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수철은 군에 입대했다. 여자 친구 순이의 집에서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했다. 부모도 없고 반반한 직장도 없어 미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철이 논산훈련소를 거쳐 가평 부대에 배치되자 순이는 수철의 친구인 장교와 함께 면회를 왔다. 어느 날 순이가 부대로 혼자서 면회를 왔다. 수철은 외출을 나와 순이와 점심을 먹고 대화하다 시외버스에 태워 보냈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음이 요동쳤다. 순이가 갈등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회사 과장이 흑심을 품고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바람에 마음을 잡으려고 찾아온 순이였다.
수철은 순이를 떠나보내면 끝일 거 같았다. 그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쫓아갔다. 한참을 달려서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순이는 버스에서 내렸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여관에 들어갔다. 수철은 내 거라고 도장을 찍어야 마음이 놓였다. 수철이 사랑을 나누려고 하자 순이가 완강히 거부했다. 실랑이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았는데 수철의 무기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요지부동이다. 귀대 시간이 임박해서일까, 그가 성병에 걸리고부터 그의 무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 순이는 수백 장의 편지만 남기고 그를 떠났다.
수철은 부모도 없고 돈이 없다며 친구들이 무시했다. 종로 음악다방에서 비디오자키 알바를 하다 보니 도도하고 콧대 높고 교양이 있는 이상형의 여자는 만날 수 없었다. 그건 꿈이었다. 제대로 된 반듯한 직장이나 부모도 없고 집도 없으니 누가 그를 좋아하겠는가, 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구로공단을 기웃거렸다.
키는 작은 편이지만 하체가 길어서 날씬해 보이고 양볼에 보조개가 들어가서 날라리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여자는 이상형이 아니라서 싫증이 났다.
그는 취직 자리를 구하러 구로공단을 헤매었으나 구미에 당기는 회사가 없었다. 며칠 째 다니는데 단발머리의 여자가 시야에 클로즈업되었는다 천사처럼 착한 인상이다. 수철이 단발머리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는 경계하지 않았다. 수철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구로공단의 그녀 회사 주변을 맴돌았다.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이 사귄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수철이 성남의 큰 회사에 취직되었다. 번듯한 직장이 있으니 그녀에게 새엄마 눈치 보지 말고 집에서 나와 같이 살자고 했다. 혜란이 좋다고 승낙했다. 성남시장에서 솥과 수저와 저 두 세트와 반찬 그릇 몇 개, 연탄집게와 찌개 냄비를 샀다. 육 개월 가까이 동거하다 보니 돈이 제법 모여졌다. 사글세로 내는 방세가 아까운 혜란은 직장을 다니며 모아둔 돈과 수철이 번 돈을 합해 전세방으로 돌렸다.
수철은 공격적이고 까다로운 성향이라 성남의 회사에서 검사반 검사원이었는데 그에게 어울리는 부서였다.
“백로야 까마귀 옆에 가지 마라!”는 속담처럼 백로랑 살다 보니 백로가 되어갔다. 어느 날 혜란이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귀가하지 않는다. 그는 무슨 사고라도 났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혜란이 집에 오자 수철은 성질을 내며 늦은 이유를 추궁하니,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사실은 내가 임신했는데 우린 아직 돈도 벌어야 하는데 몸이 약해서 어떻게 하나 생각이 많았어요. 당신을 닮은 아기를 꼭 낳고 싶어요. 생각을 많이 하느라 깜빡하고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해 이쪽 종점에서 반대쪽 종점까지 갔다 오느라 늦었어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혜란이 걱정거리가 있는지 울었다. 수철이 그녀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좀 전에 그가 늦은 이유를 추궁하자 빠른 답을 원했지만 대답이 늦어지자 수철은 수저를 내동댕이 쳤다. 수저가 부러지고 방바닥에 엎질러진 음식을 말없이 치우는 혜란은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부러진 수저와 똑같은 것을 사다 놓았다. 혜란은 천사표다. 지랄 맞은 성격의 수철은 천사인 그녀에게 목소리가 낮아지고 다정해졌다.
수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혜란이 아기를 가져 무척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착하기까지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