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불편한 진실 > 유정 이숙한
몇 달 후,
하연은 차단된 전화를 해제했다고 톡을 보냈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가까스로 현우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사랑의 아픔은 다른 사랑으로 치료가 된다.
현우의 목소리를 들어도 요동하지 않는 척한다.
현우는 하연의 그림자를 벗지 못해 버벅댄다.
죽는 날까지 그녀를 품고 살 것이다.
그는 수천 리 머나먼 빙하의 나라에 있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도 그녀를 잊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현우는 먼발치에서 하연의 그림자를 보고 싶어
수천 리 머나먼 길을 찾아왔다.
현우가 하연의 지역 후배와 미팅이 있어 하연의
집 근처에 업무상 대화가 있다고 한다.
하연은 그의 속마을을 이미 알고 있다.
순전히 업무는 핑계일 뿐, 그의 속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어리석은 것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남의 여자가 된 사람을 만나서 어쩌려고?
하연의 후배가 커피를 마시러 오라고 한다.
하연을 보고 싶어 하는 셰프가 왔다고 말한다.
하연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 나갈 수
없다고 단박에 거절했다. 아플 만큼 아팠으니까.
지나간 사랑에 아파하지 않는 그녀다.
추억을 곱씹으며 서울 본가로 돌아가는 현우
하연은 그가 버림받은 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에서 내린 눈이 그의 눈에 들어가더니 눈물이 되었다.
하연은 현우의 마음을 읽고 있지만 요동하지
않으려고 굳은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현우와 한집에 지냈어도 같은 방을 쓰지 않았다.
같은 방에서 지냈더라면 영영 이별할 수 없을 테니까.
오래전 모범 정답을 낸 하연이다.
이별의 아픔까지 계산한 그녀다.
현우는 하연의 집 근처에 몇 번 걸음 했다.
하연과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연이 행복해야 그도 행복하니까.
현우는 몸을 움직일 기운이 없다.
하연이 토종닭과 옻을 넣고 끓인 보양식이 생각난다.
기운이 없을 때마다 옻닭을 해주느라 피부에 옻이
올라서 지독하게 고생했던 하연이다.
아내는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리지 않는다.
아내에게 말썽만 피우는 그대, 애들 아빠, 호적상 남편일 뿐이다.
현우는 영하 20도 추운 나라에 있다.
막걸리 한 잔 마시니 하연이 그리워 눈물이 난다.
언제쯤 그의 눈물이 마를까. 핑곗거리도 말랐다.
목소리라도 들으면 살 거 같은데 하연에게 할 말이 없다.
쓸데없이 돈에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하연과 함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연은 현우와 한 집에 살 때 아내가 있는 사람과
한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며 나가라고 했다.
돈이 모아지면 집을 나간다던 현우가 눌러앉았다.
2년 간 하연과 양식당을 했지만 주머니는 여전히 팔랑거린다.
하연과 함께 업장을 운영할 때 그가 우량주를 샀다.
주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박 나기를 기다린다.
하연이 양식당 시작 전, 주식을 팔라고 했다.
1억 원이 400만 원으로 폭락하였고 곧 150만 원이
되더니, 1년 후 400만 원이 됐다고 자랑하는 그였다.
하연은 도깨비 살림인 주식시장을 믿지 않는다.
주식에 돈을 버는 큰 손은 따로 존재한다.
개미투자자에게 설탕을 꿀이라고 먹이는 자들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인다.
도깨비놀음에 북장단을 치기 싫은 그녀였다.
죽어라 한 달 벌어서 흡혈귀의 입에 한 방에
털어 넣는 가련한 개미 투자자안 현우의 마음을
읽고 있는 흡혈귀는 미소를 지으며 굵은 빨대로
그의 피를 한 방에 쭉 빨아들인다.
그의 영혼까지 훅 빨아들인다.
흡혈귀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은 하연이다.
현우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아내와
자식에게 아버지로 남편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영혼을 빼앗긴 존비처럼 꿈을 꾸는 그였다.
하늘과 땅의 자리가 뒤바뀐다면
현우가 산 주식이 대박 날 수 있다.
언제쯤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하연은 양식당을 차리기 전에 주식을 팔라고 했다.
3년 가까이 버티고 있는 현우를 하연이 놓을 수밖에.
그리움으로 멍든 현우의 가슴에 소용돌이가 인다.
현우가 보이스톡 전화를 걸었다. 하연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