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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Nov 16. 2021

꼬까신 비가(정신대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꼬까신 비가



꽃그늘 아래 꼬까신 벗어 놓고

나들이 간 줄만 알았던

소녀가 돌아 왔네

피감탕발로 돌아와 꼬까신 앞에 섰네


사그랑주머니로 팔십 년

가슴에 고이는 피고름 퍼내며

그 한마디 기다렸는데


밉쌀 한 됫박 내밀고 입빔 하려네

남의 딸 짓밟은 발로 집에 돌아가

제 딸의 잠든 이마 쓸어주었으려나

머리 빗겨 흰 교복 입혔으려나


끝내 못 듣고 가네

소금쟁이 발자국 찍으며

꼬까신 손에 들고 맨발로 싸목싸목

신의 ‘한 말씀’ 들으러 가려네

그제야 내 영혼 나으리이니.



피감탕발 - 피 + 감탕발(진흙투성이 발)

사그랑 주머니 - 다 삭은 주머니라는 뜻으로, 겉모양만 남고 속은 다 삭은 물건을 이르는 말

밉쌀 - 참외 서리, 닭서리 따위의 대가로 그 부모가 내놓는 쌀

입빔 - 입막음이나 입씻이로 주는 돈이나 물건

싸목싸목 -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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