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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Aug 18. 2021

군웅신 왕장군의 허울-백제멸망사

비형랑과 길달의 정체


     

관련설화 - 군웅신 왕장군

 동해용왕과 서해용왕은 매일 싸웠다.

동해용왕은 해동국에 왕장군이라는 거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을 보내어 왕장군을 데려오라 하였다.

동해용왕의 아들은 왕장군에게 누이를 아내로 내주겠다고 약속하고 왕장군을 데려왔다.

동해용왕은 왕장군에게 서해용왕의 귀밑에 붙은 금빛 비늘을 화살로 맞히라고 했다.

며칠 뒤 동해용왕이 서해용왕에게 가서 싸움을 걸었고, 왕장군은 서해용왕의 금빛 비늘을 활로 맞히었다. 서해용왕은 크게 울부짖으며 쓰러져 죽어버렸다.

동해용왕은 기뻐하며 왕장군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 이 설화를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동해용왕과 서해용왕은 누구이며 왜 싸울까? 해동국의 왕장군은 누구일까?

백제 멸망의 과정에서 호국신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포착하여 상상하여 보았다.

하지만 막돼먹은 상상은 아니다.

<<수이전>><<삼국유사>><<삼국사기>>의 문헌기록과 구전설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이야기이다.

     

     

도화택    


월성의 달밤은 사람의 정한을 붙들어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홍수처럼 범람한 달빛이 남실남실 흘러드는 월성의 깊은 침전에는 잠 못 드는 금륜(진지왕)이 홀로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궁궐에 왕의 허한 심사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

금륜의 어머니 숙명궁주는 지소태후의 명에 의해 오라비인 진흥왕의 후비가 된지라 부부의 정이 없었다. 왕실의 실권자인 지소태후는 자신의 딸 숙명궁주의 아들 금륜을 태자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숙명궁주가 젊은 화랑과 사통하여 달아나는 일이 생겨 금륜이 진흥왕의 친자인지 확신하지 못 하게 되었다. 이에 사도부인의 아들 동륜을 태자로 책봉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얻어걸린 왕위였지만 허울일 뿐, 실권은 동륜의 생모인 사도태후와 미실이 틀어쥐고 있었다.

금륜은 침전을 나와 달빛을 밟으며 허적허적 뜰을 걸었다. 농익은 보름달은 과즙 같은 달빛을 철철 쏟아내고, 달빛에 반짝이는 복사꽃 한잎 두잎 흩날리고 있었다.

“궁에는 복숭아나무가 없거늘 어디서 날아 온 복사꽃이던가?”

금륜은 꽃잎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꿈길처럼 걸어갔다. 나비를 쫓는 아이처럼 꽃잎이 허공에 그어주는 꽃길을 따라가다 달빛 언덕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금성에 저토록 눈부신 여인이 있었던가?”

금륜은 달빛 아래 서 있는 여인의 모습에 심장이 찔리고 말았다. 인기척을 느낀 여인이 고개를 살짝 돌려 살피더니 걸음을 옮기었다. 여인은 사량부의 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금륜은 저택의 담장을 따라 걷다가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 있는 여인을 발견하였다. 수백 개의 등을 걸어 놓은 듯 달빛을 받은 복사꽃 아래는 대낮처럼 환했다. 여인은 달빛 같은 옷을 입고 꽃눈을 맞고 있었다. 금륜이 취한 듯 담장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금륜의 몸은 담장 밖에 있었다. 다시 담장에 올라 정확히 여인 쪽으로 뛰어내렸지만, 눈앞에 담장이 그대로 서 있었다.

달이 지고 새벽 어스름에 부은 발을 끌며 거리를 헤매는 금륜을 발견한 환수들이 금륜을 업어다 침전에 누이고 태의를 불렀다. 금륜은 태의도 마다하고 사량부에 궁인을 보냈다. 하지만, 궁인들은 몇 번이고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금성 어디에도 폐하가 말씀하신 도화택은 없습니다.”



천계 신시(神市)에 천조한 신라의 지상신들이 입조를 마치고 한 곳에 모였다. 신라지부 담당 표훈의 주도로 남산의 산신 서리수염, 금강의 산신 옥도(玉刀), 금성의 지백(地伯) 급간이 회의를 열었다. 표훈이 먼저 운을 떼었다.

“신라에서는 요즘 천제께 올리는 제사가 뜸해 지오.”

“신라왕실이 서역에서 들여 온 불교에 심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성의 지백 급간이 대답하였다. 급간은 서라벌 6촌의 지신이었는데, 혁거세가 천제의 인장을 받아 거슬한의 인준을 받은 후에 신시에서 금성의 지백(地伯) 품계를 받았다. 산신들보다는 우위의 품계라는 은근한 자부심을 가진 급간이었다.

“그 까닭이 무엇이라 보는가?”

