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생맥주란 것이 소주를 먹고 입가심으로 먹는 술인지라, 생맥주 가게를 하며 신경을 곧추세우는 수철이다.
그들 가게 근처에 파리 모기처럼 물 웅덩이에 모여 있는 생명들,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종이나 파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재건대, 넝마주이의 본거지가 소라집 근처에 있다. 그들은 부업으로 술집에서 영업을 방해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 그 가게에 들어가 깽판을 쳐서 돈 몇 푼 받아 챙기는 밑바닥 인생이었다.
잉여인간인가, 하층민인 그들은 보기에 험한 인상을 가졌으니 사람들이 시선을 외면했다. 그들을 지휘하는 재건대 왕초는 시커먼 얼굴에 앞니가 빠져 거부감을 일으켰다. 그들이 소라집에 들르면 점잖은 손님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수철은 건너편 색시 집에서 보낸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수철의 예상이 적중한 걸까? 피크타임에 폐지를 담는 커다란 바구니를 등에 둘러맨 재건대 왕초가 시커먼 몰골로 소라집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빠진 앞니를 내보이며
"주인장 생맥주 한 잔 주쇼!"
왕초는 통나무 탁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가게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젊잖은 손님들이 통나무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생맥주와 치킨을 먹고 있었다. 혐오스러운 그의 몰골을 본 손님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수철은 치킨을 튀기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가 잽싸게 문 앞으로 다가갔다. 거품이 가득 담긴 생맥주 한 잔을 들고 왕초에게 정중하게 내밀며
“어서 옵쇼! 주문하신 생맥주 여기 있습니다.”
왕초는 생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백 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놓고 나갔다. 1983년도 봄이었다.
유유히 사라지는 왕초 깜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철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예상대로 깜상은 소라집을 나가자마자 앞집 색싯집으로 들어가더니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수철은 각오에 찬 얼굴이다.
밤 11시 영업이 끝난 시간. 수철이
“여보! 내가 색싯집을 부술 터이니 당신은 비품 물어줄 돈 만들어 놓고 있어? 이건 쇼니까 놀라지 말고, 안 그러면 우리 여기서 버티지 못하고 장사 접어야 해?”
순미는 영업 방해로 남편이 경찰서에 잡혀가면 혼자 가게를 꾸려가야 하니 걱정이 앞섰다. 수철이 순미와 데이트할 때 서울의 경양식 집에서 슬쩍 집어온 나이프를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비장한 각오로 색시집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는 오케이 목장에 결투하러 가는 서부 사나이 같았다.
순미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사랑을 받고 자라 세상 물정을 몰랐다. 잽싸게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결투하던 사람들이 쳐들어올 거 같았다. 그녀는 뒷문으로 나가 건너편 색싯집 동태를 살폈다.
“우당탕 탕탕‥우르르‥쨍그랑. 꽈당‥.”
색싯집 안에서 들려왔다.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겁을 먹은 순미는 건물 뒤편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안에서 수철의 절규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나도 맘 잡고 먹고살려고 하는 사람이야, 영등포서 험한 인생 살다 마음 잡고 착실하게 살려고 하는데 이웃에서 도와주지를 않는군. 같이 먹고살자고? 왜, 툭하면 사람을 보내서 깽판을 치는 거야? 너 죽고 나도 죽을까? 아니면 같이 살래! 얼마야, 부서진 기물 값은 얼마야, 물어주면 되잖아?”
수철의 목소리가 컴컴한 벽을 뚫고 겨울밤 바람을 타고 메아리를 쳤다. 천지가 개벽한 걸까, 수철을 달래는 소리가 웅성웅성 나지막이 들렸다. 수철은 서부극에 주인공처럼 마시던 소주병을 유리창을 향해 힘껏 던지며
“아이 씨-팔! 못해 먹겠네. 나도 좀 먹고살겠다는데, 도와주진 못할망정 쪽박은 왜 깨는 거야? 나 오늘 여기서 인생 종 친다? 너도 종 치자, 어떻게 할래? 내가 더러워서 정말, 왜,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는 거야?”
‘쨍그랑 쨍’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밤하늘의 정적이 깨고 빛나던 별들도 겁을 먹은 건지 숨을 죽인다.
폭풍전야처럼 조용하다. 숨을 죽이는 정탐하는 순미의 가슴이 두근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