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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Jan 19. 2022

8. 주술의 붓 - 무덤에서 돌아 온 헌원

   (기원전 13기경)

헌원의 무덤 한 귀퉁이 깨어진 틈으로 빗물이 새어 들었다. 빗물을 따라 검푸른 새 한 마리가 드나들더니 돌무덤 위에 앉아 이끼를 쪼았다.

“누가 나의 잠을 깨우는가?”

헌원의 돌무덤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검푸른 새가 푸득 날아오르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는 현녀(玄女)라고 하오. 신시(神市)의 복숭아밭 도감관 왕모의 시녀였지요. 동방삭이라는 일개 말단 선인 놈이 삼천년에 한 번 열리는 황금천도를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도감관 왕모가 서쪽 땅에 유배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서왕모(西王母)라 불리게 되었지요. 반인반수의 몸에 갇혀 유배생활 하던 서왕모는 어찌나 사나워졌던지 비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요. 어느 날 서왕모의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터져 쫓겨나고 말았지요. 갈 곳 없이 떠돌다가 치우천자에 맞선 대영웅이 잠들어 있다하여 들어 와 본 것이오.”

“대영웅이라, 듣기 좋구나. 이왕에 들어왔으니 바깥의 이야기나 들려주게나.” 

“듣지 않음만 못 할 텐데요.”

“이 꼴로 지하에 누워있는 것만 못 할까?”

헌원의 분기(憤氣) 없는 목소리에 현녀가 한 숨을 내쉬었다. 주군이 될 만한 감을 잘 골라 왔는지 조금은 의심스러웠지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하나라의 걸왕이 포악하여 실정하자 조선 13대 흘달단군이 (단기 567년, 기원전 1,767년) 장수 치운출을 보내 을 도와 하나라를 정벌하였습니다. 탕이 상나라(은왕조)를 열고 조선에 대대로 조공을 바쳤습니다. 은왕조 12대 왕 하단갑이 조공을 거부하였다가 조선이 박의 북쪽을 치니 사죄한 적이 있었지요. 은왕조 무정이 전쟁을 일으켜 귀방 부족을 치고 삭도 영지 등의 부족을 침공하다가 조선군에게 저지당했답니다. (단기 1,043. 기원전 1,291 <<환단고기>> 참조)”

“배달국을 이은 조선이라........ 화하족의 명운이 단군의 간섭에 좌지우지 되다니 통탄할 일이로다.”

헌원이 탄식을 뱉어냈다.

“그런데 지금 조선이 조금 어수선 하더이다. 은나라의 침입을 막은 조선의 개사원 욕살 고등과 해성 욕살 서우여 사이의 권력투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이 죽은 후, 소태단군이 서우여에게 보위를 넘기려 하자, 고등의 손자 색불루가 군사를 일으켰다합니다."

현녀의 설명에 헌원이 반색을 하였다.

“지금 단군의 자리가 비었고 서우여와 색불루의 권력투쟁으로 혼란한 시기라 하였나? 이런 좋은 시기에 백골로 지하에 누워있다니. 현녀라고 했나? 나를 지상으로 내보내줄 수 있느냐? 다시 왕이 되어야겠다. 그러면 너의 공을 잊지 않겠다.”

“그깟 지상의 왕이 되어 무엇 하겠소? 하늘나라의 천제가 되어야지요. 그때가 되면 나에게 천신의 지위 하나쯤 내려주시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천제라........ 방법이 있는가?”

헌원은 흥분하여 현녀에게 물었다.

“왕의 인장(印章)이 필요하오.”

“감히 나의 인장을 내어달라는 것이냐?”

화를 내려던 헌원은 곧 화기를 내려놓았다. 백골의 몸으로는 쓸 수도 없는 돌조각일 뿐이었다. 

현녀는 몸을 새의 모습으로 바꾸어 헌원의 인장을 가지고 무덤 밖으로 나갔다. 며칠 후 돌아 온 현녀의 입에는 검은 색 꽃 한 송이가 물려 있었다. 현녀가 꽃을 헌원의 백골 위에 놓았다.