“아달라왕을 끝으로 박씨계 천손(天孫) 왕조가 끝나고 탈해 석씨의 용손(龍孫) 왕조도 끝나고 김씨가 왕위를 독점하게 되면서 왕족들의 반발이 잦아졌습니다. 김씨들은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이념이 필요해 졌지요. 현실에서의 복과 괴로움이 전생의 결과라는 불교의 교리는 지배계층의 특권을 합리화하기 딱 좋은 것이었죠. 귀족들 또한 자신들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진흥왕은 문잉림에 있던 산신전각을 헐고 잔존불상을 축조하여 황룡사를 건립하였지요. 진흥왕 자신에게 전륜성왕이라는 불교식 이름을 붙이고 그 아들들의 이름 역시 동륜과 금륜이라 하여 불교의 이념으로 왕권을 강화하였소. 이렇듯 불교가 융성하니 신라왕실과 천계신시와의 관계가 소원해 진 것입니다.”

“이러다가 천계와 신라의 관계가 끊어질 까 염려가 되네. 현왕의 자질은 어떠한가?”

표훈사자가 염려를 표하며 물었다.

“현왕 금륜(진지왕)의 행태를 보면 신라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될 판국입니다. 어미가 화랑과 눈이 맞아 도망간 이후로 마음을 다친 금륜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시야를 정립하지 못 하였습니다. 진흥왕의 아들 동륜태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왕위를 이었지만, 정사는 돌아보지 않고 여인네들만 보고 다닙니다.”

“그보다 큰 문제가 있다네. 곤륜산의 움직임이 수상쩍은 것이, 진(晋) 이후로 분열되었던 화하족을 다시 통일시키려는 준비를 하고 있네. 화하족이 하나로 통합되면 반드시 신시의 지상영지인 삼한을 칠 것이네.”

“우리 신라야 고구려가 막아주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금강옥도가 태평스럽게 대꾸하였다.

“곤륜산의 지신들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 하지 않았소? 고구려가 무너지면 신라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남산의 서리수염이 그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

“그렇다면 지상에 신라를 위해 일 할 사신(使神) 한 위를 파견해 주십시오.”

하고 금강옥도가 청하니 표훈사자가 이름이 쓰인 종이 한 장을 내보였다. 그 이름을 본 지상신들은 경악했다.

“정수남을 천거하시다니요.”

세경신 중 하세경 정수남은 목축을 담당하는 신이었다. 일찍이 개의 모습으로 지상구경을 나갔다가 동륜태자를 물어 죽인 일이 있었다. 정수남이 개의 모습으로 보명궁주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 밤 중에 보명궁 담장을 넘는 사내에게 놀라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륜태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 일로 정수남은 지하형옥에 차꼬를 차고 갇혀있다.

“하세경 정수남을 지상에 보내 죄갚음을 하게 하세나.”

표훈사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남이라면 중세경 자청비 덕에 말단 신 한 자리 차지한 자요. 개망나니 그 놈을 지상에서 부릴 수가 있겠소? 금륜(진지왕)에게 그 놈을 맡겼다가는 신라가 아주 아작이 날 수 있소.”

하고 지백 급간이 마뜩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정수남은 죽은 동륜의 아들 백정(진평왕)의 원수이니 백정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소? 정수남의 주인이라는 표식으로 옥대를 주면 되지 않겠소?”

서리수염의 제안에 표훈이 난감해졌다. 정수남을 받는 대신 천계의 신물인 옥대를 신라에 내려달라고 하니, 그렇다고 정수남을 천거한 자신의 제안을 거둘 수도 없었다. 신라에 신물을 내려주려면 절차도 까다롭거니와, 고구려와 백제의 지상신들도 신물을 청하고 나설 것이었다. 표훈은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옥대의 효능을 동륜의 아들 백정에게만 허락하는 조건으로 내려 보내겠소.”

표훈사자의 대답에 신라의 지상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금륜을 폐하고 백정을 왕으로 세웁시다.”

회의를 마친 지상신들은 금성의 도화택에 내려섰다. 도화택(桃花宅)은 사계절 내내 복숭아꽃이 피어 있는 집으로 천계신시의 사자들이 왕래하는 통로였다.

지백과 두 산신은 신라왕실을 움직여 진지왕을 폐하고 백정을 왕위에 올렸다. (서기 579년 7월)

표훈은 즉위식에 참여하여 진평왕에게 옥대를 내렸다. 이로써 진평왕은 왕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까치 한 마리가 도화택 마당 위를 날다가 복숭아나무에 앉아 깍깍깍 울었다. 도화택지기 고둑은 도화택의 대문을 열었다. 복숭아나무로 만든 대문은 목적지에 문을 열어주는 신물이었다. (<<신화, 신들의 뒷담화>>에 등장)

금성 안에 있는 도화택이지만 대문 밖은 어느새 남산의 너럭바위 앞이었다.

“남산의 산신, 서리수염께서 나를 부르시니 어인 일이오?”

“어서 오시오. 태원랑수위사자 고둑. 선사를 오시라 함은 예가 아니오나 남산을 비울 수가 없어 이리 무례를 범하였소.”

서리 같은 수염을 휘날리며 서리수염이 고둑에게 예를 표했다.

“남산을 비울 수가 없다니, 무슨 일이오?”

“금성 북쪽에서 요사스러운 기운이 뻗쳐오고 있소이다. 더욱이 지백 급간은 금성에 세워진 황룡사의 기운에 눌려 기력이 쇠하고 있습니다. 수위사자께서 북쪽을 한번 살펴보아 주심이 어떻겠소?”



전자책 https://hellena2188.upaper.kr/content/1148904



종이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186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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