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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트가 시작이었다.

브랜드 있는 발매트 하나가 열개의 다이소 제품보다 낫다.

by 안전기지민

우연히 화장실에 갔다가 문 앞에 놓인 발매트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 관심 없었는데 자세히 택을 보니까 위글위글 브랜드였다. 나는 평소 그 브랜드의 제품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가격이 좀 비싸서 그렇지 색감이나 모양을 잘 뽑아낸다고 생각했다. 근데 알고 보니 우리 집 발매트라니. 1년 이상 가지고 있었는데 몰랐다. 우리 집에는 다이소 같이 저가형 품목 매장에서 파는 발매트가 4개 이상 있다. 그중에 이 하나만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나머지는 그저 밟기에 적당했다. 발매트만 보면 잠시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여러 번 물건을 구매하기보다 좀 불편해도 비싼 가격의 물건 하나를 사는 건 어떨까. 옷을 여러 벌 사서 돌려 입는 것도 좋지만 셔츠, 바지, 아우터 항목마다 비싸고 좋은 의복을 갖추는 건 어떨까.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 신을 신을 때마다, 그 모자를 쓸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이다. 비싼 것 여러 개가 아니라 품목마다 딱 하나씩.

그러기 위해 평소에 소비를 줄여야 한다. 진짜 내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형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무엇을 싫어할까, 무엇을 잘하고 못할까. 이것만 알고 있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나는 자녀에게 공교육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을 먼저 가르치려 한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그 둘 다 포용할 수 있다면 어떤 실수 앞에서도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엔 그런 날이었다. 매우 되는 게 없는 날. 평소처럼 에프를 돌렸는데 종이 포일에 불이 붙었고 음식도 탔다. 낮은 온도였는데 종이 포일을 여러 번 재사용했던 게 문제였다. 코팅이 벗겨지면서 불이 붙은 것이다. 나는 정신 승리를 해야만 했다. 이만한 게 어디야. 불이 나지 않는 게 어디야. 냄새가 좀 나지만 환기시키면 되지. 이 기회에 여기저기 닦을 수 있어서 좋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살면서 내가 똥멍청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비난하면 속만 쓰리고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내 삶에 실수가 있을 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나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자.

발매트 하나로 내 기분이 나아졌듯이 상한 기분을 빠르게 복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개 생각해 놓자. 나 같은 경우에는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기분이 빨리 전환된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생긴다. 에너지 드링크 한 잔이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풀충전된다.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은 큰돈을 쓰지 않아도 많다. 평소 돈을 좀 아껴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멀리 여행을 계획하면 구상하는 것부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또 아주 작은 목표를 여러 번 성취하는 것도 좋다. 나는 하루에 도서관 다녀오기, 마트 다녀오기 등을 목표로 둔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 내가 게으름을 이기고 해냈네,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또 베푸는 행동도 행복 호르몬을 증가시킨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같은 아파트 식구들에게 나눠주거나 교회 언니들을 만나서 전달한다.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받으면 행복하다. 타인에게 베풀 듯이 자신에게도 대접하는 시간이 있으면 더 좋다. 잠시 영화를 본다든지, 작은 케이크 같은 간식을 먹는다는지, 평소 하지 못하던 행동으로 자신을 대접하며 극진이 모시면 좋겠다.


우리는, 나 자신은 우주에 단 하나뿐인 존재다. 얼마나 신기하고 경이로운지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이 모두가 다르게 생겼다. 다르다고 해서 비난할 게 아니라 감탄해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 나는 긴 시간 우울증을 앓았다. 회사에 다니는 내내 번아웃을 겪었다. 늘 예민했고 짜증이 가득했다.

나는 도서관으로 도망가기도 한다

짜증이란, 지쳐있기나 예민해서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과잉 반응을 하는 것이다. 외부 자극을 무서워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짜증을 냈다가도 상대에게 미안해져서 죄의식이 생긴다. 짜증은 몸이 내게 '너 여기까지야.'라고 알려주는 신호다. 짜증이 난다면 내 한계가 앞에 있으니 잠시 멈춰 환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말이 거슬리거나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타인이나 환경을 비난하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며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자. 안 그래도 힘든 세상에서 서로에게 배려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이제 긴 길을 쓰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는 육아 전선에 있다. 아이 하나를 정성스럽게 키우기 위해서 긴 글을 쓰기보다 발매트 같은 글 하나를 들고 오려고 한다. 당신이 지금처럼 기다려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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