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남이섬에서 있었던 일

사랑의 오솔길

by 유정 이숙한

난 어려서부터 덜렁거리고 남자애처럼 나무에 올라가 솔방울을 따거나 자치기를 하고. 개울에 들어가서 둑을 쌓고 물을 퍼내 우렁이와 붕어, 미꾸라지 같은 민물고기 잡는 것을 좋아했다. 개구리를 잡아다 주면 아버지가 용돈을 주었다. 어린 돼지들의 최고의 영양식이 개구리탕이었으니까. 이십 대에도 보기에는 여자지만 속 마음은 남자이었는지 모른다. 직장에 친하게 지낸 여자 친구와 함께 바람도 쏘일 겸 남이섬에 가기로 했다.

부평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팔당에서 북한강을 따라 대성리와 청평을 지나 가평의 남이섬에 갔다. 그리고 강산이 네 번 넘게 바뀌었다. 오늘 남이섬에 가기 전까지 산정호수와 남이섬을 혼동하는 것도 덜렁대기 때문이다. 그때도 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잊히지 않는 게 두 가지 있다. 덩치가 아주 큰 타조가 남이섬 안을 뚜벅뚜벅 걸어 다녔는데 무섭지만 신기했었다.


둘이 걸어가는데 축구동이 내 앞에 굴러왔다. 그래서 발로 뻥 찼다. 직장에서 온 남자들이었는데 축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말괄량이 두 아가씨가 팔랑거리며 축국공을 뻥뻥 찼더니 재미있었다. 요즘은 여자 축구팀이 있지만 그땐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한 청년의 바지가 엉덩이에서 안쪽 가랑이까지 길게 툭 터졌다.

민망하게도 허연 속옷이 보였다. 청년은 그런 줄도 까맣게 모르고 공을 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민망해서 당사자에게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상황을 모르는 청년은 섬 전체를 활보하며 축구에 진심이다. 살그머니 다가가 말해주었더니 무척 당황하며 속옷이 보이는 터진 엉덩이를 수건으로 감싸 안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우린 그 팀에 끼어 맛있는 점심도 얻어먹고 저녁 무렵에는 그 팀이 대절해 온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일주일 후 우린 그쪽 남자 두 사람과 명동 커피숍에서 만나 사진을 건네받았다.


2025년 4월 13일. 비가 내리고 진눈깨비와 우박도 번갈아 쏟아진다. 벚꽃비가 하얗게 우수수 쏟아진다.

도깨비 같은 날씨다. 일행 중 몇 명은 우비를 준비했지만 나와 다른 몇 명은 우비를 준비하지 못해 우산을 받고 다녔다. 짐라인을 타고 남이섬으로 들어가려고 계획했는데 비가 내리니 취소되었다. 큰맘 먹도 도전해 보려고 했는데 서운하다. 우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에 올라 남이섬으로 가는 인파 속에 스며들었다.


사랑의 오솔길에.jpg

배에서 내려 걸어가니 하늘로 두 팔 벌린 나무들 사이에 난 사랑의 오솔길을 걸으며 사진을 담았다. 이십 대 젊은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아 마음이 즐겁다. 그 길에서 만난 공작새는 인파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닌다.

남이섬분수.jpg 남이섬 맑은 연못에 있는 분수입니다.
남이섬 은행나무길.jpg

세월이 흘러 흘러 남이섬은 새롭고 젊어졌다. 난 무릎이 아픈 나이가 되었다. 공작새가 호떡집 옆에 오더니 손님들이 손바닥에 올려놓은 호떡 조각을 넙죽 받아먹는다. 멋진 날개를 펼쳐 보였으면 좋은데 그럴 마음이 없는지 길고 멋진 꼬리를 이끌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고 있는 풍경은 남이섬 만이 주는 멋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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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벚꽃이 활짝 웃고 있는데 짓궂은 진눈깨비와 우박이 아프게 작은 뺨을 후리지만 예쁜 미소를 짓고 있다.

강 건너 산을 보니 하늘에서 하강한 천사가 하얀 날개 자락을 늘어 뜨리고 있다.

남이섬에서 본 산.jpg

북한강 상류인 남이섬은 강물이 맑았어요. 강 건너에 길가에 핀 벚꽃과 산에 핀 진달래도 아름다웠다.

작은 연못에서 놀고 있는 청둥오리들도 두 팀이나 보고 강가 테크에서 강 건너 산의 정경을 담아보았다.

북한강 상류, 남이섬.jpg

배를 타고 나가니 북한강 선착장에 내리니 비가 내린다. 가평에서 한 시간 반 달려서 춘천으로 넘어가 닭갈비를 먹고 양평 용문사로 갔다. 남이섬은 나중에 손녀딸이랑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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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로 가는 길에 있는 나무 등걸로 만든 자연 의자다. 이 의자에 앉아 발목을 쉬었다. 등 뒤에 있는 젊은 나무를 위해 앞에 있는 나무가 자리를 양보한 것일까. 굵은 나무 사이에 젊은 나무가 자라는 거 같은데 앞에 있는 굵은 나무를 왜 베었을까? 가운데 있는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남이섬 사랑.jpg

이건 카메라로 남이섬 사랑의 오솔길로 가는 길을 담아 보았다.

용문사 은행나무1.jpg

용문사에 있는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를 카메라에 담은 모습이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경내에 있는 1,1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나무높이 42m이면 거의 11층 높이이고 가슴높이와 줄기둘레 11m이나 엄청나다. 뿌리 부분 둘레 15.2m 규모의 아직도 은행을 매달고 있는 암나무라고 하니 놀랍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수령과 나무 높이로는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둘레 2m 부위 아래쪽에는 커다란 혹이 달려져 있다. 사람은 기껏해야 백 년도 살지 못하는데 삼국시대부터 살아온 것이니 대단하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 가는 길에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조선 세종 때는 당상관의 품계를 받을 만큼 중요한 나무로 관리되었다고 한다. 잘 관리되어 후세에 오래 전해졌으면 좋겠다.


봄이 되면 다른 나무들은 일찍 잎이 나오거나 꽃이 피는데 은행나무는 잎이 늦게 나오으모 아직도 겨울나무 상태다. 2020년에 전남 나주에 갔을 때 사백 년과 오백 년 된 고목을 많이 보았는데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용문사 은행나무다. 사람은 자연 앞에 아주 작은 존재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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