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전해달래. 엄마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꼭 할 말이 있다고. 이 글은 나의 비밀이 담겨 있어서 아무도 알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만약 만약에 이걸 읽은 사람이 나와 비슷하다면 큰 용기를 얻고 일어섰으면 좋겠다.
나는 서른 중반이고 8개월 된 아이가 있다. 나에게는 60대 초반인 엄마가 있고 그녀는 부산에 살고 나는 충남에 산다. 엄마에게 할 말을 하기 전, 엄마의 통장으로 30만 원을 보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큰돈을 보내었다며 고마워했다. 처음이라니, 그깟 30만 원이 뭐 대수라고. 나는 언니보다 엄마에게 용돈을 적게 보내는 둘째 딸이다.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엄마. 나 21살 때 공황장애가 생긴 뒤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어. 벌써 14년째야.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아직 끊지 못했어. 근데 나 증상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 갑자기 강박 증세가 나타났는데 엄마한테 안 들키려고 했어. 근데 그게 청소년이 되니까 불안증으로 이어졌고 스무 살이 넘어서는 공황장애가 되었어. 지금까지 정신과 진료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릴 적 애착관계에서 온 문제라고 하네. 누구도 탓하는 거 아니야. 엄마한테 그냥 알려주는 거야. 엄마와 아빠가 오랜 기간 언니와 내 앞에서 부부싸움을 오래 해서 불안이 시작되었다고 해. 부모가 일관된 양육 태도를 보이지 못해서 내가 불안한 사람으로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OO아. 네가 그런 줄 정말 몰랐어. 미안해. 네 아빠가 도와주지 않는 육아가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너무 가난했었어. 나 지금 너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잘해줄 자신 있어. 그때에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이제 그만 엄마를 용서해 줘."
속에 있는 30년 된 응어리가 다 씻기는 기분. 엄마에게 어린 날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OO아. 많이 힘들었겠다. 네가 사는 날 동안 엄마가 늘 네 뒤에 있을게. 항상 네 편이 될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 너는 엄마에게 늘 긍정적이고 밝고 명랑하고 씩씩한 아이였어. 앞으로도 그런 에너지로 살았으면 해. 어딜 가든 당당하게 살아도 돼. 내 삶을 우리 딸들이 닮지 않아서 다행이야. 엄마는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았어. 내가 해준 게 없는데 딸 둘 다 잘 자라서 결혼도 잘해서 정말 고마워. 네 아빠가 죽기 전에 엄마가 부모를 꼭 용서해 주라고 말했었어. 아빠가 '응'이라고 대답했었어. 네 아빠도 할아버지께 많이 맞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었대. 결혼하고 두 달 뒤에 네 아빠가 엄청 크게 화를 내면서 전기밥솥을 발로 찼어. 그 이후로 네 아빠가 화를 낼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았어. 너와 네 언니가 앞으로도 남편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결혼 생활하기를 바라."
나는 엄마에게 상처받은 것들을 더 얘기할 수 없었다. 내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들을 말하고 해소하고 싶었지만 더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에게 집을 나가지 않고 끝까지 날 키워줘서, 지금까지 엄마가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고마워. 내 고통이 싹 씻기는 기분이야. 나 이제 정말 당당하게 살 거야. 과거는 다 잊고 엄마에게 더는 말하지도 않을 거야. 긍정적이고 밝게 살 거야. 지금까지 나 키워준 거 정말 고마워. 내 아들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잘 키울게. 그리고 남은 평생, 엄마한테 잘할게. 우리 친구처럼 잘 지내자. 그리고 엄마, 나 초등학생 때 분식집에서 외상 하면서 밥 사 먹으라고 한 거, 많이 먹었다고 한 번도 꾸지람 준 적 없었던 거, 고마워."
엄마는 말했다. "내가 밥을 해주지도 못하는데 그거라도 했어야지. 당연한 거야."
엄마는 그랬다. 자신의 잘못은 사과하고 잘한 점은 당연히 여기는 사람. 엄마는 그렇게 줏대 없이 내게 관대했다. 엄마가 참 많이 약해졌다. 나는 엄마와의 대화로 30년 동안 억압되어 있던 과거에서 해방되었다. 어디든 날아갈 준비가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가난한 부부에게서 태어났다. 그들은 맞벌이를 했고 나는 집에 홀로 남겨진 적이 많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집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빙 둘러서 갔다. 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없었다. 쓸쓸한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먹으라고 싸 놓은 김밥 같은 음식이 늘 상에 있었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 작은 기억의 파편들이 쌓여 불안정 애착 관계를 형성했다. 어른이 된 나는 누구와도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양가적이고 회피적인 애착 관계를 맺었다. 어떤 관계든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늘 노력했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으면 불안했고 의심했고 집착했다. 늘 사랑과 애정을 확인하길 바랐고 스킨십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누구든 지쳤다. 나도 지치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남편은 다행히 안정적인 사람이라서 내게 큰 나무가 되어주었다. 절대 흔들리지 않으며 내 불안을 잘 알고 잠재울 수 있다. 내가 화를 내면 불안이 원인인 것을 알고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준다.
어린 시절에 나쁜 기억이 많다면 뇌에서 해마라는 부분이 기억을 저장한 것이다.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불안한 상황이 나타나면 다음에 또 불안하지 않으려고 기억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좋은 기억은 그냥 스치지만 아픈 기억은 오래 기억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좋은 인연을 참 많이도 만났다. 단지 내가 강하게 기억하지 못할 뿐. 그 인연들이 지금의 내가 있게 했다. 사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끔 했다.
나처럼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과거가 더 이상 현재를 건들지 못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과거는 내게 아픔을 주었지만 그저 흔적일 뿐, 앞으로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과거에 아픔을 겪었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자녀에게 같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고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불안 때문에 더 많이 움직이고 성취할 수 있다. 불안이 없다면 우리는 행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냥 누워서 영상만 보면 되니까. 하지만 불안하기에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한다. 내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이 아프기 때문에 자녀에게, 남편에게 큰 사랑을 줄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추억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도 쏘다닌다.
지금껏 만난 소중한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다. 관계에서 실패를 여러 번 경험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스치는 모든 인연에게 다정할 자신이 있다. 나도 엄마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잘해줄 자신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상처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때의 내가 너무 불안했고 미련했다고. 안정적인 사랑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부족했던 내게 큰 사랑을 줘서 많이 고마웠다고.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다고.
우리는 사는 날 동안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이 된다. 생애 초기 경험이 평생을 좌우지한다는 말에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부모는 누구나 처음이며 완벽하게 자식을 잘 기르는 사람은 없다. 부모뿐만 아니라 사는 날 동안 많은 경험들이 우릴 아프게 할 수 있고 불행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상황은 일어날 수 있지만 판단과 행동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의연해지자.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나는 사랑을 믿는다. 내가 살아온 이유, 앞으로 살아갈 이유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다. 남은 평생은 많이 웃으려고 한다. 날 아프게 한 엄마와 이미 가버린 아빠를 온전히 용서하고 감사만 남기기로 한다. 누굴 만나든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할 것이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실패한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다독일 것이다. 불안이 늘 있겠지만 없애기보다 다스리며 살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 앞에 살짝 웃기도 하며 타인의 실수에 괜찮다며 관대해질 것이다. 인생은 좋은 날과 덜 좋은 날의 연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