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너, 잠수함 타야지?
찬수가 화투를 좋아하는 건 순전히 부전자전이다.
아비로부터 내려오는 집안내력인가. 농촌에서는
기나긴 겨울을 할 일 없이 보내려니 지루해서 마땅한
놀이가 없어 늙으나 젊으나 아낙이든 남정네든
겨울이면 화투놀이를 즐긴다.
엉덩이가 따끈한 마을회관에 모여 남정네들은 일점에
오백 원짜리 고스톱을 하고 아낙들은 일점에 백 원짜리
고스톱이나 민화투를 친다.
찬수가 탕 뛰기 기사 시절 무료한 시간을 축내는 놀이가 고스톱이었다.
찬수는 고향 동네 선술집 뒷방에서 화투장을 들여다보며
수학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금방 점수가 날 것 같은데 청단이 나고 다음 판에는 홍단이
나고 고도리가 나는 등. 앞자락 그득하게 돈다발을 끌어다 놨다.
시간이 갈수록 점수는 나지 않고 야금야금 밑 빠진 독에 물이
새 나가듯.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화투 칠 때의 기본.
‘이마에 열받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그 원칙이
무너지고 열이 초특급으로 오르고 있었다.
다섯 명 중에 한두 명은 광을 팔고 남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견제하는 척하더니 슬슬 서로에게 밀어주고 있었다.
고스톱은 세 명 중 한 명이 go를 부르면 go를 부르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밀어줘서 go를 부른 사람에게 독박을 씌우는
방식이 정석인데, 입으로는 양쪽을 견제시키는 것이
기본이라고 떠들더니 광을 판 사람은 찬수의 편을 드는
척하다가 그의 패를 슬쩍 훔쳐봤다.
그가 들고 있는 패를 맞은편에 앉는 사람에게 눈을 깜박
이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나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찬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얼큰한 상태라서
은근히 '나를 봐주는 것이구나!' 하고 착각에 빠져 있었다.
앞에 쌓인 돈이 바닥을 보이고 <1점에 만원으로 하자!>
찬수가 제안했다. 어제처럼 많은 점수를 얻어 한 꺼번에
돈을 챙기겠다는 심산인데….
처음 몇 판은 작아서 적은 돈다발이 올려지더니 큰 다발의
판돈이 한목에 올려졌다.
뭉칫돈만 있으면 금방 다 딸 것 같은 그는 선술집 누나에게
돈을 꾸었다. 뭉칫돈을 올려놓자
두 판에 많은 돈이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찬수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친구의 씨앗가게로 달려가서 오백 만원을 빌려 왔다.
새벽녘, 한 판에 백만 원 따고 두 번째 판과 세 번째 판에
칠백 만원을 따더니 이천만 원이란 거금을 땄다.
가슴에 희열과 함께 즐거움과 두려움으로 경련이 왔다.
먼저 누나에게 꾼 돈을 갚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 아유! 오줌보가 터져 버릴 것 같아 잠시 실례합니다.
이번 판 쉬고 화장실부터 다녀와야지.
그는 앞자락에 쌓은 돈을 눈치채지 못하게 양말과 주머니에
짱 박고 얼마 남지 않은 잔돈은 바닥에 그대로 둔 채.
일행들의 눈치를 보며 꽁 마려운 강아지처럼 엉거주춤 일어났다.
일행 중 한 사내가 얼굴도 보지 않고
- 형씨, 빨리 오슈! 저번처럼 도망가는 것은 아니겠지?”
찬수는 들켰다는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간신히 참고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소변을 보고 나니 터질 것 같이 아프던 방광이 시원하게 비워졌다.
담배를 물고 뒷걸음을 치며 걸음아 나 살려라!
뒷문으로 줄행랑을 쳤으나 누군가 금방 쫓아올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연신 뒤를 보았다.
식전댓바람이지만 상황이 급한지라 차를 시동도 걸지 않고
차를 밀면서 선술집을 벗어나더니 시동을 걸고 언덕 너머 동네로 향했다.
그리고 동네 선배인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형님! 전데요, 지금 어디 계세요?
- 으응 여기 S시장, 일 마무리돼가고 있어. 이리 와, 우리 집사람도 여기 있어. 운전조심하고.
찬수는 S시장에서 동혁 부부와 만나 그럴싸한 일식당으로 갔다.
- 실은 형님! 나 지난번 잃은 돈 다시 찾았어요? 형님! 형수님!
드시고 싶은 것 다 말씀하세요! 오늘은 찬수가 부자입니다.
동혁이 살그머니 물었다. 그러자 찬수는 두 장{이천만 원)
이라며 검지와 중지손가락을 펼쳐 흔들며 생글생글 웃었다.
일행은 즐겁게 식사하였다.
- 찬수야, 너 또 얼른 잠수함 타야지! 꾼들이 알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