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의 후손들

by 금낭아

김극효가 어릴 때 한양구경 왔다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정유길(정광필 손자)이 아이를 집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 김극효의 부친은 신천군수로 관직이 낮지만 조부가 김번이다. 김번은 중종 때 관북지방에 가뭄과 메뚜기 피해로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죽어 갈 때 낮은 관직으로도 삼남의 곡식을 조운하는 직책을 능히 수행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정유길은 김극효를 사위삼기로 했다.

후에 김극효는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김상용·김상관·김상건·김상헌·김상복이다. 『기문총화』

정유길은 유자신도 사위로 들였는데 후에 유자신이 광해군의 장인이 되었으니 정유길의 사람 보는 안목이 높다 할 만 하다.

김상용(金尙容)은 김상헌의 형이며, 효종의 장인인 장유의 장인이고, 효종비 인선왕후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계압만록』에 형제의 일화가 있다.

김상용이 이조판서 때 아우 김상헌과 함께 고향에 다녀오면서 소를 타고 왔다. 포천을 지나오는데 관리의 도임행차를 만났다. 안기역 역참관리 찰방의 행차가 어찌나 요란한지 앞에서 길을 터는 급창이 소를 탄 노인에게 빨리 내려 길을 비키라고 소리쳤다. 아우 김상헌이 내리지 않으려 하니 김상용은 아우를 설득하여 소에서 내려 길 가로 비켜섰다. 찰방이 이름을 물으며 빨리 비키지 않는다며 욕을 해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찰방이 요란한 행차를 계속 해 가다가 빈가마를 들고 오는 가마꾼들을 만나서야 소를 탄 사람이 김상용 형제 인 것을 듣고 달려와 사죄했다. 김상헌이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을 김상용이 말려 주의만 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김상용은 바른말을 하여 인조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인조가 부친 정원군과 모친을 추숭하려 하자 김상용이 반대했다.

인조는 '공신록 책정은 요구하면서 추숭은 반대한다'며 화를 냈다.

그리고 인조는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숭하고 시호를 ‘경덕 인헌 정목 장효’라 정하고, 대원부인의 호를 ‘경의 정정 인헌’이라 정했다. 집의 권도가 시호를 넉자로 줄이자고 하자 인조는 화를 내며 권도를 국문하고 동조한 박동선의 관직을 삭탈하라 명했다.

이에 김상용이 처벌을 정지하기를 청하자 인조가 화를 냈다. 또 김상용은 인조가 인경궁을 뜯어다 창경궁을 증축하려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왕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과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예조에서 고(故) 우의정 김상용의 치제(致祭-순국한 사람에게 국가가 지내 주는 제사)를 청하고 수찬 조중려가 제문을 지어 바쳤는데,

인조는 ‘태산처럼 의리를 무겁게 하였고 홍보처럼 목숨을 가볍게 여겼다.’는 대목이 틀렸다며 반려했다.

소문에 남초를 피다가 실화하여 화약에 옮겨 붙어 타 죽었다는 말이 있다며 인조는 김상용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제문을 돌려보내고 제사도 거절했다. 『인조실록』


김상용의 8대손 김응순이 어렸을 때 꿈을 꾸었는데, 남천문이 열리고 부르는 소리가 나더니

“김응순은 이것을 받아라”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칠함이 내려왔다. 칠함에는 황금색 글자로 “네 조상의 명예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쓰여 있고, 김응순 일생의 운명과 관직, 죽을 날짜도 적혀 있었다. 후에 김응순이 죽을 날짜가 되어 가족들에게 영결을 고하고 누워 눈을 감았다.

영조가 명정에 예조판서라 쓰게 하고 ‘네 조상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고 친필로 써 주었다. 『계서야담』

김상용의 4촌 김상준의 후손이 김익순이다.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였는데, 홍경래에게 패하여 항복하였다. 홍경래가 관군에게 사살되자, 김익순은 죄를 모면하려고 조문형에게 돈을 주기로 하고 반군의 장수 김창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조문형이 김창시의 목을 베어 왔으나 김익순은 약속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에 조문형이 관에 고발하였고, 김익순은 항복한 사실이 밝혀져 모반대역죄로 참수 당하였다.


그러고 보면 “네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가 김익순에게 가야 했는데 김응순에게 잘못 배달되었나 싶다. 김익순의 손자가 바로 삿갓시인 김병연이다. 황해도 곡산에 숨어 살다가 향시에 응하여, 조부인지도 모르고 김익순을 비난하는 글을 적어내 급제하였지만, 조부인 것을 알게 되어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떠돌이가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김익순은 1908년에 친일 인사 이완용의 건의로 작위와 시호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또, 김상용의 아우 김상헌은 형 김상관의 아들 김광찬을 양자로 들였는데, 그 후손이 안동 김씨 세도가문 김조순·김좌근·김병기이다.

그러니 “네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가 잘못 배달 된 것이 분명하다. 김응순이 아닌 김익순과 김조순에게 배달되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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