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AE이자, 이사로 재직중인 양모씨는 대단한 반려견 애호가이다. 이전에 다른 블로그에 올렸던 글에서는 그는 발려견을 키우지 않는다고 씌여있지만, 시간이 지난 이제는 그도 결혼을 했고 '앙꼬' 라는 이름의 믹스견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서 찍은 '앙꼬'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여주곤 하는데, 이쯤되면 그가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나도 양모씨 만큼은 아니지만 반려견을 좋아하는 편이다. 결혼하기 직전까지 본가에는 벌써 11년째 집에 터를 잡으신 말티즈 '용필옹'께서 거주중이셨다. 용필옹이 처음 들어왔을때는 집앞에 산책 나가는 것도, 목욕 한번 시키는 것도 버거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나도 제법 익숙해졌고 용필옹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잖해지면서 우리는 서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친하게(?) 잘 지냈던 터였다. 나도 결혼하여 분가한 지금은 안타깝게도 상당히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만나면 반갑고 최소한의 아는척은 해주는 용필옹이 지금도 귀여울 따름이다.
서두가 좀 길어지긴 했지만, 암튼 나와 이사는 반려견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모든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어버리면 얘기가 달라지듯, 우리더러 반려견을 촬영하라 하면 여전히 낮빛은 어두워진다.
근자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련 용품들 또한 수요가 증가해 우리도 덩달아 한달에 한 두건 정도는 반려동물 관련 제품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반려동물 관련 촬영현장은 사진으로 보기에는 참 아름답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깜찍한 반려견과, 이를 데리고 다니는 수려한 용모의 견주 역. 여기에 생긋생긋한 웃을을 짓는 아역출연자 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드는 현장도 아름다울까? 글쎄..
반려동물이야 각 개인의 취향이 확실한 영역이니 반려동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본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영상제작자 중에서 반려동물 촬영을 반기는 경우는 아직까지 본적이 없다. 우리 스텝들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있고, 동물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반려동물 관련용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하면 하나같이 우울한 표정이 쏟아져 나온다.
반려동물 촬영을 반기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각 클라이언트마다 원하는 그림이 있을 것이고, 그 그림을 제작자가 영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출연자에게 여러가지 디렉션이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 반려동물들이 사람도 어려워하는 그 디렉션들을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우리 애는 참 얌전하구요, 사람 말도 참 잘들어요" 라고 견주들은 항상 말하지만, 여지없이 스튜디오에 도착하는 순간 그 얌전하다는 애들은 스튜디오를 여기저기 사발팔방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촬영시간이 예상보다 훌쩍 넘어버리는 것은 예사요, 원하는 그림이 나올때까지 인내하며 연신 카메라를 부여잡고 있는 촬영감독과 스텝들도 언제나 탈진이 된다.
물론 촬영을 당하는(?) 반려동물 입장에서도 참 난감할 것이다. 처음 와보는 낮선 공간에, 주인이 아닌 낮선 사람 여러명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상황이 편치는 않을 터, 서로가 미안하면서도 난감한 가운데 어떻게든 촬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전쟁터가 바로 반려동물 촬영현장이다.
이 글은 과거에 반려견 유모차 프로젝트가 끝났을 즈음 작성하였다. 반려견과 함께 공원과 산을 뛰어다닌 스텝들의 퀭한 눈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다시는 반려동물 관련촬영을 하고싶지 않다는 스텝들도 있었다. 우리 회사 PD 한명은 지금도 반려동물 얘기만 나와도 도망치듯 회의실을 빠져나온다. 본인에게 맡기지 말라고..
다시얘기하지만 우리는 동물을 사랑한다. 다만 그 촬영을 힘들어할 뿐이다.
이쯤되면 아직까지도 반려견을 사랑하는 이사가 존경스러울때가 많다.
나는? 아직 좁디좁은 신혼집에 반려동물을 키울 엄두를 못내고 있다. 언젠가 여유있어진다면.. 그때 고민해 보도록 하자.
<이 글은 과거 본인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현 시점에 맞게 수정하여 업로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