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폼 나게 살고 싶었다
33세 청년 찬수는 교회도 잘 다니고 농사도 잘 짓는
착실한 총각농부였다. 그동안 주위에서 맞선도 많이
들어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교회에서 한 아가씨와 눈이 맞았다. 덩치도 크고 이해심도
많은 연심과 사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연심이 임신을 했니 안 했니 발 달린 소문이 온 동네를
쏘다니며 입에 오른다.
그의 모친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똑똑한 연심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연심의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고 꼬장꼬장한 선비
타입으로 사윗감으로 못마땅해한다는 말을 건네 듣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
연심과 찬수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가 연심이 한 살 연상
이라는 것보다 사윗감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장래성이
없다고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노모가 전해 듣고 노여웠다.
노모는 착실한 찬수가 최고의 아들로 생각했다.
결국 양가 부모들의 자존심싸움에 결혼이 깨지고 홧김에
연심은 목장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그의 형 찬동은 술만 처먹으면 여자를 때려서 고소를
당해 툭하면 유치장에 들어가고 피해자와 합의를 하느라
농사지어서 모은 돈이 바람처럼 날아갔다.
찬수가 죽어라 농사를 지면 뭐 하랴!
결국 형의 합의금 명목으로 한 입에 털어 넣는 것을.
몇 년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1년 농사로 번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자 농사일에 재미를 잃고 전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죽어라 일해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수입.
시대흐름에 맞춰 한 푼 두 푼 쓰지 않고 모아두었던 돈으로
제법 쓸 만한 중고차를 구입했다.
자가용을 굴리며 자기를 버리고 간 연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궁상떠는 노총각으로 보이기
싫고 폼 나게 살고 싶었다.
막상 자가용을 사고 나니 옆 좌석이 허전했다.
문화혜택이 없는 시골로 도시여자들이 시집 올 형편도
아니고 즐기면서 한 세상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겉멋이 잔뜩 들은 그는 논에 갈 때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물장화를 벗어던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에 단발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 예술가나 화가처럼 보였다.
그의 집에서 자동차로 8~9분쯤 가면 읍소재지가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새 건물이 들어섰다.
희한한 일은 2~ 3층 건물마다 지하에 다방이 들어왔다.
선창포구가 가까운 곳이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읍내에는 제법 많은 돈이 나돌았다.
사십여 개의 다방들은 제각기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다방에 드나드는 남자손님은 나이에 관계없이 기본이 커피 두 잔이다.
커피주문을 받으며 아양을 떠는 아가씨와 폼 나게
한 잔씩 마시며 농담도 하고 손도 만지고 테이블
아래에서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허벅지를 주무르기도 했다.
그것이 성이 차지 않은 남자들은 시간 비(티켓)를 지불하고
다방아가씨를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아가씨의
비위를 맞춰주면 2차를 가기도 했다.
어느 순간 찬수도 그 문화에 전염이 되었다.
한 술 더 떠서 다방에 가면
커피 대여섯을 주문하는 것이 기본이다.
허접한 자신을 왕으로 모시며 직사대접을 받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자동차회사에 납품 기사로 취직했다.
자기 앞으로 된 논마지기에 죽어라 농사지으면 뭐 하겠나?
그 돈을 모두 한 방에 축내는 형이 미웠다.
재주는 누가 부리고 누가 돈을 챙긴다고? 그런 형을
버리지 않고 사는 형수 때문에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회사를 다녀도 논농사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흥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게다.
알게 모르게 배운 것이 형에 대한 불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다방아가씨들과 노닥거리는 일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그 속은 모르겠지만.
기사 일을 하여 버는 돈으로는 품위유지비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