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이 4가 아니었다.
본원 소화기내과 K 교수에게 간경화가 있는 환자가 임신을 했으니 앞으로의 산전 관리 및 출산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긴 했다. 그러나 막상 진료실에서 이 환자가 세쌍둥이를 그것도 첫번째 시험관 임신의 시도에서 배아를 3개를 이식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경화라는 만성 질환을 가지고 있었기에 혈소판은 심하게 감소되어 있었고 (간경화가 심하면 혈소판 감소증이 오며, 혈소판이 낮으면 지혈이 잘 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간의 압력이 높아서 환자에게는 이미 복수가 상당이 있던 터였다.
임신율을 높이기 위한 의료진의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를 산모를 통해 듣고는 당신 가족이면 이렇게 하겠는가 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무튼, 산모의 경과는 끝나가는 겨울 날씨에 살얼음을 디디는 것과 같이 조심스러웠다. 임신 초기에는 심한 복수로 인한 숨찬 증상으로 내과에서 복수를 3-4L 를 뽑았고, 임신 중반부가 되면서는 높아진 복압으로 식도 출혈로 산모는 피를 토하며 응급실을 방문했다. 내시경 검사를 시행했고 다행히 지혈 치료를 할 정도의 혈관은 아니어서 경과 관찰을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시 산모가 피를 토하며 응급실을 오건, 조기진통 또는 조기양막파수로 분만장오로 오던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산모의 병원 침대 맡에는 '시크릿 (Secret)' 이라는 오래된 책이 놓여 있었다. 나도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어서 고위험 산모들이 보기에 좋은 책이었다.
산모는 약 임신 20주에 퇴원을 했고 이후에는 2주 간격으로 외래에서 진료했다. 다행히 '시크릿 (Secret)' 을 읽은 덕분인지, 산모와 남편의 긍정적인 마음 덕분인지 태아들은 문제 없이 자랐고 어느 덧 임신 28주가 되어서 한 고비를 넘긴 순간이 되었다. 나는 왠일인지 '이제는 일 주일 후에 볼까요?' 라고 말했고 (통상적으로는 2주 간격으로 본다.) 산모도 아무런 질문 없이 '네' 라고 답했다. 다음 주에는 외래 전에 모니터를 분만장에서 하고 외래로 오기로 했었다. 아기의 태동이 줄거나 규칙적 진통이 있으면 병원 응급실로 와야된다는 설명과 함께.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오후 외래를 보고 있는데 분만장에서 4년차 전공의가 상기된 얼굴로 내려왔다. 외래 전 모니터를 하러 온 이 산모의 두 태아가 이미 자궁내 태아사망해 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나머지 한 태아도 현재 모니터가 좋지 않다고. 나는 응급수술을 준비하라고 이야기 하고 외래를 서둘러 마치고 분만장으로 갔다. 산모는 오늘 병원에 오기까지도 나머지 두 아기의 태동이 매우 좋았다면서 이 비극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도 믿을 수 없는 사실데 산모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당연했다. 나머지 한 명의 태아도 심박동 이상을 보이고 있던 터라, 나는 최소한의 설명을 하고 서둘러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심장이 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꺼내는 마음은 좋지 않았다.
만약 하루 전날 이 산모가 외래에 왔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세 명 다 모두 정상이었기에 또 일 주일 후에 외래로 오라고 했을 것이다.
만약 오늘 내 외래가 오후가 아니라 오전이었으면 어땠을까? 산모는 오전까지만 해도 아기가 정말 잘 놀았다고 말했기에 분명 아기의 태동 검사는 정상으로 나와서 1주 후에 외래로 오라고 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루틴대로 2주후에 외래로 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두 아기의 심장이 멎은 일은 순식간에 진행된 것으로 추정되었고, 나머지 한 아기의 심박동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기에 어떠한 경우든 나는 '안타깝게도 세 아기 모두 심박동이 관찰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쌍둥이건 세쌍둥이건 한 아기가 임신 기간 동안에 유산 또는 사산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임신 일삼분기 (14주 미만)에는 12-38% 까지 발생할 수 있고, 임신 14주 이후에는 쌍둥이 임신 기준 약 6%에서 생기며 이는 대부분 태아 자체의 이상에 기인한다. 그러나 세쌍둥이 중에서 두 아기 모두 같은 시기에 갑자기 잘못되는 경우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지 26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었다. 동시에 나머지 한 아기도 나빠지고 있었기에 이 원인은 태아 자체가 아니라 산모의 간질환에 기인한 급격한 혈역학적 변화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산모의 혈소판 감소증은 심했지만, 살아 있는 태아의 심박동 모니터는 수혈을 기다릴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출혈을 감수하고 응급 수술을 진행했다. 산모의 출혈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현재 살아있는 한 명의 아기라도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온전히 넘기는 것이 목표였다. 다행히 이 아기는 약간의 울음 소리를 들려주었고, 출생 후 체중은 1 kg를 조금 넘었다.
오늘은 내가 한 명의 태아를 살린 날인지
아니면 두 명의 태아를 살리지 못한 날인지
그래도 1+3 이 1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자기 전 맥주 거품을 입술에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