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후 찬수는 정애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녔다.
농고 3학년 여름이었다.
하교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정애와 찬수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빈집 추녀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정애의 하복이 몸에 달라붙어
하얀 속살이 비쳤다. 순간 찬수는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찬수의 떨리는 입술은 정애의 입술에 닿아 있었고 정애는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지나갔다. 찬수의 아랫도리가 굳어졌다.
정애가 그만 실수로 찬수의 발등을 밟았다.
찬수의 굳어진 몸이 부스스 깨었다.
찬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쏟아지는 빗속을 뛰었다.
‘정애는 내가 입술도장을 찍었으니 내 여자다 ‘ 하며
빗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빗소리인지 찬수의 외침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이듬해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애는 서울로 올라갔다.
그녀의 식구들까지 경기도 어느 신도시로 이사를 가니
찬수의 봄은 멀기만 했고 음산한 겨울이 지속되었다.
찬수는 여자에게 어떻게 사랑을 고백하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스물아홉이 지나고 삼십 대가 될 무렵 우연히 만난
동창생에게서 정애의 소식을 들었지만 찾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갈래머리 철부지 용숙도 다른 남자
에게 시집가고 홀로 밤을 맞기가 두려운 찬수다.
정애의 집이 이사 간 이듬해에 찬수네 가족들도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이룬 동네로 이주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정애는 찬수와 아련한 추억이 영화
속 장면처럼 생생히 살아나 귀밑까지 빨개지고 가슴이 뜨겁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남자는 찬수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차를 몰고 찬수의 집으로 달려갔다.
찬수의 집이 저만치 보이자 정애의 가슴은 사춘기 소녀처럼
쿵쿵 뛰었다. 그녀는 양 갈래머리 사춘기 소녀로 돌아갔다.
찬수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고 세발자전거가 있었다.
잠시 후 예닐곱 살 먹은 사내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대문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정애가 자전거를 비끼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탄 채 정애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아줌마는 누구야! 어디서 왔어, 저 차 아줌마 차야?”
정애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
는데 어딘가 찬수와 닮은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물었다.
"얘, 너 이 집에 사니?"
“응. 여기가 우리 집이야. 그런데 왜 물어?"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애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네 아빠 이름이 이찬수 씨니?"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우리 아빠 이름은 왜 물어, 우리 아빠 과수원에 있어, 저기?”
정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안고 사내아이가 손가락
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찬수가 아니었어?' 정애는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사내에게 다가가서
"저어! 전에 이 집에 살던 분들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내아이의 아빠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정애의 눈치를 보며
"그분들 강 건너 동네 간척지로 이주해 갔는데… 작년에…?"
돌아서는 정애의 발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정애는 다리를 건너 강 건너 간척지 마을로 길을 재촉했다.
다리 건너 찾아갔지만 찬수는 지방으로 공사일이 생겨서
떠나고 없었다. 정애는 찬수를 단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