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회) 우리 유람선에서 자고 갈까?
맑은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방 안으로 성큼 들어온다.
아침 일찍 논에 다녀온 그는 기지개를 켜며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간다.
승용차에 앉은 먼지를 말끔하게 닦아내고 차에 타더니 시동을 걸었다.
8킬로 떨어진 읍내에 도착했다.
찬수를 보자 ‘보리수 다방’의 김 양이 달려왔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나, 첫사랑 정애나 미희는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웠다. 그는 김 양에게 냉큼 차에 오르라고 손짓한다.
김 양은 가지고 있던 쟁반을 승용차 뒷좌석에 내려놓고
조수석에 오르면서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말을 건넨다.
"오빠, 우리 어디 가자, 나 바람 쐬고 싶어."
찬수는 기어를 넣고 유유히 읍내를 빠져나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있는 곳으로 우회전한다.
넓게 뻗은 길을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낙조로 유명한 궁평항으로 갔다.
쭉 뻗은 9킬로 해안도로를 달린다.
십여 분 달린 끝에 궁평항 주차장에 도착하더니 주차장에
차를 댔다. 차에서 내려 낙조를 보기 위해 테크 쪽으로 걸어갔다.
포구에 몰려든 갈매기들이 날갯짓으로 춤을 추며 김 양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 모여들더니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두 사람을 응원하듯 힘차게 하늘로 떠오르더니 바다 위로
내려앉았다. 태숙(김양)은 찬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수면 아래로 빠져든 태양은 저녁하늘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태숙은 그의 어깨에 기대며 팔짱을 끼더니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오빠야, 바다 좋다? 노을이 아릅답다. 새우깡을 먹으러 몰려드는
갈매기도 예술이야! 나도 갈매기였다면….
붉은 노을이 곱게 실핏줄처럼 퍼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태숙의 얼굴이 익어간다. 태숙이 말했다.
-저 넓은 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머무는 곳이 있겠지!
태숙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고 온 고향,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 항이 생각났다.
찬수는 태숙의 어깨를 가볍게 안으며 토닥거렸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에는 정신없이 기어 다니는 돌게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두 사람은 궁평항 입구 우측에 설치된 테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소나무 숲이 있는 유원지를 걸었다.
백사장에서 소라껍데기를 하나 주워 태숙에게 주는 찬수
태숙은 소라껍데기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니 옛 생각이 났다.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의 퍼즐들이 어수선하게 펼쳐졌다.
「어부인 아버지와 엄마랑 행복했던 바닷가.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소녀의 모습. 아빠가 타고 간 배가 실종되자 넋을
잃고 포구에서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엄마.
엄마는 돈을 벌겠다고 뭍으로 떠나고 홀로 남은 태숙은
외삼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스무 살쯤 되자 엄마를 찾겠다고 서울에 상경하여
취직한다고 이곳저곳 떠돌다 엄마도 찾지 못하다
사기당하고 흘러온 곳이 이곳 다방이었다.
태숙은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한 찬수가 좋다.
찬수는 솔밭 옆에 유령처럼 서 있는 유람선으로 태숙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태숙아! 여기 정박 중인 유람선에서 우리 자고 갈까?
이 배가 아버지가 타던 고깃배라고 생각해! 그럼 행복해지지
않을까? 엄마 찾는 것은 그만둬. 벌써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됐을 거야. 엄마라도 행복하게 놔둬?
-그래, 오빠. 여기에 잠깐 동안 내 고향을 옮겨놓을게! 우리 아빠도~
<저 산마루 쉬어가는 구름아 내 사연 전해주겠니? 정든 고향
떠난 지 오래고 내님은 소식도 몰라요. 아 아 뜬구름아- 삼포로
가거든 정든 임 소식 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삼포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찬수는 멋들어지게 휘파람으로 노랠 구성지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