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전산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응급수술 어랜지를 하며 컴퓨터를 부셔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처음 한 달 이었다. 당직 전공의 3-4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하며 밤까지 새야 했던 처음 3개월은 육체적인 피로가 치솟았다. 이러다가 당직실에서 못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살짝 걱정되는 순간에는 가족들에게 나 없이도 잘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4개월째 접어들면서는 정신적 괴로움이 올라왔다. 소위 말해 ‘현타’라는 것이 오면서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타대학에서 산부인과 교수들이 그만두었다는 소식들이 종종 전해졌다. 사람의 일에 귀천이 없듯이 의사로서의 일도 그러하겠지만, 30년전 인턴으로서 했던 병리과 검체 접수, 수술 카트 옮기기 등의 일까지 하면서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전공의가 쓰던 당직실 침대에 누워 얇은 이불을 덮으며 잠들어야 했던 어느 한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죽고 싶다’ 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가을이 되면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첫 한 두 달과 달리 이제 전산 업무에도 많이 익숙해졌고 수술 기록도 2분 만에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산과 전문 간호사와 둘이 하는 수술은 이제 손발이 (수술할 때 발을 쓸 일은 없지만) 착착 맞았다. 다만, 수술 중 왼팔의 근력을 더 써야 할 일이 많아져 목디스크가 악화되며 팔이 저려 왔을 뿐이었다.
겨울은 역시 동면의 계절인지, 그에 어울리게 해탈을 경지에 올랐다. 모든 당직이 불당직은 아니기에 당직을 서며 밀린 논문들을 마무리하고 틈틈이 글을 썼다. 동료 또는 지인들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제서야, 나 스스로에게 너 힘드니 라고 물어보면서 대답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상태로 깨어났다. 1년을 버텨온 나에게 눈 덮인 겨울산의 모습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오늘은 드디어 100번째 당직을 서고 있다. 더웠던 여름 어느 날, 병원 엘리베이터안에서 만난 흉부외과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100번째 당직 때는 기자를 불러야겠어라고 말했고 친구는 너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지라며 농담했다.
그러나, 기자를 부를 일도 쓰러질 일도 아니었다. 1년 전, 전공의들에게 보냈던 헤르만헤세의 [행복] 이라는 시의 문구처럼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