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태숙은 정애가 되어
태숙은 유람선이 낯설지 않았다. 생전에 아빠가 타던
배처럼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다. 본
인도 모르는 사이 아빠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유람선이 아빠의 어선으로 다가오면서 마음이 포근해졌다.
태숙은 한 마리 갈매기가 되어 고향 바다와 하늘을
마음껏 날며 노랠 불렀다.
찬수가 태숙을 보니 석양빛에 발그레하게 물든 얼굴이
첫사랑 정애와 닮았다.
시원한 이마와 웃음이 깃든 눈매, 미소 짓는 입술.
태숙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유람선 선장실은 바닷바람을 막아줬고 이부자리와
식사도구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유람선의 시계는 6시에 멈춰있었다.
낡은 모자와 외투가 걸려있고 사람의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찬수는 차에서 취사도구를 가져왔다.
궁평항 수산물센터에서 생선회도 떠 오고 소주와 곁들여
딸딸하게 몇 잔 기울이며 목구멍을 적셨다.
끓는 물에 매운 짬뽕라면과 건 새우, 굴을 넣고 기다렸다.
4 분 후 나무젓가락으로 저어 굴이 익게하고
수프가 국물에 잘 우러나도록 했다.
따듯한 라면국물을 마시니 추운 몸이 덥혀졌다.
- 오빠, 우리가 영화에 나오는 연인 같아! 오늘 우리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면 안 될까?
- 저기 산 너머 캠핑장이 있는데 텐트에 불 피우고 밤을 보내는
게 더 따뜻하고 멋지지 않겠니?”
태숙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두 사람은 텐트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텐트를 빌렸다.
야전등불이 켜진 텐트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찬수가 말했다.
- 우리 텐트에서 영원히 살까? 아니면 캠핑카를 구입해서
전국을 떠도는 것도 좋고. 생활비는 다니는 곳마다 현지에서
바로 벌어 다 줄게! 아님 20년쯤 계약결혼을 하는 거야!
우리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건배…
우리의 사랑과 인생, 내일의 희망을 위하여.
태숙과 찬수는 연거푸 여러 잔을 비웠다.
취기가 적당히 오르고 야전 전등에 비친 태숙의 청초한
얼굴이 찬수의 눈에 고고한 학처럼 보였다.
- 태숙아, 이리 와 내가 팔 베개 해줄게. 잠깐 눈 좀 붙여!
적당히 취기가 오른 태숙은 어린아이가 아빠의 품에 안기듯
찬수의 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안겼다.
겉옷을 벗고 가벼운 속옷차림으로 찬수의 오른팔을 베고 누웠다.
그가 예전부터 알아온 사람처럼 낯설지 않았다.
태숙은 정애가 되어 찬수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태숙이 정애가 되었다. 정애는 찬수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여리고 부드러운 가슴에 집어넣었다.
정애의 부드러운 살결에 손이 닿는 순간 그는 15세
소년처럼 가슴이 후끈거리고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을 만져 보긴 오랜 만인 것 같았다.
정애는 찬수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노란 야전 등에 비친 정애의 탐스런 살결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애는 주저하지 않았고 찬수의 얼어붙은 몸에 불을 지폈다.
찬수의 몸은 마른 장착처럼 활활 타올랐고 커다란 해일로 변해
정애를 향해 돌진했다.
몰려오는 성난 바람을 거센 파도가 씹었다.
하늘이 우르릉 쾅쾅! 세찬 빗줄기를 몰고 왔다.
야전 등에 비친 남녀의 그림자 텐트 사이로 가까이 길어졌다 작아졌다 한다.
광란의 밤은 물러가고, 새벽녘 밀물에 달려오는 해풍은
잠이 덜 캔 조개들을 흔들어 깨웠다.
갈매기들이 날아와 짭조름한 조개 살점을 쪼아 먹으려고
뾰족한 부리로 공격했다.
조개들은 입을 꽉 다물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하늘에 떠 있는 양털구름이 언제 비가 내렸나 하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찬수는 구름에게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