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도깨비놀음에 고수장단을 맞추며
찬수는 박 사장에게 붙잡혀 경기도 Y시 콘도 공사장에서
한 달째 미장일을 하고 있다.
10월인데 가을장마가 시작되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다.
일하다 일이 없으니 무료해진 인부들은 모텔방에 모여
화투치기에 열을 올렸다.
비 오는 날은 화투 치는 날! 화투판에 앉으면 희열을 느끼는
찬수는 판이 커지자 신이 났다.
그동안 많은 수업료를 내며 배운 공부이던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십만 원을 따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이십만 원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인부들을 얕본 게 큰 잘못이었다.
하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모텔방으로 올라와 방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나간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깟 돈 천만 원 때문에
두더지처럼 숨어 살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땅값이 비싸니 대출이 되지 않으면 논한 뙈기 떼어준다고
큰소리쳤는데 천만 원을 어떻게 갚지? 아니지, 내가 바보
인가, 노름빚을 갚게 미쳤어? 이렇게 숨어 지내면 되는 거지!’
그런데 공사장에 오기 전에 땄던 오천만 원이 어디로 갔지?
여기 올 때 분명히 카드에 사천구백만 원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천만 원 먼저 갚을 것을.’
찬수는 벽을 보며 두런두런 중얼거린다.
벌써 일주일째 비가 와서 일이 없고 인부들을 식음을
전패하고 화투치기에 여념이 없다.
전에 늘어지게 자고 오후 서너 시경 점저를 먹고 시작한
수학공부가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져 정신이 혼미해진 일부
인부들은 하나둘 공부방 한쪽에 널브러져 잠에 빠져있다.
화투치기가 직업인 양, 돈을 잃었거나 딴 몇몇 인부만 남아
점수가 나보겠다고 이마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밤 빗소리를 들으며 늘어지게 잔 탓인지 머리가
맑은지라 화투판에 일원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
홍단에 초단, 쓰리 고에 피가 열두 장이라 양쪽에 피 바가지를
씌우면. 홍단 3점 + 초단 3점+ 피 3점* 2를 곱해(더블) 18점.
피 바가지 2를 곱하면 36점이니. 1점에 오천 원이라 18만 원을 땄다.
그리고 오십만 원, 육십만 원이 들어왔다 나갔다 도깨비 널
뛰든 춤을 추고 있다. 도깨비 춤 장단에 맞춰 고수인 찬수가 말했다.
- 이거 원, 갈증이 나서. 1점에 십만 원은 해야지. 언제 빌딩을 사겠어?
신기하게도 화투를 시작할 땐 앞에 그득히 쌓였던 돈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오리무중이다.
찬수가 벌었던 돈의 행방을 찾아라! 하지만 그 자신도 그렇게
많은 돈이 흔적 없이 사라진 행방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루한 가을장마도 물러가고 11월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Y시 공사장에서 집까지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먼 나라에 온 것처럼 외롭고 허전하다.
'이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살았나, ' 괜스레 우울해지는 찬수다.
돈이란 놈은 가까이 가면 멀리 도망가고 멀리 떨어지면
쉬운 존재던가, 그때 박 사장에게 전화만 오지 않았어도
정애를 찾아갔을 터인데..
돈은 온데간데없고 빈 주머니를 덜렁거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란 말인가, 도깨비놀음에 고수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가 된 것이 돈이란 말인가, 그는 기운이 빠진다.
집에 가면 노름돈 빌려준 사람들이 그의 집 주변을
배회하며 기다리고 있을 건 자명한 일이다.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월급이 작아도 기사 일이나
다시 시작해 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되짚어 보며 생각해 보았다.
밖에 나와 있으니 모텔 방값과 아침과 저녁 밥값을 계산해
보았으나 넉넉하게 한 달 오백만 원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사천만 원은 어디로 간 걸까?
매일 밤 1점에 오천 원인 화투판에서 하룻밤에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이 나가고 들어왔으니, 고리로
낸 돈도 무시하지 못한다.
노름 돈은 도깨비 살림이니 딴 날도 있지만 잃은 날이
있으니 그런 방식으로 그에게 머물던 돈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