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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Sep 29. 2022

2022년 여름  작가‘오영수’와 마주하다.

그림출처:오영수문학관

7월 말, 푹푹 삶는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중, ‘딩동’ 문자 알림이 뜬다. 지친 몸을 터벅터벅 이끌고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약숫골도서관 ‘울산 문학 바다를 품다 ‘라는 인문학 강의 알림이었다. 

인문학, 아~ 어렵고, 지루하다. 그냥 외면해 버리기에 마음이 찜찜하고, 신청을 하자니 부담이 생긴다. ‘신청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는데 ‘선착순 마감’이라는 하단의 글을 보고 ‘신청’을 눌렀다. 


  지난달 일을 그만두었다. ‘복지’ 분야는 하루하루 쳐내듯 일을 해도, 다음날 또 그만큼의 ‘산’이 생겼다. 초과근무와 주말근무를 해도 여유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런 날들이 쌓여가면서 몸은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불시에 찾아온 갱년기는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만류에도 나는 과감한 결정을 했고, 기력을 소진한 몸과 마음에 휴식을 명했다. 잠시 동안 게으른 삶(힘든 일, 생각하는 일 하지 않기)을 자처한 것이다. 그런 마음과 달리 이미 손은 ‘신청’을 눌렀으니, 이번 여름은 시원한 도서관에서 휴식처럼 ‘인문학 강의’를 즐겨보리라 생각했다. 


  첫날, 15분 일찍 도착해서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과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까?’ 하는 기대의 양가감정에 빠져있을 때, 선생님께서 오후 1시를 알리며 강의를 시작하셨다.

  첫 수업 내용으로 오영수 선생님의 ‘갯마을’을 가지고 오셨고, 한 사람이 한 페이지씩 돌아가면서 낭독하듯 읽어 보자고 했다. 초등학교 때 책 읽기를 해보고 오랫동안 묵혀둔 방식이라 뜬금없고 낯설었다. 하지만 열정적인 수강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 가각의 리듬과 속도로 한 페이지씩 읽어 내려갔다.


  갯마을 주인공 ‘해순’이는 세 명의 남자가 유혹하는 ‘인기녀’였다. 하지만 그 세 명의 남자는 박복하게도 그녀를 과부로 만들었다. 해순이의 파란만장한 인생 뒤로, 시골 친정집 맞은편에 살던 ‘순옥’ 언니가 보였다. 

그녀는 무기력한 아버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울타리가 없는 집이라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고, 벽이며 천정은 그을음이 군데군데 얼룩져, 몇 해 전 화마가 휩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은 그 집 앞을 지나지 않고, 멀리 돌아가곤 했다. 그녀는 나이가 스물 남짓 되었지만, 지적 수준이 낮아 여덟 살인 우리들과 자주 어울렸고, 짓궂은 남자 애들이 놀려도 그냥 웃어넘기는 순박한 시골처녀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친정보다 더 두메산골로 시집을 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편은 키가 작고 연약한 반면, 그녀는 덩치가 크고 농사일을 무던히도 잘 해내어 시댁에서는 ‘큰 일꾼’이라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어디가 못 미더웠는지 막말을 하는 등 구박을 일삼는다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친정에 발길을 끊었던 그녀가 우리 엄마를 찾아왔다고 한다. 둘째 언니와 동갑내기라, 엄마는 소실 적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그녀를 측은해했고, 그녀는 우리 엄마를 ‘고모’라 불렀다. 그날, 그녀는 힘겹게 흐느끼며 “고모야”, “고모야” 몇 번 부르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짓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뒤로 몇 번의 안부 전화가 왔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혜순과 순옥, 그녀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의해 선택된 삶을 살았고, 아무도 마음속 아픔과 상처를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들풀처럼 꿋꿋하게 살아갔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나는 한동안 그녀들 삶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해순이와 더불어 오영수 선생님의 단편선 중 ‘갯마을, 고무신, 후일담’ 3편을 읽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눈으로 빨리 읽기에 익숙한 요즘 세상에 아날로그 식으로 한 명씩 일어나서 책을 읽었고, 시대적 배경이나 지역 ‘방언’이 나오면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부연 설명을 하셨다. 그렇게 진행된 수업은 다소 시간은 많이 걸리고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한편씩 끝날 때마다 정말 ‘꽉 차게 잘~ 읽었다’라는 뿌듯함이 들었다.


  최근에 내가 이렇게 천천히 정확하게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었나?  한 땀 한 땀 힘겹게 엮어낸 작가의 의도는 보았나? 그렇지 않았다. 오직 ‘읽었다’라는 결과에 만족했다. ‘책을 많이 읽어라’라는 다독의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여름 ‘울산 문학 바다를 품다’는 게으름을 자처한 나에게 말한다. ‘인생도’ ‘책 읽는 것도’ 그리 바쁘지 않다. 천천히 읽고, 음미하고, 느끼며 살아가라고.

조금 빠르고, 늦음은 긴 인생에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이 여름, 더위와 갱년기로 몸살을 앓았지만, 나는 용감하게 작가 오영수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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