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 <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 유정 이숙한
내 나이 육십 대 후반인데 내 몸도 케어하기도 힘든 수술한 환자인데 다른 사람을 챙겨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친구에게 쓴소리 들었다. "넌 나이만 육십 대 후반이지, 아직 어린아이야."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남을 배려해 주는 것이 오랜 버릇이고 성격이였다.
친구의 말대로 난 평생을 어린아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산 걸까. 난생처음 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릴 적 동화를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내게 "너처럼 순수한 아이가 세상에 어디 있니?" 라고 하며 나의 첫 번째 결혼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을 감추고 걱정했다.
내 이름이 '맑은 숙淑 한수 漢' 맑은 물이다. 맑은 물처럼 살란 뜻으로 셋째 고모가 지어주었다. 이름값을 하느라 맑게 살려고 노력한 걸까, 그런 이유도 다분히 있으며 숙명으로 알고 산 건지 모른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을 위해 뭐라도 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가 내게
"淑漢아,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해, 너를 생각하고 위해줘!"라고 했다. '난 진정으로 날 위해 살았나?' 내면의 내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결혼해서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았다. 남들도 다들 그렇겠지만..
자식들이 모두 짝을 찾고 독립했으니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사는 것이 버릇이 되다 보니 나를 위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지키기 힘든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난 "NO"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래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에 큰 오해가 있었다. * 공은 그런 내 성격을 아직 모른다. 내 성격은 "NO"란 말을 하지 못하고 나를 배려하지 않고 OK 라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20대 때 남동생과 사는 친구가 있었다. 겨울에도 연탄불 온기가 없는 냉방에서 담요를 여러 겹 깔고 살아서 딱했다. 그 친구는 냉방에 살지라도 외상 쿠폰으로 예쁜 옷을 맞춰 입었다. 그건 친구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그 친구의 사정이 딱해 학원비 낼 돈을 빌려줘서 학원 등록을 하지 못해 불편을 겪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친구는 다른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니 "淑漢이에게 가 봐 그 애는 항상 돈 있으니 빌려달라고 해?"
또 다른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불편을 겪으라는 건가, 물론 친하지 않으니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난 부모님과 조부모님 있으니 부자인 줄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즈음(1975년대) 아버지가 양돈 사업에 실패하여 월세로 가게를 얻어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외상이나 할부로 물건을 사지 말라고 했다. 외상으로 당겨쓰면 다음에도 계속 돈이 모자라서 당겨 쓸 수밖에 없으니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는 논리였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깊이 새겼다. 사업할 때는 외상매출을 하고 외상매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살 때는 3살 아래인 동생이 눈이 많이 내려 추워서 학교에 갈 수 없다고 울었다. 내 키보다 3센티쯤 작은 동생을 업고 학교에 갔다. 언니니까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커서는 내 계돈을 붓고 남은 돈을 두 동생들 학비에 일부 보태주었다. 언니니까 동생을 챙겨줘야 했다. 그땐 시대적인 분위기였다.
할머니가 나에게 "너 힘들게 번 돈 너를 위해 써라, 다른 누구 도와줄 생각하지 말고." 그땐 할머니 말씀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내 성격을 파악했던 게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니까. 결혼해 살다 보니 전 남편 큰누나가 내게 "큰 집은 잘 먹고 여행도 잘 다니고 쓰고 싶은데 다 쓰고 사니, 도와주려고 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먹고, 가고 싶은데 가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라."는 말을 했다.
이제부터 하기 싫은 것이나 할 수 없는 것은 "NO"라고 하며 살려고 한다. 내 성격은 남을 먼저 배려하고 그의 고충을 생각해 주는 것이 버릇처럼 내 머리에 메모리 되어 있다. 이제는 그 시대를 역행하려고 한다. 자의든 타의든. 이제는 할 수 없는 것, 버거운 것은 할 수 없다고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며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