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먹튀 알지?

[ 단편소설 연재 ]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1996 여름이었다. 찬수는 동네 초상집에 문상을 갔다. 체면 차리느라 좋아하던 화투판에 끼지 못하고

뒷전에서 화투판 패 돌아가는 것을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화투 장인인 그가 뒷전에서 구경한다는 것은 산속에 가서 도를 닦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온몸이 근질거리고 오금이 저렸다.

"화투패가 좋지 않을 땐 비 풍 초 육구 팔이나 5 끝이나 10 끝을 버려야 하는 거야."

그가 앞에 앉은 사람에게 코치한다. 참다못한 그는 한몫 끼더니 화투장을 땅에 두드렸다.


화투 패는 5명이 의기투합하여 화투패를 돌린다. 낯선 사람이 한 명쯤 끼어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화투전문가이거나 타짜다. 그는 굴뚝을 지고 앉아서인지 초장에 끗발이 났다. 초단과 고도리로 8점. 5 끝 자리로 2점이 나서 10점. 피로 3점이 나서 13점이 되었다. 쓰리 고를 해서 더블 점수인 26점. 같은 패가 3장 들어와서 시작 전 3장을 흔든 덕분에 더블 점수인 52점이 되었다.


피가 없는 쪽은 피 바가지로 두 배인 104점이다. 1점에 오천 원(쓰리고 ×2곱 × 흔들어 2곱 ×피 바가지로 한쪽은 2곱} 52점으로 26만 원과 52만 원을 받았다.

찬수가 1점에 10만 원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연거푸 큰 점수가 나니 이천만 원이란 거금이 들어왔다.

휑하던 앞자락에 돈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타짜는 처음에는 잃는 척하더니 따고 봤다. 멤버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 같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힌 문상객이다. 오가는 현찰 속에 살벌한 전장이었다.



<상가 집이 생기면 줄초상이 난다>는 말을 강조한 그는 돈을 따자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려고 궁리 중이다.

광 두 장을 팔고 안주를 가져다주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슬그머니 양말과 뒷주머니에 돈과 수표를 감췄다. 작은 점수 몇만 원짜리는 잃어주는 척했다. 그는 오천만 원을 따고 나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주를 갖다주고 술을 따라주며 자리를 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가 앞자락을 움켜쥐며 호들갑 떨며 말한다.

- 아이고 오줌보 터지겠다. 이 판은 무광이니 쉬고 화장실에 다녀와야지!”



그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다 뒷마당 감자밭에 소변을 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재빨리 담을 넘어 외딴곳에 사는 호준의 집으로 도망쳤다. 아침 6시인지라 이른 시간이지만 급박했다. 현관문을 두드렸다. 호준이 하품하며 나왔다.

- 형님, 지난번 잃은 돈 오천 찾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 365일 코너에 집어넣고 얼른 잠수함 타라! 너 보면 돈 잃은 놈 눈이 튀어나온다? 먹 튀 알지?

그는 첫사랑 정애를 찾아갈 작정이었다.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 중 박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찬수는 박 사장에게 붙잡혀 경기도 Y시 콘도 공사장에서 한 달이 넘도록 미장일을 하고 있다.

9월인데 가을장마로 공사가 중단됐다. 인부들은 모텔방에 모여 화투치기에 열을 올렸다.

비 오는 날은 화투 치는 날! 찬수는 희열을 느꼈다. 판이 커지자 그는 신이 났다. 얼마나 많은 수업료를 내며 배운 공부인가? 십만 원을 따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십만 원이 휘리릭 날아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인부들을 얕본 게 실수였다. 패배를 인정하고 방으로 올라와 차가운 방에 드러누웠다.


서희 얼굴이 천장에 아른거린다. 지나간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깟 돈 천만 원 때문에 숨어 사니 한심했다. ‘논한 뙈기 떼어준다고 큰소리쳤는데 천만 원을 어떻게 갚지? 내가 바보인가, 노름빚을 갚게? 숨어 지내면 되는 거지! 그런데 사천구백만 원이 어디로 갔지? 그때 천만 원 먼저 갚을 것을..’ 그는 벽을 보며 두런두런 중얼거렸다. 벌써 일주일째 비가 내려서 일이 없다. 하나둘 공부방 한쪽에 널브러져 잠에 빠져있고 몇몇 인부만 점수가 나려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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