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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번째 마지막 당직 일지

by 오수영

"가진통 이니까 일단 퇴원하고, 좀 더 기다려 봐도 될 것 같아요. 아직 38주이니까, 사실 촉진제에 대한 반응이 38주와 39주가 또 다르거든요."


아침 7시 부터 시작된 당직은 입원 중이었던 25명 산모들의 상태를 전산으로 파악한 후, 분만장에 들러 어제밤 진통으로 입원하였으나, 결국 진행하지 않아 가진통으로 판명이 난 A 산모에게 설명을 하고 퇴원시키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나는 병동에 퇴원 예정인 환자들의 각종 진단서를 (요새는 사보험에 안 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써주고, 퇴원 약 처방을 했다.


8:03분에 병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임신중독증과 자궁내태아발육지연으로 입원해있던 B 산모가 하루만에 체중이 2kg 가까이 들었다는 노티였다. 임신 전부터 고혈압이 있을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여러가지 소견을 가지고 있던 산모였고, 그녀의 신장 기능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미 산모의 복수가 상당했다. 이 환자에게 체중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복수가 늘었기 때문이고 신장 기능이 하루만에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흉부 X-ray (기존의 흉수가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보기 위해) 와 피검사 처방을 내고, 병동에 검사가 빨리 진행될 수 있게 해달라고 전화를 하고, 영상의학과 당직 교수에게 흉부 X-ray 의 판독을 독촉했다.


11시 경에는 응급실로 온 C 산모의 초음파를 봤다. 원래 내 외래를 다니던 산모인데, 임신 36주에 초음파를 볼 때 우연히 아기가 탯줄을 목에 1회 반을 감고 있는 것이 확인된 산모였다. 이런 일은 사실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야속하게도 드물게는 위험한 상황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기에 외래 진료 중간인 일요일 나의 당직 시간에 맞추어 한 번 더 태아 상태를 확인하자고 설명했던 산모의 방문이었다. 다행히 초음파 소견이 양호해져서 예정된 외래에 오기로 하고 귀가하도록 조치할 수 있었다.


12:12분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B 산모의 피검사 결과를 알리는 노티였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만에 산모의 신장 기능이 상당히 악화되어 정상의 절반 이하가 되버린 것이 확인되었다. 고위험 병실에 가서 산모에게 임신중독증의 악화와 이른 분만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 신장 기능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무리해서 더 끌다가는 산모의 콩팥 기능이 출산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요. 아직 임신 26주 밖에 안되었고 아기는 작지만, 아기는 나와서 봐야 하는 상태이고, 현재는 아기보다 엄마가 더 걱정이 되는 상황입니다. 수술은 내일 오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방에 와서 밀린 일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내일 수술 및 유도 분만 예정인 환자들이 입원을 확인하며 처방을 내고 있는 데 갑자기 오늘 오전에 퇴원 시킨 내 산모 (D) 의 이름이 응급실 환자 명단에 떴다.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우려하던 폐색전증이 생겼나?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온 것이 아닐까? 혹여나 arrest는 아니겠지. 나이가 많고 체중이 상당하였기에 입원 기간 중에도 드물지만 중요한 임신 합병증인 폐색전증의 증상에 대해서 warning을 했던 산모였다. 분만장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환자는 괜찮았고 조리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높아 걱정되어 온 것이었다. 산후 임신중독증의 진단이 내려졌다. 산모는 나를 보고 울었다.


"아니 왜 울어요? 병원에 왔으면 된 거지. 다시 입원해서 혈압약 쓰고 이뇨제 쓰고 며칠 치료하면서 병원에서 잘 보면 되요. 늘 사고는 설마 괜찮겠지 하는 사람에게 나는 거예요.(나도 방금 혹시나 라고 생각해 놓고 이렇게 이율배반적일 수가 없다)" 나는 D산모를 안심시키고 입원 처방을 냈다.


이후에도 분만장과 산과 병동에서 이런 저런 노티 전화가 수없이 왔다. 대개 누구는 수축이 있고 누구는 수축이 없어졌다 이런 연락들을 받으며 오후 4시가 되어갔다. 오늘의 마지막 당직은 오후 7시까지 이니까 3시간만 버티면(?) 나는 1년 반 동안 동안의 긴 당직의 터널을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런 마음은 맥주 한 잔으로 달래는 게 최고이다. 오늘 저녁에는 다행히 아이들도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으니 우리 가족은 같이 식탁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16:30분 병동에서 또 전화가 왔다. 내일 유도 분만 예정인 내 산모가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노티였다. 병동에 가서 내진을 해보니 이미 자궁 경부가 3-4cm 열려,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초산모가 어느 정도 아프다는 것을 인지한 후 첫 내진 소견이 3-4cm 라면 이는 진행이 빨라 급속 분만의 가능성까지 있는 경우 였다. (급속분만은 진통의 시작 후 3시간 만에 아기가 나오는것으로 정의한다.) 나는 병동 간호사들에게 분만장으로 산모를 내려달라고 했다.


여러 준비를 마치고 분만장에 내려온 산모의 자궁 경부는 이미 8cm 열린 상태였다. 병원의 여러가지 상황으로 무통 마취가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만약 그런 내부 사정이 없더라도 급속 분만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무통 마취의 적응증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소위 '통분만' (요새 산모들이 무통 없이 분만을 하는 경우를 이렇게 부른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게 표현하면 의학적 개입이 최소화된 자연 분만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오늘 마지막 당직이고 저녁 7시에 끝나요. 그런데 지금 진행이 빨라서 힘주기를 잘 하면 저녁 7시 전에 분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힘주기에 관한 영상, 이런 거 봤지요? (아니요 라는 대답이 왔다). 자 이제 양수까지 터졌으니 최대한 힘을 줘야 되요. 얼굴에다 힘주지 말고 아래에다가..."


산모는 날씬하고 골반도 좋아 자연 분만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근력과 요령이 부족했기에 우리는 약 한 시간 동안 산모 옆에 붙어서 얼르고 달래면서 산모의 힘주기를 지지했다. 다행히 7시 부터 당직이 시작되는 전문의인 신 선생이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을 해준 것이 산부인과 의사라곤 나 혼자였던 상황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복 받을 것이다.)


결국 아기는 나의 마지막 당직 시간의 4분 전인 18: 56분에 건강하게 나왔다. 산모는 무통 마취 없이 출산했기에 많이 탈진했으며, 나는 산모의 남편에게 무통 마취 없이 고생하면서 아기를 낳은 부인에게 평생 잘해야 한다고 훈시를 했다.


태반을 꺼내고 회음부를 꼬매고 분만 기록를 정리하고 출산 후 오더를 적고, 그 와중에 고위험 병실에서 또 수술을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신생아 중환자실 및 저녁 당직 교수와 전화로 소통을 하고 분만장을 나서려는 저녁 8시 경, 둘째에게 익숙한 카톡이 왔다. '엄마 언제와?' 나는 늘 보내는 '터덜' 이모티콘을 보냈다.


지난 1년 반 동안, 총 140번의 당직이 있었다. 540일을 140으로 나누었더니 3.85 라는 숫자가 나온다.

왠지 평생 잊혀지지 않을 숫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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