“신시의 서천에는 희귀한 꽃이 자라는 꽃밭이 있지요. 천제가 삼신에게 씨앗 다섯 가지를 주었는데, 삼신은 새로 점지한 아이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다섯 가지 씨앗을 뿌린답니다. 파란색 꽃이 피면 용감한 아이가 태어나고, 흰색 꽃이 피면 슬기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붉은색 꽃이 피면 복이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검은색 꽃이 피면 수명이 긴 아이가 태어나고, 노란색 꽃이 피면 예쁜 아이가 태어난다 합니다. 서천꽃밭에는 이런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지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신화>>서정오. <탄생신 삼신할멈>, <서천꽃밭 꽃감관>편 참조)”

현녀가 설명하는 동안 헌원의 삭아 부러진 백골이 되살아 붙고 있었다.

“오오 이런, 뼈가 되살아났다.”

헌원의 백골이 딸각거리며 춤을 추었다.

“서천 꽃밭의 뼈살이꽃이 정말 효험이 있군요. 부엉이 녀석이 심부름은 제대로 해냈군요. 이제 살살이꽃을 가져 오면 되겠소. 아직은 무리가 있으니 움직이지 마시오.”

하고 현녀가 무덤 밖으로 나갔다. 며칠 후 현녀는 노란색 꽃을 들고 들어 왔다. 헌원의 뼈에 살이 되살아 붙었다. 현녀가 헌원의 팔을 들어 올려 주었다. 살이 오른 제 팔을 보고 헌원은 흥분했다.

“으흐흐, 실로 오래간 만에 나의 손을 다시 보는구나.”

“그대를 위해 준비한 것이오.”

현녀가 가리킨 곳에 누런색 장포가 걸려있었다. 헌원은 빛나는 황금색 장포를 보자 흥분을 가눌 수가 없었다.

“치우천자가 입던 황금색 장포를 흉내 내어 보았지요. 마음에 드시오?”

“마음에 들다마다. 진정 저것이 나의 옷이란 말이냐?”

헌원이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 몇 단계가 남았다오. 피살이꽃, 숨살이꽃, 혼살이꽃을 기다려야 하오.”

“기다리기 지겹구나, 나머지 꽃을 한꺼번에 가져올 수는 없는가?”

헌원의 채근에 현녀는 한 숨을 내쉬며 무덤을 빠져 나갔다. 며칠 후에 무덤 안으로 들어 온 현녀는 표정이 어두웠다.

“부엉이 녀석이 꽃을 잘 못 가져 왔어요. 붉은색  피살이꽃을 가져 올 차례인데 파란색 숨살이꽃을 먼저 가져 왔소. 며칠 기다려야 하겠소.”

“무슨 소리야, 그깟 순서가 중요할까? 먼저 숨을 살리게.”

헌원이 안달을 하여 채근했다. 현녀는 눈을 감고 한 참 있다가 체념 한 듯 파란색 꽃을 헌원의 가슴 위에 놓아주었다. 숨이 돌아오자 헌원은 벌떡 일어나 제 손과 다리를 만져보았다. 피가 돌지 않아 온기는 없었지만, 움직일 수 있는 뼈와 살이었다. 헌원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황금색 장포를 입었다.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다는 것에 불안해하다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찌 다음 꽃이 도착 하지 않는 겐가?”

몇 번이나 빈손으로 돌아오는 현녀를 향해 화를 쏘았다.

“아무래도 부엉이 녀석에게 탈이 난 듯합니다. 서천꽃밭을 지키는 사라도령이 초짜라 꽃을 훔쳐내기 쉬웠는데, 경비를 강화 한 모양입니다.”

현녀의 걱정스러운 대답에도 헌원은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되었다. 피가 없으면 어떻고 혼이 없으면 어떠하랴. 이 정도 몸으로도 천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나가자.”


헌원의 채근에 못 이겨 현녀는 길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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