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머릿 속에 든

머릿 속에 든 요리를 비워내고 있다.

by 유정 이숙한

세탁기가 금요일 오후 4시 도착하기로 했다. 정든 세탁기를 밀어내고 더럽혀진 자리를 세제로 닦아냈다.

세탁기가 늙어 모터가 힘이 달려 탈수 기능이 정지되어 수동으로 탈수했더니 습기가 많아 벽에도 곰팡이 꽃이 활짝 피었다. 핑계김에 벽도 세제와 식초를 풀어 말끔하게 닦아냈다. 베란다에 있던 허접한 것들을 안으로 옮기고 바닥 전체를 깨끗이 닦아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니 옆지기님과 딸과 손녀딸이 집으로 돌아왔다.

베란다 빨래걸이가 아래로 처져 있어 머리를 헝클어 놓았는데 옆지기가 알아서 깔끔하게 위로 올려주었다.

4시 40분 세탁기가 도착했다. 정든 세탁기가 밖으로 나가고 새 세탁기가 자리를 잡았다. 평생 LG것만 썼는데 이번에는 삼성 그랑데 드럼세탁기이다. LG 드럼세탁기를 매체를 통해 주문했는데 배달이 16일 걸린다고 해서 취소하고 하이마트에서 배송이 내일 되는 것으로 주문했더니 약속대로 다음 날 도착했다.


열흘 가까이 손빨래를 하고 탈수만 세탁기의 도움을 받느라 무척 힘들었다. 어질러진 보일러실을 정리했다. 3단짜리 선반에 늘어진 것들을 정리하니 깨끗해졌다. 대나무 돗자리 두 개가 사용하지 않아 거치적거렸는데 당근마켓에 올렸다. 하나는 이가 빠져 한 개 값에 팔았다. 시골집 찜질방에 깔 거라고 부부가 와서 사갔다.


연식도 있으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나눔 하거나 저렴하게 팔아 자리를 비운다. 욕심을 내지 않고 비워가는 연습을 한다. 살아서 애지중지하던 사진첩도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임자를 잃고 방황한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내가 쓰던 물건들도 주인을 잃고 방황할 것이다. 하나씩 비워나가다 보면 깨끗이 정리가 될까? 사람과 인연을 제외하고는 내 손때가 묻은 것도 아끼지 말고 비워내야 한다.

언제나 오래도록 살 것 같아도 인생은 종착점이 정해져 있는 것! 다만 그때를 알지 못할 뿐이다. 내가 요리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도 머릿속에 갖고 있는 것을 비워내는 과정이다. 수필이란 이름으로 비워내고 있다.


제비꽃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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