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함박 웃는다

[단편소설 연재]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성난 바람을 거센 파도가 와작와작 씹었다. 하늘이 우르릉 쾅쾅! 세찬 빗줄기를 몰고 왔다. 야전 등에 비친 남녀의 그림자가 텐트 사이로 가까이 길어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하룻밤 사이 가까워진 남녀가 잠에 취해 있다. 새벽녘 밀물에 몰려오는 파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바다. 해풍은 잠에 취한 조개들을 흔들어 깨웠다. 갈매기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백사장에 앉았다. 짭조름한 조개들의 살점을 먹으려고 공격을 개시했다. 조개들은 주름진 입을 꽉 다물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하늘에는 떠 있는 양털 구름이 밤새 비가 내린 사실을 모른 척 잡아뗀다. 찬수는 구름에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찬수가 화투를 좋아하는 건 순전히 부전자전이다. 아비로부터 내려오는 집안 내력이었다. 긴긴 겨울 해를 보내려면 따뜻한 마을회관에서 화투놀이를 즐긴다. 남자는 1점에 백 원짜리, 여자는 1점에 십 원짜리 고스톱이나 민화투를 쳤다. 찬수는 읍내 선술집 뒷방에서 화투장을 들여다보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도깨비놀음인지 청단이 나고 홍단이 나고 고도리가 나는 등. 앞자락에 그득히 돈다발을 끌어다 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수는 나지 않고 야금야금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입을 빌리자면 화투 칠 때의 기본. ‘이마에 열받으면 안 된다’는 원칙이 무너지고 이마에 열이 초특급으로 오르고 있었다.


다섯 명 중에 한두 명은 광을 팔고 두 사람이 상대를 견제하는 척하더니 슬금슬금 서로에게 밀어주고 있었다.

선수들은 양쪽이 뭘 들고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 광을 팔고 뒤로 물러난 사람이 찬수의 패를 슬쩍 훔쳐본다.

‘뭐 들었지?’ 눈치를 맞은편에 앉는 사람에게 신호를 보냈다. 반대로 앉아 있는 찬수는 그런 눈치도 모르고 얼큰해진 상태라 옆사람이 은근히 '나를 봐주는 것이구나!'라고 착각했다. 앞에 쌓여있던 돈이 바닥을 보이자 1점에 만 원으로 하자 제안했다. 어제처럼 많은 점수를 얻어 한몫을 챙기겠다는 심산인데….

처음 몇 판은 작은 돈이 올려지더니 시간이 흐르며 많은 판돈이 올려졌다.


뭉칫돈이 있으면 다 딸 것 같아 선술집 주인에게 돈을 꾸었다. 뭉칫돈을 올려놓자 두 판에 많던 돈이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그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근처에서 장사하는 선배 형 씨앗 가게로 달려가서 오백만 원을 빌려 왔다. 새벽녘, 한 판에 백만 원 따고 두 번 세 번째 판에 칠백, 이천만 원이란

거금을 따고 보니 가슴에 희열과 함께 즐거움과 두려움으로 경련이 왔다. 먼저 마담 돈을 갚고는 슬그머니 일어나며

- 아유! 오줌보가 터져 버릴 것 같아, 이번 판 쉬고 화장실 다녀와야지?


그는 앞자락에 쌓은 돈을 눈치채지 못하게 양말과 주머니에 짱박고 얼마 남지 않은 잔돈은 바닥에 그대로 둔 채. 일행들의 눈치를 보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살면서 일어났다.

일행 중 한 사내가 얼굴도 보지 않고 말했다.

"형씨, 빨리 오슈! 저번처럼 도망가는 것은 아니겠지?”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터질 것 같던 방광이 시원해졌다.

담배를 물고 뒷걸음을 치며 걸음아 나 살려라! 뒷문으로 줄행랑을 쳤으나 누군가 금방 쫓아올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연신 뒤를 보았다.



- 우리 수원 시장이야, 2시간이면 일 마쳐, 여기 일식집으로 와?

- 지난번 형님이랑 갔던 곳으로요?


호준부부와 일식집에 마주 보고 앉은 찬수,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가 말했다.

- 형님! 나, 지난번 잃은 돈 다 찾았어요? 형님, 형수님!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오늘은 찬수가 부자입니다.

서희의 생일에 기회가 없어 좋은 음식을 대접해주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참에 소원을 풀어서 기분이 좋아 생글생글 웃고 있다. 맛있게 먹는 서희를 보니 행복한 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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