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00일이 되어서야 돌아온 나
오랜만이다. 글쓰기. 아이가 오늘 200일이다. 그래서 200일 기념으로 글을 쓴다. 나의 삶은 엄마가 되기 전과 후로 나뉘는데 다시 선택의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 엄마가 될 것이다. 그만큼 부모가 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며 희생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단지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강한 멘탈을 가져야만 했다. 그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 한다.
우리 아들은 2.96kg으로 다소 작게 태어난 편이다. 내가 약을 복용하던 중이라 모유수유가 어려웠는데 분유마저 잘 게워서 걱정이 많았다. 무엇보다 출산 후 나의 건강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아 매일이 힘들었다. 임신 중에는 출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육아는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망가진 것 같았다. 출산 전의 체형과 건강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약해질 순 없었다. 나는 이제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고 한 남자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야 했다. 먼저 살이 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매 끼니 고기를 챙겨 먹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유산소 운동을 했다. 웨이트 운동만 해와서 심폐지구력이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멘탈을 키우는데 러닝이 도움이라는 영상을 보고 나서 무작정 뛰기로 했다. 빨리 걷거나 뛰는 것만으로 뇌를 자극했다. 심박수를 최대치로 올렸다가 돌아오는 경험은 심장을 강하게 했다. 러닝을 하면 숨이 차고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다. 육아든 뭐든 잠시 잊고 오롯이 뛰는 것만 생각했다.
나는 많은 실수를 했다. 아기가 아플 때마다 나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에 감기에 걸렸는데 온전히 내 잘못 같았다. 차에서 아기를 안고 있다가 전화를 받느라 의자 아래로 떨어뜨렸다. 범보의자에 앉혔다가 제대로 벨트를 채우지 않아 떨어 뜨렸다. 5개월 차인데 공동육아센터에 데려갔다가 세균성 수포가 편도에 오르게 했다. 계란 흰자를 테스트하지 않고 많이 먹였다가 온몸에 징그러울 정도로 두드러기가 올라오게 했다. 아기띠를 헐렁하게 채웠다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에 바닥에 낙상하게 했다. 이 모든 게 그냥 일어난 일인데도 나는 내 탓을 했다. 자책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무도 내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데도 나는 타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자주 말했다. 육아에 있어서 후회나 질책, 비난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수를 발판 삼아 그저 배웠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후회하는데 익숙한 뇌를 가지고 있다. 실수를 하면 혼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냥 괜찮다고 해주는 법이 없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실패란 다시 하라는 뜻이야. 누구나 실수를 해. 우리는 그렇게 배우는 거야,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지금까지 왔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자란 나도 썩 나쁘진 않다는 것을. 나는 나 자신이 늘 어딘가 하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지금도 그렇다. 아들이 정상으로 태어난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이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나일뿐인데.
육아를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아들에게, 또 타인에게 그랬다. 늘 내가 한 실수와 잘못을 복귀했다. 다음 실수를 하지 말자고 그렇게 늘 다짐했지만 나는 새로운 실수를 했다. 그렇게 나는 육아에 대해 배워갔다.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몰랐을 많은 부분을 깨달았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숙한다. 실수를 하지만 계속 도전해야 배울 수 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아무 도전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고맙다, 다행이다 등의 말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실수는 하는 나도 나고 멋지게 해낸 나도 나다. 이제는 어떤 충격적인 일이 생겨도 무너지지 않고 멘탈을 부여잡는다. 지금 무너지지 말자고. 곧 지나간다고. 힘든 신생아 시기도 금방 지나갔고 아기가 감기에 걸려 일주일 동안 아파도 곧 회복했으니까. 앞으로 올 어떤 일에도 주저하지 말고 다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자신의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행동이나 말에 상처받거나 실망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상황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 비난을 그냥 듣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요구를 찾아야 한다. 상대는 나를 비난하기 위해 말하는 게 아닌 강력한 요구를 다른 표현으로 했을 뿐이다. 당연히 말실수에 기분이 나쁘고 상처받을 수 있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말고 상대의 욕구, 요구가 무엇인지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아는 것은 힘든 날이 왔을 때 큰 도움이 된다. 내가 무기력에 빠졌을 때 어떻게 빠져나오면 좋을지 메뉴얼을 가지고 있으면 좋다. 나는 우울할 때 일단 움직인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아기띠를 메고 나와 무작정 걷는다. 뇌를 회복하면 감정도 회복된다. 그리고 잠을 잔다. 잠을 자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이 참 많다. 그러니까 운동과 수면을 그렇게도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한다.
만약 지금 당신이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다면 먼저는 성장의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움직이고 먹고 잠을 깊이 자야 한다. 그게 어렵지만 일단 해야 살 수 있다. 얼마 전 백세희 작가가 다섯 명의 아이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녀의 삶을 알 수 없지만 깊은 우울이 그녀를 힘들 게 한 것은 확실하다. 우울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다룰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우울은 언제든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우리는 고립감, 외로움, 우울 등을 자주 겪을 것이다. 그러나 빠져나올 것인지, 매몰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와 재밌는 예능을 보거나 기분을 좋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맞지 않는 사람과 긴 다툼을 하기보다는 서로를 자유롭게 해 주고 날아갔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몰입하는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타인의 시선에 매여 자신을 숨기지 말고 실컷 표현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육아를 하면서 멘탈이 부서지는 순간이 많겠지만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고 그럴 만했다고 말할 것이다.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으려 한다. 나를 가장 소중히 아끼고 사랑해주려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원하는지 알기 위해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