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새벽 5경 택시를 타고 여의도를 빠져나와 부천에 도착했다. 선영은 회신의 미소를 날렸다.
잘해보라는 신호였다. 순미는 몸을 흐느적거리며 수철에게 부축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수철이 펴준 이부자리에 벌렁 드러누우며 말했다. 순미는 술에 취한 척 앙큼을 떨었다.
"수철이 형아‥나 사랑해?‥ 양발 벗겨!"
수철은 귀엽게 봐주며 웃음을 짓더니 양말을 벗기며 술에 취해 발그레 익은 순미의 이마와 얼굴에 뽀뽀를 해주며 팔베개해 주었다. 그들은 운명에 순응하며 살았다. 수철과 순미는 영업을 끝나고 셔터를 내리고 택시를 타고 부천역 포장마차에 가서 국수도 먹고 병어회에 소주도 몇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들 부부는 부천 남부역 포장마차에 갔다. 순미는 수철이 따라주는 술을 먹어보니 써서 술 냄새를 맡지 않고 단숨에 마셨다. 소주가 두어 잔 들어가자 딸딸해진 순미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십여 분 걸어서 그들의 둥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순미가 혀 꼬부라진 소리에 어리광스러운 목소리로
"수철이 형아, 나 업어주라! 아이 빨리?"
수철은 허리운동을 하더니 순미를 업어주었다. 수철은 깡마른 편이다. 순미 보다 2~3킬로 더 나갔지만 거뜬하게 업어준다. 순미는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생각했다. 부모 형제들의 끈질긴 반대에도 끝까지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철이 한 달에 한두 번 안아줘도 괜찮았다.
수철이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간다고 버스에 타는 것을 배웅하고 온 순미가 건물 모퉁이를 꺾어져 가게로 들어갔다.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순미는 손님인 줄 알고 습관처럼
"어서 오세‥요?"
남자 손님은 머뭇거리다가 순미를 보고 웃는다. 순미는 물건을 팔러 온 영업 사원인가 바라본다.
"순미 씨! 아니세요?"
"누구신지‥?"
"저, 고등학교 2년 선배 진영인데,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 정말 그러네요! 웬일이세요, 저희 가게를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요, 순미 씨는 예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순미는 진영에게 통닭집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진영은 명옥을 좋아했다. 그는 독신을 주장하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선배가 아닌가, 그러던 그가 그녀를 찾았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 말 뜻을 알 수 없었다. 진영의 눈은 그윽했다. 진영은 순미의 엄마 가게에 들러 순미의 소식과 사는 위치를 알아냈는데 그런 것은 감추고 우연인 양, ‘애타게 찾던 미래의 주인공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 그녀는 결혼한 사람이 아닌가! 지금 찾았다고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진영의 눈빛은 슬픔에 겨운 눈빛이다.
진영은 꿈에 그리던 순미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준비한 말들이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순미 씨를 얼마나 찾았는데요, 정말 옛 모습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청순한 예전 모습 그대로야."
진영은 회고에 찬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으나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얼마나 앞이 캄캄했는데요? 힘들고 지쳤지만. 순미 씨를 생각하면서 참았어요. 제대 후에 제일 먼저 가게로 찾아갔는데, 순미 씨 모습이 보이지 않잖아요? 머뭇거리다 귤만 한 보따리 사 갔어요. 여러 번이나?
"선배 어머님도 잘 계시죠, 안녕하시지요?"
순미의 말에 진영은 서운한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그토록 찾았는데, 꼭꼭 숨어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운명의 장난인가? 수소문 끝에 찾아갔는데 기가 막혔어요. 내가 적극적이었다면 놓치지는 않았을 텐데. 운명이 미웠어요! 내가 바보였어. 근데 서운하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줄도 모르다니‥? 운명이 비켜 가다니 너무 억울해요! 이왕에 결혼했으니 잘 살아요."
"고마워요, 선배님도 잘 되시길 빌게요."
진영은 절규에 찬 얼굴이었다. 운명은 두 사람의 만남을 아련한 끈으로 이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