 운치를 더한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아침을 맞이했지만, 오늘 아침의 내 기분은 한결 가볍고 여유롭다. 무심결에 콧노래가 나온다.~       


이번 년 초, 나는 ‘임기직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통합사례관리사’로 가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복지팀 ‘노인. 장애인’ 담당으로 발령을 받았다.  낯선 환경에 처음 접해보는 시스템들~  그날부터 커다란 ‘일 보따리’가 내 앞에 떨어졌고, 양쪽 어깨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보따리’ 속을 드려다 보자면, ‘장애인, 노인, 경로당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가족과 학교 편입~ ’ 쉴 틈 없이 빼꼭히 채워져 있었다.    

      

처음부터 결코 가볍지 않은 ‘보따리’였지만, 언제부터 인가 ‘보따리’는 물기를 머금은 솜이불처럼 조금 더 무겁게 내 어깨를 눌렀다.  시간이 지나고~ ‘보따리’의 무게에 견디지 못한 내 몸 곳곳에서 신음소리를 냈다.  귀에서는 ‘삐~’하는 이명이 들렸고, 다리는 저리고, 경직되었다.     


 ‘경력’이라도 쌓아 보라는 남편의 말처럼, 나도 ‘이 나이에 한번 해보 지 뭐’라는 생각을 한, 두 번쯤 했었다. 하지만 오십의 나이에 많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 비빔밥이 되어 갔고, 내 업무능력 또한 젊은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나를 지탱해준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노련함 정도였다. 무거운 껍질을 등에 지고 하루하루 버텨내 듯 살아가는  거북이의 모습이 ‘나’였다.  ‘혼자’가 아닌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버거웠고, ‘복지공무원’의 삶 또한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때~~ ‘집’은 나에게 오로지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던 ‘엄마’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갱년기(나)와 사춘기(중2 아들)가 집안을 뒤집어 놓았다.  아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엄마 요즘 왜 그렇게 화를 많이 내요.”  “나에게 관심 이란 게 있어요.” “더 이상 예전의 다정한 엄마가 아니에요.”라는 말을 했고,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워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그렇게 화를 많이 냈나?,  왜 그랬을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고 계장님께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유는 ‘건강 이상~’이었지만, ‘일’에 지친 내 마음과 ‘사춘기’를 겪는 중2 아들의 염려가 숨어 있었다.    

 

그날 이후, 출근 첫날부터 내 머릿속에 들어온 왕거미는 더 이상 거미줄을 치지 않았고, 여러 갈래 엉켜있던 거미줄은 한여름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졌다. 몇 칠전 남편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자기 요즘 얼굴에 화색이 도네.  그렇게 좋냐~”라고 말했고, 나는 감출 수 없는 미소로 회답했다.    

  


그렇게 3주가 흐르고, 오늘 아침~ 자유인이 되었다. 

당분간 좀 아껴 쓰고내가 좋아하는 것 하며 살고 싶다.

비 오는 아침 꿀맛 같은 늦잠도 자고~, 아침을 따뜻한 ‘드립 커피’로 시작하고~,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며~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이야기도 그려 보고~,  그리고 편입을 한 이상 학업도 열심히~~~   

       


세상은 다 나쁘진 않았다. 일이 끝나기 몇 칠전, 나는 어느 까칠한 ‘민원인’으로부터 ‘민원응대 친절공무원’으로 추천되었고, 편입한 학교에서 ‘성적우수’ 학생으로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세상에는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          


오늘부터 나는 백수다. 이렇게 글을 쓰는 여유를 얻었으니, ‘아껴 ’ 살아야 하는 고통쯤은 감내해야겠지~~ㅎ

당분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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